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은 몰락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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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581호에 실린 학생운동 관련 기사 “신운동권, 학생운동을 구출하라”는 학생운동에 대한 몇 가지 그릇된 통념에 기초해 있다. 이 기사에서 남종영 기자는 기존 학생운동은 “침몰”했으며, 이는 “과잉된 정치운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학생운동이 몰락했다는 주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주류 언론에서부터 민중운동 내부에까지 꽤 영향력을 미쳐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단은 대체로 단편적인 인상에 근거한 경우가 많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비해 학생운동의 동원 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다는 것이다.
학생운동의 동원 규모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학생운동은 여전히 강력한 저력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여러 대학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등록금 인상 반대 학생총회가 성사됐다. 여중생 압사 항의 시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등의 거리 시위에 학생운동은 수백∼수천 명의 학생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따라서 학생운동이 몰락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과장이 유행하는 것은 대체로 1980년대 학생운동 폭발기에 대한 향수와 동경에서 비롯한 그릇된 가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1980년대처럼 학생운동은 마땅히 학생 다수의 참가와 지지가 있어야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문제라는 식의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은 학생이라는 집단이 본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은 [또는 높아야 하는] 집단이라는 가정과도 관련돼 있다.
그러나 세간의 통념과 달리, 하나의 집단으로서 학생은 대체로 정치를 멀리하는 비정치적인 집단이다. 학생들은 소외와 자본주의 대학에서 느끼는 억압 때문에 늘 여러 공통된 불만들을 갖고 있지만, 시험 등을 통한 동료들과의 학점 경쟁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단결하기가 쉽지 않고, 소외로부터 느끼는 억압에 대해 종종 개인적 해결책을 찾곤 한다. 즉, 평소에 다수 학생들의 일상은 학점 관리, 취업과 아르바이트 외에 술 마시기, 컴퓨터게임, 오락 등의 현실 도피적 행동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냉소적인 무관심을 보이고, 반권위주의 정서를 수용한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정치에 민감한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은 전체 학생들 중 비교적 소수다. 심지어 1980년대 학생운동조차 급격히 폭발했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기 동안 운동 참가자들은 전체 학생의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학생 다수가 참가하는 학생운동이라는 잣대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체로, 일상적 시기의 학생운동은 비교적 소수의 학생들이 사상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반복되곤 한다. 따라서 다수 학생들에게는 대체로 소수의 조직 좌파들이 “과잉된 정치운동”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들 또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고, 이러한 불만은 학생이 생산관계에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휘발성이 강해 폭발적으로 터지기 쉽다. 교육 여건 악화를 둘러싸고 또는 정치·사회적 불의에 직면해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할 때 거대한 투쟁이 벌어질 수 있고, 그 투쟁의 결과물로 비교적 더 큰 규모의 학생들이 급진 사상과 조직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에 비춰본다면, 현재의 한국 학생운동은 그래도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폭발적 학생운동의 결과, 매우 강력한 조직 좌파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여전히 학생들의 불만을 새로운 투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