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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테러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존 몰리뉴가 지난[2005년] 8월 중순 다함께 주최의 대규모 포럼 ‘전쟁과 변혁의 시대’에서 한 연설을 녹취한 것이다. 특히 아펙 회의를 앞두고 노무현 정부의 보안기관과 정보기관 들이 “대테러 대책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금 이 주제에 대해 곱씹어 보는 것은 정치 활동에 유용할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가 첨가한 것이다. (인도 뭄바이에서 테러가 일어난 현 시점에도 적절한 교훈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 2008년 11월 28일 재게재.)

오늘밤 논의할 주제는 매우 시사적인 문제입니다. 9·11 이후 지배자들, 특히 조지 W 부시와 미국 지배자들은 테러리즘 문제를 세계 정치의 중심에 올려놓았습니다.

저는 올해 7월 7일부터 테러가 가장 유력한 이슈가 된 영국에서 왔습니다. 벌써 몇 주 동안 영국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상황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먼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테러 문제가 결코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테러가 생소한 문제가 아닌 것은 다행입니다. 9·11이나 7·7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에 생소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보다 훨씬 신속하고 일관되게 대응할 수 있죠.

사실, 테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847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최초로 가입한 정치단체는 ‘의인동맹’이었습니다. 의인동맹은 나중에 ‘국제공산주의동맹’이 됐고, 이 단체를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썼죠.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의인동맹이 음모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설득한 후에야 가입했습니다.

물론 당시 음모라는 것은 오늘날의 테러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근본 원칙은 동일합니다. 당시 음모는 프랑스 혁명에서 이어져 온 전통적 조직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은 몇몇 사람들로 구성된 비밀 조직이 쿠데타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죠.

마르크스는 이 방식을 포기하고 대신에 노동계급 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선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테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반대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의 핵심 사상과 관계가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동력을 계급투쟁으로 봤습니다. 소수의 위인들, 즉 왕, 여왕, 장군 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테러는 역사를 주로 위인들의 업적으로 보는 부르주아 역사관의 거울 이미지와 같습니다.

특히, 테러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계급의 행동을 대리하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칙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당시에 주로 음모적 또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반대해 이런 생각을 발전시켰습니다. 테러 자체에 대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탄생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첫 혁명가들은 러시아 말로 나로드니키, 즉 민중주의자(포퓰리스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짜르 통치에 신물이 난 지식인들이었고, 주로 농민을 대안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상주의적 열정을 가지고 농촌에 가서 농민들과 접촉하거나, 이것이 잘 안 되면 테러로 전환해서 짜르나 짜르 정부의 관리들을 암살하려 했습니다.

플레하노프가 선구자이고 나중에 레닌이 더 발전시킨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에게 테러는 핵심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당시 유력했던 민중주의 운동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형성됐습니다. 즉, 테러에 반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또한 이 문제는 어떤 계급을 사회주의를 실현할 행위자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히 연관돼 있었습니다. 레닌이 테러에 반대한 것은 운동이 산업 노동계급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그의 생각과 밀접히 연관돼 있었습니다.

테러에 대한 레닌의 글들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언제나 테러리스트들의 개인적 용기를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레닌은 그들을 개인적으로 칭찬하면서도 테러라는 투쟁 방식을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

둘째, 레닌은 테러 전술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모두 반박했습니다. 일례로, 러시아의 테러 지지자들은 짜르의 장관과 관리들을 조직적으로 암살하면 세력관계가 러시아 국가로부터 혁명 운동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레닌은 테러가 일반으로 국가 억압을 강화하지, 약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런 주장을 논박했습니다.

세력 저울이 국가에서 저항운동 쪽으로 점차 이동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한 비판은 테러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트로츠키는 테러리즘을 “총을 든 개량주의”라고 말했습니다.

레닌은 또한 테러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대중의 저항을 고무한다는 주장도 반박했습니다. 레닌은 테러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트로츠키는 이 부분을 탁월하게 정식화했습니다. 그는 설사 테러가 성공할지라도 테러는 역효과를 낸다고 주장했습니다. 테러가 성공할수록 대중은 자신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테러리스트가 짜르를 암살하거나 뉴욕 쌍둥이 빌딩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결국 그는 자신이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스스로 싸우도록 고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엘리트[최정예] 테러리스트들에게 맡겨 둬. 우리가 당신을 대행할 거야.”

테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인식에는 거의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두 가지 일반적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 특정 테러 공격이 아무리 재앙적이고 미친 짓처럼 보일지라도, 테러리즘의 폭력은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국가의 폭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베트남 전쟁에 책임이 있는 국가가, 테러리스트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며 도덕군자인 척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미국 국가를 통제하는 지배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지난 1백50년 동안 살해한 사람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살해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예일 뿐이고, 비슷한 사례를 끝없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 세계 전역에서 야만적 행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테러에 대응할 때 절대로 지배자들의 위선에 동참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저들의 지독한 위선을 폭로해야 합니다.

둘째, 비록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테러에 반대하지만, 우리는 평화주의적 입장에서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폭력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계급투쟁 과정의 특정 국면에서는 폭력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고 억압자에 맞서 싸우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상황이 흔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고립된 사례로 보면 테러로 보이고 지배자들도 테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대중 저항의 일부인 경우도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항의 주된 형태에 대해 우리는 테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의 일부 행동들, 특히 자르카위 집단이 저지르는 암살 행위들을 우리가 찬동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자르카위 집단의 행위에 분명히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령에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의 일반적 권리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노동계급이 반혁명에 맞서 자체 방어를 위해 혁명적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합니다.

지금까지 테러리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일반적 태도를 살펴보았지만, 저는 또 어떤 의미에서 각각의 테러 사건들은 저마다 독특하며 따라서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은 그 각각의 사건들에 구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테러 공격들의 역사를 지금 여기서 모두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특정 요인들이 있습니다.

먼저 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테러 대상의 특성이라는 요인도 있습니다. 또, 테러가 발생한 일반적인 정치적 맥락도 있습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 테러가 발생했으며 지배계급은 그 테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평범한 대중의 반응은 또 어땠는지,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중요합니다.

누가 테러를 자행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세 가지 주요 형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흔히 파시스트나 네오파시스트 같은 우익들이 저지르는 테러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탈리아 볼로냐 경찰서 폭파 사건이나, 런던의 아시아인과 동성애자 지역에 네일밤[nailbomb: 긴 못이 들어있는 수제 폭탄]을 설치한 데이빗 코플런드[영국의 나찌], 북아일랜드 [개신교 우익의] 얼스터민병대,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암살단 등이 저지르는 테러가 그렇습니다.

이런 우익 테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모두 단호하게 비난합니다.

우리 지배자들과 언론이 좌익 테러를 비난하는 정도와 우익 테러에 대한 비난의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두번째 주요 형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가장 두드러졌던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자의 테러 형태입니다. 그런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조국과 자유’(ETA), 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등등.

사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도 한때 테러리스트로 불렸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영국 보수당의 일부와 보수적인 청년들은 “넬슨 만델라를 교수형시켜라” 하고 외치며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반제국주의적 테러리즘이나 민족주의적 테러리즘에 대해 좌파들은 흔히 테러의 원인이 빈곤과 억압이라고 주장하며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우익들은 이렇게 대꾸합니다. “말도 안 된다. 오사마 빈 라덴은 빈곤하지도 않았고 억압받지도 않았다. 이 특별한 테러리스트들은 중간계급이었고 그들은 자동차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빈민이나 피억압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식민지나 신식민지 나라들에서 제국주의의 억압은 중간계급이나 지배계급 야심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제국주의의 억압이라는 굴욕 상태에서 벗어나 존엄을 되찾고 자기 나라를 스스로 지배하고 싶어하는 중간계급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조국과 민족이 겪는 고통을 절감하지만,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나 군대가 없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테러에 의존하게 됩니다.

한국에도 영화 〈알제리 전투〉가 배급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 식민주의에 맞선 알제리인들의 투쟁을 다룬 〈알제리 전투〉는 아주 훌륭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FLN 전사들이 폭탄을 넣은 핸드백으로 카페들을 폭파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FLN 대표를 비난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1만 피트 상공에서 우리 마을들에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비행기를 주면, 우리는 핸드백을 당신들에게 넘겨주겠다.”

이러한 중간계급 민족주의 운동은 어떤 점에서는 여느 다른 지배계급 지망생과 마찬가지로 행동하고, 그들의 계급 위치 때문에 노동계급에게 의존해 투쟁을 지도할 수는 없습니다.

테러의 세번째 주요 형태를 저는 “좌절한 급진주의자들”의 테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예컨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아나키스트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독일 바더-마인호프 그룹, 이탈리아 붉은여단, 미국 웨더맨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영국에서도 앵그리브리게이드라는 소규모 그룹이 있었지만, 그들은 보잘것없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형태의 테러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서로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첫번째 형태의 테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반대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형태, 즉 반제국주의 운동들은 대체로 “좌절한 급진주의자들”보다 대중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좌절한 급진주의자들이 연루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적어도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특별한 과제는 우리 운동 안에서 또는 우리 좌파들 사이에서 테러 운동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붉은여단의 경험이 보여 주듯이, 그런 테러 운동이 발전하면 좌파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테러의 대상이라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테러의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테러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테러의 희생자가 누구냐에 따라, 예컨대 러시아의 짜르처럼 증오의 대상이었던 폭군인지 아니면 평범한 노동 대중인지에 따라 우리의 대응은 다를 것입니다.

실례로, 1984년 영국 브라이튼 호텔에서 IRA가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와 여러 보수당 장관들을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이것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아깝다, 실패하다니.”

올해 7월 7월 런던 테러 사건에 대한 반응과는 사뭇 달랐던 것입니다. 7·7 테러는 완전히 엉뚱한 표적을 고른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들은 평일 출근길 런던 대중교통 수단을 표적으로 삼았고, 평범한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 뻔했습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성격을 봅시다. 아주 다양한 문화와 인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런던 노동자들 중에는 이라크전쟁이나 토니 블레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테러 공격에 대응할 때 우리는 또한 그것이 발생한 정치적 배경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9·11의 경우, 미국 제국주의라는 배경이 있죠. 이것은 이런 테러 공격이 세계 어떤 곳에서는 꽤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심지어 영국에서도 특별히 정치적이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양키들이 세계에서 한 짓을 보면 올 것이 온 거지 뭐”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미국 제국주의가 이에 보복할 것이 뻔했습니다. 따라서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그 대가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런던 사건을 보죠. 소위 7·7 사건은 분명히 영국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고 동참한 정치적 배경 아래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세계 인구의 99.9퍼센트는 이런 지적에 동의할 것입니다.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물론 토니 블레어죠. 그는 즉시 런던 폭탄 테러가 이라크와 전혀 관계 없다고 말했습니다.

블레어가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을 했을 때 블레어는 폭탄 테러가 자아낸 정서 때문에 언론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자기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노동당 장관과 의원 들도 역시 그 말을 반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레어는 그런 주장을 통해 두 가지를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는 자신은 절대 테러 사건에 대해 어떤 종류의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영국을 이라크 전쟁에 끌어들였고 그 때문에 런던 시민들에게 일어난 일에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주장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블레어는 영국인들이 테러 표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던 것입니다.

7·7 폭탄 테러는 또한 영국의 무슬림 사회가 일부 언론에 의해 상당 기간 마녀사냥의 대상이 돼 온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테러 사건이 발생한 뒤 무슬림에 대한 공격과 인종차별적 반응이 이어질 것이 명백했습니다.

조지 W 부시가 9·11을 이용해 세계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고, 이라크 침략처럼 미국 지배자들이 꿈꿔 온 일들을 추진한 것처럼, 영국 정부도 7·7을 시민적 자유를 공격하고, 대중 속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책임을 무슬림 사회에 떠넘기기 위한 기회로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 때문에 런던 폭탄 테러 이후 영국 전역에서 일부 모스크들이 공격당하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개별적으로 무슬림들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런 양상을 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나 대중이 모스크를 공격하거나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찌나 극우나 인종차별주의자 개인들은 무슬림을 공격해도 관용될 듯한 상황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중적 공격은 없었지만 개별 공격 횟수는 늘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일반적 맥락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테러 사건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순전한 우연이지만 테러 사건은 우리(사회주의노동자당)가 ‘맑시즘’ 행사를 시작할 무렵, 그것도 행사장 바로 건너편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이 런던으로 오고 있었고, ‘전쟁저지연합’은 신속하게 촛불집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조지 갤러웨이라는 리스펙트 의원이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습니다. 갤러웨이는 테러 사건 발생 후 바른 말을 한 유일한 의원이었습니다.

우리 대응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먼저, 우리는 폭탄 테러에 반대하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아주 분명하게 이 테러를 이라크 침략과 연관시켰고, 시민적 자유와 무슬림 사회를 옹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런던 도심과 지방 곳곳에서 계속 비슷한 농성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와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공격받는 이슬람 사원 주변에서 집회와 행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7월 7일 런던 테러는 매우 첨예한 이데올로기적 논쟁을 영국 사회에 불러일으켰습니다. 한편에서 블레어 정부는 이 기회를 활용해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 했고 비판 세력들을 잠잠하게 만들려 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 우리를 포함한 좌파들은 이 사태의 근본적 책임이 블레어와 블레어 정부에 있음을 강조하며 인종차별과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저지연합은 9월 24일 전국 집회를 열어서 이데올로기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핵심 동원 지점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제가 만일 이런 토론을 영국에서 하고 있었다면 여기 계신 분 모두에게 모두 이 집회에 참가할 것을 강조하며 발제를 마무리지었을 테지만 그러기에 영국은 여기서 너무 멀고 동지들도 나름의 투쟁 계획이 있을 것이라 생각돼 참겠습니다(웃음). 다만 저는 오늘 동지들에게 전한 경험들이 유용하게 쓰여 동지들이 비슷한 상황에 맞닥드렸을 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자본주의는 그 본성상 끊임없는 착취와 폭력으로 얼룩진 체제입니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전쟁과 죽음, 학살을 거듭거듭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는 오직 노동계급의 혁명적 행동을 통해서만 전복될 수 있습니다. 개별적 암살이나 폭탄 테러와 같은 것으로는, 설사 그 위력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결코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질의 응답

1 첫번째 질문은 마드리드 테러와 런던 테러의 차이점에 관한 것이었죠.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그와 관련된 얘기를 저에게 해줬는데요, 글렌 이글스 G8[8대 강대국] 시위 후 열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런던 테러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유럽 동지들, 특히 스페인 동지들이 “축하한다, 블레어에게 종말이 온 거야, 블레어는 이제 2주면 끝날 거다” 하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달랐죠.

차이점 중 하나는 스페인은 당시 선거 직전이었죠. 그리고 스페인 총리 아스나르가 ETA[바스크 분리주의 운동단체]가 테러를 저질렀다고 엄청난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났던 것도 차이점이죠.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와의 연관성을 부정할 뿐 아니라 IRA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실수도 저질렀다면 좋을 뻔했지만, 그는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죠. 그리고 스페인군의 이라크 파병은 아마 영국이나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이것도 차이겠죠.

그리고 스페인의 경우가 예외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테러 공격이 발생했을 때 더 일반적인 것은 정부의 지위가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여러 면에서 강화되는 것입니다. 스페인에서 일어난 일은 이례적인 것이었지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2 민족주의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질문이 있었죠. ‘민족해방 운동 지도자들은 권력을 잡은 후 스스로가 지배계급으로 변신하는데 우리가 그들을 지지해야 할까요?’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배계급이 됩니다. 노동계급, 다시 말해 혁명적 노동자당이 민족해방 운동을 주도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한 모든 민족해방 투쟁의 경우 자신이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 투쟁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제국주의에 반대해서 그들을 무조건 지지해야 합니다. 모든 측면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반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해방 운동의 지도자들이 가진 정치나 종교 등에 대한 편견을 이유로 제국주의에 맞서 그들을 지지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만약 당신이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자라면 민족 저항 지도부의 성격과 관계 없이 무조건 자국 제국주의의 패배를 바라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민족자결권과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하지만, 우리 자신이 민족주의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당신이 억압받는 민족,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나라의 사회주의자라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이 민족해방 운동을 주도하기를 바랍니다.

마르크스와 레닌, 특히 제국주의와 민족자결권에 대한 레닌의 논의에 기초한 이런 일반적 입장은 이라크 저항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정리하는 데 유용한 틀이 될 수 있습니다.

3 테러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대중 저항 운동과 테러의 근본적 차이는 결국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별하는 문제입니다. 테러의 본질은 소수가 대중 행동을 대리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테러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핵심 기준은 폭력의 성격이 아닙니다. 즉, 살해된 사람이 무고하냐 또는 죄가 있느냐가 기준이 아닙니다. 설사 당신이 짜르나 마거릿 대처를 죽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둘 다 무고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대중을 대리해 소수가 저지른 행위라면 그것은 여전히 테러입니다.

반대로, 대중적 또는 혁명적 투쟁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생길지 모릅니다. 이것은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그 때문에 대중 투쟁이나 혁명 투쟁의 정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또한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 입장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바그다드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저는 저항세력의 각종 전술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전술에는 반대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것은 매우 역효과를 내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어떤 전술은 미국이 수니파와 시아파를 분할 지배하는 것을 돕고 있죠. 제가 바그다드에 있었다면 그런 것들에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런던이나 서울에 있다면 이라크인들의 저항권을 옹호하고, 미국과 영국군대를 당장 철수하라고 주장하는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주장의 강조점이 바뀌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만약 제가 팔레스타인이나 중동에 있고, 자살 폭탄 공격에 가담하려는 동지를 만난다면 저는 그 방법을 택하지 말라고 온 힘을 다해 그 사람을 설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런던에서 제 주된 임무는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옹호하고 토니 블레어 같은 작자들이 시민적 자유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지금 블레어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자신이 ‘테러’라고 부르는 것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것을 범죄 행위로 만드는 법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발언한 동지는 자신도 테러리스트의 용기를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지배자들의 위선에 정말로 신물이 나는데, 그들은 항상 자신의 용기를 말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을 겁쟁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지배자들은 자기 집무실에 앉아서 편하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을 결정하면서 막상 싸우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을 겁쟁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정말 역겨운 위선이죠.

하지만 트로츠키는 테러에 관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개인적 복수에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역사의 복수, 계급의 복수를 바란다. 지배계급과 그들의 지지자들을 개별적으로 죽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고,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에게 부여한 권력을 그들한테서 빼앗아 그들이 영원히 사라지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테러리즘의 방법으로는 달성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조직된 노동계급의 힘만이 달성할 수 있습니다.

녹취·번역 : 조명훈·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