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공연 - 웅장함 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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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3천5백 명 앞에서(관람석이 꽉 찰 경우) 10만 명이 공연을 하니 웅장함에 입이 벌어질 법도 하다.
배경대(카드섹션)에는 2만 명이 앉아 한 폭의 멋진 그림을 일사불란하게 바꿔내고, 체조대(매스게임)에서는 한 장면마다 수천 명이 출연해 온갖 기교를 부리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분명 장관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것은 ‘아리랑’ 공연이 보여 주는 여러 가지 가운데 표피만을 감상하는 것이다. 대집단체조가 북한 사회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그것이 북한 사회의 어떤 면을 드러내는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마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리장성을 보면서 그 웅장함에 탄성 지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당시 사회관계 속에서 인식하려 노력하듯이 말이다. 만리장성이라는 ‘기적’을 만들기 위해 첫 공사에만 약 30만 명이 동원됐고, 무수히 많은 노동시간이 들어갔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사회 전체에 돌아갈 이익이 줄어들었다.
북한에서 집단체조는 1946년 ‘소년들의 련합체조’에서부터 시작돼 해마다 연인원 1백만 명의 학생들이 집단체조에 참여했다. 하루에 2∼3시간씩 석달만 연습했다고 가정해도 연간 총2억 시간 이상이 집단체조 연습에 투여된 셈이다.
집단체조는 개인들을 집단에 복종시키는 훈련 수단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단체조 창작자들과의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단체조는 청소년학생들에게 높은 조직성과 규률성, 집단주의 정신을 키워줍니다. 청소년학생들은 자기 한사람이 동작을 잘못하면 집단체조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집단에 복종시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게 됩니다.”(‘집단체조를 더욱 발전시킬 데 대하여’ 1987. 4. 11.)
집단체조대회는 19세기 독일에서 처음 시작됐다. ‘톨넨’이라고 불린 이 집단체조대회는 “애국심의 고취를 위해 체력과 집단의 힘을 응축시켜 표현하는 장으로 추진”됐다. 그 뒤 여러 나라에서 집단체조가 실행됐는데, 나라를 막론하고 집단체조와 카드섹션을 더 많이 동원해 더 강력한 단결력을 과시하며 집단주의를 강화하는 데 이용됐다.
군사독재 시절 남한도 빼놓을 수 없다. 남한에서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7년 전국체육대회 때부터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이 시작됐다. 삼사십대라면 누구나 매스게임 연습에 동원돼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시간을 낭비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국가적 행사나 외국 사절 환영 행사, 전국 및 지역 체전, 심지어 학교 운동회에 이르기까지 매스게임은 군사독재 시절 빼놓을 수 없는 청소년들의 고역이었다. 한 사람이 잘못해도 모두 벌을 서는 집단 얼차려와 함께 매스게임은 군사 문화의 일부였다.
또, 집단체조는 그 집단의 우월성과 단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단 외부뿐 아니라 집단 내부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단체조가 “단순한 체조가 아니라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 우리 당이 내세운 로선과 정책[을] … 형상하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한다. “당과 수령에 대하여 잘 형상”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당의 방침도 잘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리마 조선’, ‘로동당의 기치 따라’, ‘인민들은 수령을 노래합니다’ 같은 집단체조 제목들만 봐도 이 점이 잘 나타난다.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에 이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라는 장르의 두 번째 작품인 ‘아리랑’에도 이런 목적이 잘 드러나 있다.
하늘의 선녀가 북녘 땅에 내려왔다가 날개만 하늘로 올려보내고 북한에 살게 됐다는 대목 등에서 ‘지상낙원’이라는 체제 홍보 냄새가 물씬 풍기며, 충성에 대한 강력한 호소가 작품 전체에 배어 있다.
제3장 3경에 나오는 〈오직 한마음〉이라는 노래는 이런 가사를 담고 있다. “오늘의 이 행복 누가 주었나/ 로동당이 주었네 수령님이 주었네/ 김일성 원수님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 목숨도 바쳐가리 오직 한마음”
〈아리랑〉 공연을 총연출한 김수조는 “위대한 수령님의 생애야말로 아리랑민족의 한 세기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는 여기에 종자를 잡고 작품을 창작했다” 하고 말한 바 있다.
김혜신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대외협력위원은 “자기 조국을 이처럼 뜨겁게 노래하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할수록 국가와 민족의 위대성을 나라 안팎에 강조하고 그에 대한 애정과 충성과 희생을 요구하는 법이다.
북한이 1993년 단군릉을 발굴하고 단군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둔갑시킨 것이나, 1999년부터 “대동강 유역 문화가 세계 4대문명보다 더 우수하다”며 세계 5대문명설을 주창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아리랑’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든 나는 그것을 이유로 공연 관람 자체를 문제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몇 년 전까지 남한 정부가 ‘아리랑’ 관람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고려해도 ‘체제 단속용 공연을 보려 가야 하는가?’(64호) 하는 반문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느끼는 문제는 1백만 원이나 들여야 평양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비싼 돈을 들이고도 정해진 장소만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진다면, 남한 우익의 북한 비난도 북한 당국의 체제 우월 홍보도 무력해질 것이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 감탄에 머물지 않고 ‘아리랑’ 공연의 정치적 역할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