부산 주민투표 청원 20만 명:
주한미군 생물무기 시설 모두 폐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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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의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요구 서명에 부산 시민 20만 명이 서명했다(2월 3일 현재). 주민투표 발의 요건인 유권자 5퍼센트(약 15만 명) 서명을 훌쩍 넘긴 것이다.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주민투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지난해 10월에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불과 4개월 만에 20만 명이 서명한 것을 보면, 미군 생물무기 시설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과 우려가 매우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발의 요건은 성사됐지만, 주민투표 실시는 가로막혔다. 앞서 부산시는 “행정안전부에 질의했더니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은 자치단체 사무가 아니라 국가 사무라서 주민투표 추진 요건이 맞지 않는다”며 주민투표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거부했다. 주민투표의 법적 절차를 밟지 못하게, 부산시와 문재인 정부가 가로막은 것이다. 추진위는 이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미군 생물무기 시설 문제가 주민투표 대상일 수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안전 사고가 벌어지면 부산 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 명백한데 말이다.
물론 부산항 생물무기 시설에서 취급해 온 보툴리눔·포도상구균 톡소이드 등은 매우 위험한 독소라서 조금만 유출돼도 전국적인 재앙이 벌어질 수 있는 “국가 사무”이다. 보툴리눔은 지구상 가장 강력한 독소로 단 1그램만으로 1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 따라서 부산항 미군 세균실험실 폐쇄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보툴리눔
주한미군이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련 실험과 훈련을 진행해 온 사실은 우연히 드러났다. 2015년 미국 더그웨이 기지에서 ‘실험용 죽은 탄저균’이 미국 내 시설과 한국의 오산 미군 공군기지를 비롯해 7개국에 배송됐다. 그런데 이 탄저균이 살아 있음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심지어 이 탄저균 샘플은 민간 택배업체인 페덱스가 배송했다! 이 사고로 오산 미군기지에서만 22명이 탄저균에 노출됐다.
이 사고를 계기로 미군이 용산 기지와 오산 기지에서 실험실을 운영해 왔고, 2009~2014년에 탄저균 샘플을 15차례나 반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탄저균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서 금지된 대량살상무기다. 10킬로그램이면 최대 60만 명이 살상될 정도로 위험하다.
미군은 한국에서 주피터(JUPITR)라는 생물무기 대응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미군은 이 프로그램이 생화학무기 위협에 대비해 병원균·독성을 조기에 탐지하고 확인해 주한미군의 전투력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그램, 즉 방어용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물무기나 화학무기 문제에서 공격용과 방어용을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제독 실험에 사용되는 병원균과 독소가 바로 공격용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탄저균 사고 이후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는 미군의 시험용 생화학물질이 반입되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2016년 부산항 8부두에 미군의 새 생물무기 실험실이 설치됐다. 주피터를 이은 센토(CENTAUR) 프로그램이 가동돼, 부산·군산·오산·평택 등지로 리신·보툴리눔·포도상구균 톡소이드 등이 꾸준히 반입됐음이 지난해에 폭로됐다. 모두 생물무기 개발 실험이 가능한 물질들이었다.
미군은 해당 시료들이 위험성이 없는, 즉 “사멸된 것(사균)”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적국의 생물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실험을 사균으로만 진행한다는 해명을 누가 믿을까?
지금 미군은 한국에서 생물무기 실험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는커녕 더 확대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의 2021년도 회계연도 예산평가서에는 2020년에 센토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이를 통해 발전된 세균전 기술을 바탕으로 통합조기경보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그리고 지난해 바텔과 헌팅턴 엥겔스라는 미국 기업들이 이 프로그램들을 위해 부산, 대구, 진해, 서울 용산, 평택, 동두천 등지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채용 공고를 냈음도 폭로됐다.
센토
최근의 몇몇 폭로로 확인된 것은 미국이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쟁은 핵무기 말고도 생화학무기 같은 끔찍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초래했다. 그리고 미국은 경쟁국들에 대한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고자 오래전부터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심지어 이를 실전에서 사용한 전력이 있다.
미국은 1969년부터 생물무기 제조를 중단했다고 했지만, 그 이후에도 비밀리에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예컨대 2003년 미국 《핵과학자협회보》는 당시 부시 정부가 세균무기 개발에 착수했다고 폭로했다. 탄저균, 페스트균, 보툴리누스균 등을 조종·변형·실험할 수 있는 연구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군이 주한미군 시설에서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것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주피터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시작된 것도 당시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과 관련 있다. 주피터 프로그램 책임자인 피터 이매뉴얼도 주피터 프로그램의 근거지를 한국에 둔 이유에 대해 “한국은 우방국으로 미국의 자산이 집중돼 있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하고 답했다.
미군이 부산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위험한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분노를 자아낸다. 2015년 탄저균 사고 당시 박근혜 정부는 실험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려 하지도 않고 외려 미군을 두둔하기 바빴다. 이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도 박근혜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생물무기 문제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왔다. 한·미 양국은 2011년부터 ‘한·미 생물방어연습’을 공동으로 실시해 왔다. 미국은 한·미 생물방어연습의 경험과 교훈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리고 2013년 한국과 미국은 ‘생물무기감시포털 구축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주한미군의 주피터 프로그램과 연계돼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협력을 통해 한국 정부는 생물무기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축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는 미군의 위험한 실험장이 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군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협력을 일절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모든 생물무기 시설은 폐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