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감옥에서 의회로
만델라와 ANC는 흑인 대중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

이 글은 〈소셜리스트 리뷰〉 174호(1994년 4월)에 실린 찰리 킴버의 글을 번역한 것으로, 〈노동자 연대〉 1994년 5월호에 실렸던 것을 약간 교정한 것이다.

이달 말(1994년 4월 말) 아프리카국민회의(ANC)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거에서 이기면 그것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맞서 싸워 온 모든 사람들한테 승리를 뜻할 것이다. 집권당인 국민당이 1985년에 ‘테러리스트처럼 박멸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ANC가 집권하게 될 것이다. 인종분리주의자들의 패배는 진심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와 ANC는 흑인 대중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1912년에 결성된 ANC는 백인의 인종차별적 지배에 분개한 전통적 지도자(즉, 족장)들과 지식인들이 지도했다. 그들은 특히 비(非)백인의 의원 피선거권 폐지에 반대해, 흑인 토지 소유를 국토의 10퍼센트 이내로 제한하는 토지법 추진에 반대해 조직을 결성했다.

그 뒤 35년 동안 ANC 지도자들은 기독교적 가치, 비폭력, 맹렬한 반공주의를 강조했다. 그들이 인종분리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영국 정부에 평등을 청원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럼에도 ANC는 자기 원칙에 충실했다. 소심하고 고상한 ANC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에 성장한 노동자 투쟁에 등을 돌렸다. 탄광주와 금융가들은 거듭거듭 ANC 지도자들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설득해 파업을 그만두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했고 ‘규율’을 지키게 했다.

ANC가 변신하지 않았다면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사라졌을 것이다. 많은 흑인 노동자들이 공장에 취업했고 새로운 힘을 느꼈다. 1946년 광원 파업은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조직 노동자들의 정서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줬다. 게다가 수많은 흑인들이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한 전쟁에 나가 싸웠다. 그러나 그들이 귀국해 얻은 것이라곤 아주 엄격한 인종분리정책, 즉 아파르트헤이트의 완벽한 실행 준비가 착착 진행되는 것이었다.

새 세대 지도자들은 새로운 투쟁 방법과 저항 정신을 요구했다. 1949년 ANC 협의회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는 구걸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쟁취할 것입니다.” 이런 변신 덕분에 ANC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ANC는 모든 계급의 흑인을 민주주의 투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한 대규모 비폭력 저항을 잇따라 벌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ANC는 국가의 극심한 탄압에 부딪혀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실상 박멸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에 노동자 조직이 성장하고 1976년에 소웨토에서 학생이 봉기를 일으킨 것에 힘입어 겨우 살아났다. ANC가 노동자 파업이나 소웨토 학생 봉기를 지도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ANC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을 이끄는 조직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ANC 투사들의 영웅적 희생 ─ 그 지도자들은 투옥, 고문, 죽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 을 보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다수 흑인들은 ANC가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ANC는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라 민족주의 운동이었다. ANC는 자유를 성취할 방법으로 혁명이 아니라 협상을 강조했다. ANC는 모든 계급의 흑인들이 하나의 운동에 묶여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주장했고, 노동계급한테는 이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를 누그러뜨리라고 주장했다.

최근에 ANC는 내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잔인하고 단호한 정부한테서 변화를 보장받기 위해서 ANC는 어쨌든 대중과 노동자의 힘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업과 대규모 시위가 없었으면, 아파르트헤이트뿐 아니라 자본주의도 타도하겠다고 위협하지 않았으면, 국민당은 협상 자리에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ANC 지도자들은 사태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발전할까 봐, 저항을 멈추고 흑인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의회에 표를 던져야 할 시점이 왔을 때 대중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게 될까 봐 항상 전전긍긍했다.

1990년에 석방된 이후 넬슨 만델라는 줄곧 이런 줄타기를 기가 막히게 해 왔다. 그는 ANC가 정부와의 협상에 주력하도록 만들었고 데클레르크와의 타협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했다. 그러나 만델라는 협상 조건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대중 행동의 압력을 이용하기도 했고,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이 고통받은 투사들의 좌절과 분노가 폭발하지 않게 조절하는 안전밸브 구실도 했다. 만델라는 지금까지 가장 인기 있는 흑인 지도자로 남아 있고 압도 다수의 자본가들한테 대통령 후보로 선택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만델라가 이끄는 지도부는 몇몇 중대한 순간에 심각한 긴장 상태에 놓인 바 있다. 1992년 6월 보안군의 지원을 받는 잉카타 자경단이 41명을 총과 칼로 살육한 보이파통 학살 이후, 더딘 변화 속도에 대해 끓고 있던 불만이 표출됐다. “정부가 우리를 학살하는 동안 그는 어린 양처럼 행동했다”고 청년들이 만델라를 비난하자, 만델라는 [데클레르크와의] 협상을 취소했다. 노동조합 내 ANC 지지자들은 파업을 요구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 끝나자마자 곧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

1년 전(1993년) ANC와 공산당의 지도자인 크리스 하니가 살해된 사건은 훨씬 더 큰 시험대가 됐다. 수백만 명이 참가한 자생적인 파업과 거대한 시위가 일어났다. 나라 전체가 들끓었다. 그 운동을 보며,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는 자본주의에서 ANC가 이끄는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비교적 안정된 전환을 바라는 자본가들은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미국 〈비즈니스 위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ANC 지도부는 시험에 통과했다. … 격동 속에서 정치인 역할을 떠맡은 사람은 만델라였다. 그는 사흘 동안 주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소동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자본가 지도자들은 ANC를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크리스 하니 장례식을 다방면으로 지원해 줬다. 거대한 탄광 회사들이 공동으로 14만 파운드 이상을 지원비로 냈고 코카콜라 회사는 청량음료를 제공했다. 탄광 회사의 한 고위 간부는 ‘사업가들은 비교적 안정된 전환을 이루려 애쓰는 ANC 지도부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NC의 출마 선언문은 몇몇 꽤 급진적인 공약을 담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250만 명을 고용할 공공사업에 착수해서 주택, 수도, 전기, 병원, 학교, 도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월급이 800파운드 이하인 사람들(흑인의 대다수)에게는 세금을 인하하고, 생필품에는 부가세를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ANC 지도자들은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만델라는 토지를 국유화하지 않을 테니 ANC의 통치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백인 농부들에게 연설했다. 영국인 사업가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자산이나 투자금이 몰수되지 않도록 할 투자관계법안을 발표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신의 배당금이나 이윤을 본국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달 ANC의 광업·에너지 정책 담당자인 팔로 조단은 탄광 회사나 광산 채굴권을 국유화하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재무 장관 데렉 키즈와 연방준비은행장 크리스 스탈은 [이달 말] 선거가 끝난 후에 유임을 요청받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런 중대한 타협들과 함께 노동자들이 새 정부한테서 얻을 것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우려가 커져서, 몇몇 노동조합의 대의원대회에서는 ANC와는 분리된 노동자 정당을 만드는 게 어떠냐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조합원이 17만 명인 남아프리카의류섬유노동조합은 선거 이후에는 ANC에 대한 협력을 그만두라고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코사투, COSATU)에 요구했다. 조합원이 22만 명인 전국금속노조의 대의원들은 지도부의 만류도 무릅쓰고, 선거 이후 국민연합 정부를 이끌 ANC와 관계를 끊고 노동자 정당의 건설을 고려하자는 데 표를 던졌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ANC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노동자들은 ANC가 실천으로 입증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ANC에 등을 돌릴지 말지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노조에서 생기고 있는 일은 노동자들이 인종분리정책을 어떻게 분쇄할 수 있는지를 묻던 것에서 선거 후의 사회는 어떤 사회일지 궁금해 하는 단계로 이미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말해 준다. ANC는 항상 그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즉, 흑인 자본주의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 정치 노선을 지배하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말이다. 흑인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과제들을 고려해 보면, ANC의 정책은 비교적 가까운 장래에 긴장에 빠질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ANC 정부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게 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진정한 사회주의 경향이 나타날 전망은 매우 커질 것이다.

지난해 9월에 넬슨 만델라는 주목할 만한 연설을 했다. 그는 코사투 회의에서 연설하다가 말미에 원고를 치우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방 운동은 얼마나 자주 노동자들과 협력했습니까? 그리고 승리의 순간에는 얼마나 자주 노동자들을 배반했습니까? 세계에서 그런 예들이 많습니다. 노동자 여러분이 해방을 쟁취하기 전이나 쟁취한 후에 자신의 조직을 탄탄히 세우기만 한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긴장을 푼다면 여러분의 희생은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ANC가 당신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때에만 그것을 지지합니다. ANC 정부가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했던 것처럼 ANC에게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그는 ANC 같은 운동의 결함을 아주 정확히 지적한 셈이다. 남아 있는 과제는 ANC는 다른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주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174호(1994년 4월)
주제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