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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하먼이 말하는 21세기의 혁명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이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이 지난 8월 중순 ‘다함께’ 주최 대규모 포럼 ‘전쟁과 변혁의 시대’의 한 워크숍에서 행한 연설을 녹취한 것이다. 이 워크숍에는 5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하먼은 《민중의 세계사》, 《세계를 뒤흔든 1968》, 《쉽게 읽는 마르크스주의》등의 지은이이기도 하다.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가 첨가한 것이다.


이번 토론의 주제는 ‘21세기의 혁명’입니다. 이 제목은 21세기에 혁명이 불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혁명적 격변이 이미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5년 동안 몇몇 중요한 나라들에서 항쟁이 일어나 일련의 정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사례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항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양상이 되풀이됐습니다.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해 대중이 고통을 겪었고 자생적으로 거리로 나섰습니다.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대통령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미국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런 양상이 2001년 말 아르헨티나에서, 2000년과 올해 에콰도르에서, 그리고 2003년과 올해 6월 볼리비아에서 되풀이됐습니다.

이런 항쟁들은 지난 20세기 말에 일어난 항쟁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 줍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를 몰아냈고, 세르비아에서도 항쟁이 일어났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이런 항쟁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혁명적 격변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자체의 논리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 수백 년 동안 사회 안정의 전제조건은 생산의 느린 발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재화를 생산하는 방식은 천천히 변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사회관계도 완만히 변했고, 피억압·피착취 계급들은 현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왕과 성직자들은 이들에게 ‘빈곤과 고통이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런 사회들과 자본주의 사회를 대비시켰습니다. 자본주의는 매우 역동적이며,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생산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계속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과거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관계의 지속적인 혁명적 변화” 때문에, “전에 신성시됐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 확고했던 것들은 모두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에서 이 말은 피착취자들이 기대한 삶의 방식이 사라지고, 그래서 완전히 달라진 세계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여러 해 전부터 약속했던 것들이 갑자기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기존 체제를 정당화했던 보수적 사상들도 갑자기 더는 현실과 맞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는 계속해서 노동자들에게 특정 방식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만, 어느 순간 체제가 변하면서 노동자들을 통제했던 기존 방식이 더는 쓸모 없게 되고, 모든 것이 허공에 떠 버리는 상황이 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이런 상황이 계속 되풀이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자체가 끊임없이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농촌 생활에 익숙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해야 합니다. 또,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갑자기 그 공장이 더는 필요 없으니 당신들의 일자리도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노동자들은 주당 40∼50시간씩 앞으로 50년 동안 일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게 듣다가 갑자기 체제 때문에 더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징이라면, 세계화 국면의 현재 자본주의에서는 이런 특징이 1백 배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은 우리에게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끝없는 변화와 느닷없는 일자리 상실을 받아들이라고 주문합니다.

그들은 어떤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다른,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당신의 일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런 자들은 영국 노동자들에게 한국 노동자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들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중국 노동자보다 열심히 오래 일하고 임금을 지금보다 덜 받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더해 이 체제는 주기적으로 위기에 빠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역 전체, 때로는 나라 전체의 경제가 파괴됩니다. 또한 전쟁과 그에 따른 엄청난 파괴도 빈발합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전쟁과 경제위기와 파괴 때문에 혁명적 상황이 조성될 가능성과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나라에서 언제나 혁명적 위기가 발생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안정적으로 보이는 나라가 21세기의 남은 95년 동안 계속 안정적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그에 따라 가뭄이 없던 곳에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지 않던 곳에 홍수가 나는 등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말입니다.

90년 전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혁명의 조건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레닌은 수십 년 동안 혁명을 위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인정했지만, 자본주의 자체가 만드는 특정 상황들, 즉 전쟁이나 경제위기 등이 혁명을 위한 조건을 만들고, 그래서 갑자기 혁명이 가능해질 수도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레닌은 혁명이 일어나려면 먼저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첫째, 대중이 더는 현 상황을 견딜 수 없고, 더는 기존의 방식으로 살 수 없다고 느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쟁과 경제위기, 인플레이션 등으로 상황이 너무 악화해서, 전에는 투쟁을 꿈도 꾸지 않았던 가장 보수적인 사람조차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대중이 기존 방식대로 살 수 없다고 느껴야 할 뿐 아니라, 지배계급 자신도 기존 방식대로 살[지배할] 수 없다고 느껴야 합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할 방법을 열심히 찾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그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지배계급이 크게 분열하고, 대중매체는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경찰은 누구를 체포하고 누구를 그냥 놔둬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처합니다.

그리고 대중이 갑자기 불만을 나타내게 되면, 분열된 지배자들은 대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이것이 잠재적으로 혁명적 상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세기의 위대한 혁명적 격변, 즉 1917년 러시아 혁명, 1919년 독일 혁명이나 1936년 스페인 혁명 전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봤습니다.

지난 5년 간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항쟁들을 보면, 이런 요인들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 중에서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잠깐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르헨티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공업화된 나라일 뿐 아니라 생활수준이 선진공업국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에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은 아르헨티나 경제가 기적을 이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의 동물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사유화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이 되자 그들은 모든 것이 잘못됐음을 깨달았습니다.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정부는 외채를 상환할 수 없었으며, 지배계급은 달러에 대해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크게 분열했습니다.

실업률이 20퍼센트로 치솟고 엄청나게 많은 대중이 빈곤층으로 내몰리면서 아르헨티나는 세계 선진 경제에서 제3세계 경제로 전락했습니다. 정부는 부채 상환을 위해 중간계급의 저축을 거의 다 압류했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종류의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지배계급은 분열하고, 대중은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거리로 나섰고, 정부는 도망쳐야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자체에 비정상적인 면은 없었습니다. 다만,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 동역학이 정상적 부르주아 체제를 유지해 주던 구조들을 산산조각냈던 것입니다.

또,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일이 유일무이한 현상도 아니었습니다. 겨우 2∼3년 전에 인도네시아에서도 매우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하르토 정부를 유지해 주던 것들이 아시아 경제위기의 여파로 모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겨우 3개월 전에 볼리비아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재연됐습니다. 위기가 확대되고 지배계급은 라파스에 기반한 세력과 석유에서 주로 소득을 얻는 산타크루스에 기반한 세력으로 분열했습니다. 그리고 대중은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석유 자원이 지배계급 일부가 아니라 자신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양상을 보고 또 볼 것입니다. 물론 저는 다음에 어느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날지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2∼3년 안에 어떤 나라에서 이런 요인들이 결합돼서 혁명적 상황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무언가를 더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쟁들을 보았지만 제대로 된 의미의 혁명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자본가들은 심각한 위기를 겪은 후에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볼리비아에서는 안정을 되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은 혁명적 상황을 조성할 가능성을 만들지만, 이런 상황이 온전한 혁명으로 발전하려면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합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정서가 변해야 하고 지배계급이 분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혁명으로 발전하려면 대중의 일부가 대안을 성취하기 위한 방식을 알고 있고 조직돼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대중이 모두 능동적으로 혁명 과정에 참가하고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고무하는 조직을 건설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나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어, 사회가 위기에 빠졌네. 해결 방안이 나올 때까지 한 2∼3년 기다리지, 뭐’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절망적이고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사회를 바꾸려 할 것입니다. “상황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이라는 것은, 예컨대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굶어죽어 가는 것을 지켜 봐야 하는 상황 따위를 의미합니다. 아르헨티나나 인도네시아에서 그랬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위기를 해결해 줄 세력을 찾습니다. 그런 세력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들은 옛 지배계급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그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첫째, 모든 피억압자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사회를 바꾸는 투쟁에 스스로 참가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줄 민주적 대중 조직을 건설해야 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의 노동자·병사·농민 평의회가 그런 조직이었습니다.

이 평의회는 사회 위에 군림하는 기구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노동자와 농민이 대표를 선출했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었고, 따라서 일상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사회 전체를 바꾸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혁명은 소수 사람들이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했어’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혁명이란 노동자 대중이 농민과 농촌 빈곤층에게 지지받아 사회 내 모든 부문의 사람들이 스스로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 참가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줄 조직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1918∼19년 독일 혁명에서, 1936년 스페인에서, 1956년 헝가리에서, 그리고 1980년 폴란드에서 비슷한 조직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의회제적 대표 형태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으면 그들은 임기 동안 우리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투표하는 데 1초가 걸린다면, 우리는 매 4∼5년마다 1초씩 민주주의를 행사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농민·병사 평의회에 기반한 조직의 경우, 대중은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결정합니다. 즉, 민주주의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회 기구에서의 민주주의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일, 경제가 조직되는 방식,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농민에게 일어나는 일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시행되는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소수 지배계급에 반대해 사회의 대다수가 참가하는 단결된 세력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20세기의 혁명적 격변들 중 이런 조직이 건설되지 않은 경우에 지배계급은 쉽게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20년 이탈리아나 1968년 프랑스에서는 거대한 대중 운동이 있었지만, 지배계급에 도전하는 이런 형태의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의 항쟁들을 봐도, 인도네시아에서 볼리비아까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조성됐고, 대중이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직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조직이 등장했을 때를 “이중(이원) 권력” 상황이라고 부릅니다. 한편에는 관료기구를 가진 공식 정부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실제로 일상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대중으로 구성된 조직이 있습니다. 이런 이원 권력이 등장하지 않고서는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을 온전한 혁명으로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이원 권력 상황] 자체만으로는 혁명 과정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조직된 노동계급이 옛 정부를 제거하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계급의 대중 조직은 자본가들이 사회의 어떤 부문에도 명령을 내리고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아직 남아 있는 국가 기구를 해체해야 합니다.

사회가 노동자 평의회 등으로 얼마나 많이 조직돼 있는가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가 기구, 즉 자본가들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무장한 인간들로 구성된 기구를 남겨둔다면, 자본가들은 이들을 이용해 대중 운동을 공격하고 파괴하고 파편화시킬 것입니다.

대중 운동이 매우 강력한 동안에 지배자들은 그것을 관용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국가와 함께 노동자 평의회가 공존할 수 있는 양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이 약해지는 순간 그들은 군대를 이용해 운동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살해할 것입니다.

1919년 독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노동자 평의회가 사회 전체를 운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일부 군대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다가 이 군대를 체계적으로 이용해서 노동자 조직들을 파괴했습니다.

1973년 칠레에서도 노동자 운동이 매우 강력했지만, 운동의 지도자들은 군장성들과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군장성들은 때를 기다렸다가 노동자 운동을 공격해서 파괴했습니다.

따라서 혁명 운동이 성공하려면 대중 조직을 건설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국가 기구를 철저하게 해체하고 무장해제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군대 내에서 체계적으로 반란을 조직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합니다. 노동자 조직은 투쟁이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때 옛 질서를 수호하려는 장교와 사병들을 무력을 사용해 무장해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시기에 혁명가들은 무력 사용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중 운동을 조직하려 합니다. 하지만 대중 운동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적들이 우리에게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무력 사용이 반드시 엄청난 폭력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20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면서 경찰을 비난한다면 곤봉 세례를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10만 명의 노동자들이 행진하면서 경찰을 비난한다면 경찰은 도망칠 것이고, 노동자들은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노동계급 운동이 모든 자원과 권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면 폭력은 최소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에서 필요한 이 두 가지 요소들 ―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노동계급 조직의 건설과 결정적 국면에서 어느 정도 무력을 사용할 태세 ― 을 볼 때, 혁명적 상황에서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합니다. 즉, 노동계급 내 가장 사회주의적인 부분이 정당으로 조직돼 있어야 합니다. 조직된 그들이 돌아다니면서 모든 노동자, 모든 농민, 모든 병사들을 포괄하는 조직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20세기 혁명의 역사를 보면,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정당으로 조직돼 있을 때 노동자평의회가 성공적으로 건설되고 투쟁이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혁명정당이 없을 때 대중은 자본주의 사회가 남겨 준 온갖 기구들과 공존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의회를 믿으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의존했습니다. 1919년 독일과 1973년 칠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혁명적 상황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혁명정당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혁명정당은 군대 내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반동적 장교들에 맞설 수 있는 최고의 사병과 장교들을 설득해 지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논의가 추상적이고 현재 한국 상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들릴 것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만약 지금 군대 내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직이 있다면 정신감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혁명가들이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보안경찰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제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난 2∼3년 동안의 볼리비아 상황을 보면 아주 낮은 단계의 투쟁에서 시작해서, 노동자 평의회 건설이 필요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이 기존 국가의 무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지난 6월 볼리비아 대중이 대통령을 몰아낸 후, 볼리비아 노동자와 농민 대표들은 기나긴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벌써 두 번이나 권력이 공중에 떠서 어떤 계급도 권력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는데도, 왜 자신들은 거듭해서 자본가들이 다음 대통령을 결정하도록 허용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동자 평의회를 건설하지 않았지만, 자본가들이 취약해서 노동자와 농민 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순간에 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에 볼리비아의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적 상황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관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주의 정당을 미리 건설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난 25년 동안 볼리비아에서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어려웠던 객관적 조건이 존재합니다. 20여 년 전에 볼리비아 노동계급은 커다란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노동계급 내 가장 선진적 부문이었던 광부 노동자들 중 절반이 일자리를 잃었고, 사기저하해서 자신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잃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가 볼리비아에서 만들어 낸 새로운 노동계급은 옛 노동계급과는 다른 전통,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고, 볼리비아의 혁명가들은 어떻게 그런 정당을 건설할 수 있을까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야 혁명정당 건설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난 6월 위기 때 제대로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몇 개월 뒤에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준비가 돼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일반적인 교훈은 이겁니다. 볼리비아보다 혁명정당을 건설하기가 쉬운 곳이 있을 수 있지만, 혁명정당을 건설해야 할 시기는 이미 혁명적 상황이 눈앞에 닥쳤을 때가 아니라 그보다 수십 년 앞선 시기입니다.

우리가 건설해야 할 혁명정당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혁명정당의 의미를 오해해서 대단히 군사화되고 규율있는 소수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이들이 대중을 위해 혁명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죠. 이것은 제가 말하는 혁명정당과 완전히 다릅니다.

혁명정당은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노동계급과 그 밖의 다른 피억압자 집단이 연루된 크고 작은 투쟁에 모두 개입하는 조직을 말합니다.

혁명정당은 이렇게 투쟁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아무리 제한적인 목적을 가진 투쟁일지라도 그 투쟁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학생 들 가운데 가장 사회주의적인 인자들을 끌어들이고, 동료 노동자와 학생 들을 설득해 지지를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며 특정 순간마다 어떤 투쟁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혁명 직전의 상황이 닥쳤을 때 노동계급 내에 진정한 기반이 있고 눈앞의 도전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혁명적 상황이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불확실성, 갑작스러운 위기와 전쟁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혁명적 사상이 더는 소수의 사상이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론 요약
[청중석 토론 생략]

몇 가지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오늘날 한국에서 대중이 견딜 수 없는 것들에 맞서 투쟁하고 있고 지배계급이 분열해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대부분의 비정치적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서 중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될지는 미리 말하기 힘듭니다. 평상시에 개별적으로 행동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세상을 바꿀 집단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단결하게 될지는 미리 말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런 조건을 계속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를 논의하기 시작하는, 평상시에는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 조성됩니다.

그런 상황을 제가 직접 목격한 경우가 세 번 있었습니다. 1968년 프랑스, 1975년 포르투갈과 4년 전 아르헨티나에서였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그런 상황은 지속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갑자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혁명적 상황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이 행동하고 나머지는 가만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혁명적 상황에서는 단지 남성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가 행동합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강력해 보입니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에서는 남성 노동자만이 아니라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도 조직하고 싸웁니다. 이주노동자들과 장애인들도 조직하고 싸웁니다. 모든 사람들이 변화의 가능성과 자신의 조건을 향상시킬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여러분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레닌이 말했듯이 객관적 힘이 그런 상황을 만들며, 대중이 갑자기 대규모로 정치에 개입합니다.

그런 상황을 혁명가들이 만들 수는 없습니다. 객관적 힘이 만드는 것이죠. 그러나 일단 그런 상황이 조성되고 나면, 혁명가들은 그 운동이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합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자본주의가 운동에 보복하는 것을 구경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분은 1971∼73년 아옌데 정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습니다. 당시 운동이 성장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사회주의자인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했습니다.

아옌데 정부는 노동자들을 위한 개혁을 했고, 노동계급 전체가 갑자기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벌어졌고, 전국의 담벼락은 모두 혁명 구호로 도배됐습니다. 기업주들은 아옌데에 반대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산업을 멈추려 했습니다.[이른바 “사용자 파업”]

그러자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하기 시작했고, 기업주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 평의회와 비슷한 종류의 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이 존재했던 것이죠. 그러나 주요 개량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자 평의회는 필요 없어, 노동조합만 있으면 돼. 공장을 통제할 필요도 없어, 좌파 대통령이 있잖아. 기업인들에게 공장을 다시 넘겨줘.’

그들은 군대가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옌데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피노체트를 자기 정부에 데려왔고, 노동계급은 동원을 그만뒀습니다. 그러자 군대가 움직여서 1973년 9월에 노동자 조직들을 파괴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평의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고, 운동이 군대 사병들에게 영향력을 확대하도록 하고, 운동이 장군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장교들이 운동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해 줄 혁명정당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혁명적 조직을 건설할 알맞은 시기는 이런 투쟁의 절정기가 아닙니다. 미리 혁명정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각국의 구체적 상황을 평가하고 나서, 노동계급과 학생 등에서 가장 전투적인 사람들을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설득해 지지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조직들을 강화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이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노동자들 ―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한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 을 분열시키는 사상에 맞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지배계급의 술수와 행동에 전략·전술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모든 부문의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 내에서 우리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혁명적 격변의 시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혁명가들이 모든 공장과 모든 사무실과 모든 부문에 존재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주위 사람들(가령 10∼20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세계 어디서든 토론을 마칠 때마다 노동계급 대중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서 그들이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음을 깨닫도록 도와 줄 혁명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일국사회주의’가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국민국가로 조직돼 있고, 정치의 리듬도 보통 국가적 관심사를 따르곤 합니다.

따라서 혁명적 격변은 개별 국가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세계화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지 경제적 세계화만이 아니라 교통·통신의 세계화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성공적인 혁명은 다른 곳의 혁명운동을 엄청나게 고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년을 봅시다. 동구권 몰락은 폴란드나 헝가리 같은 작은 나라에서 시작해서 나중에 독일·체코·루마니아로 확대됐습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생각해 보면 먼저 에콰도르에서 시작해서 아르헨티나로, 볼리비아로 확대됐다가 다시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로 이어졌고, 이것은 베네수엘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모든 종류의 격변은 국제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노동자 혁명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2년 뒤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한 번 가정해 봅시다.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북한·중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은 진정한 혁명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을 것이고, 중국 내에서 자라나고 있는 대중의 불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깨달을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에서 거대한 격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혁명 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유학생이든 이주노동자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설득해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도 우리가 자국에서 혁명 조직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전 세계에 혁명적 메시지를 전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혁명의 잠재력이 꽃피었다가 2년 뒤 부르주아지가 되돌아오는 광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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