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요 이면의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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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곽의 센느-생드니 지역은 ‘방리유 루즈’(붉은 교외)로 불린다. 이 전통적 노동계급 지구는 투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프랑스 공산당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 곳은 1970년대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다. 프랑스의 옛 식민지에서 온 새로운 이주노동자 집단이 노동계급 지구에 정착한 것이다.
이 노동자들은 프랑스 도시 주위의 대규모 공장들로 유입됐고, 그들 중 다수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며 노동계급으로 통합됐다. 그들은 자연스런 정치적 고향으로서 공산당과 사회당에 기대를 걸었다.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은 1974년의 심각한 경제 위기와 비슷한 때 일어났다. 경제 위기는 이주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영향을 미쳤다. 인종차별과 저임금 일자리 때문에 그들은 빈민가에 갇혀 버렸다. 전국 곳곳의 다른 도시들에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흑인과 아랍계 이주자들의 게토화는 정부의 비공식 정책이 되었다. 오늘날 반란에 나선 세대는 이 정책의 산물이다.
이주자들은 자신들이 배제되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 자녀들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1982년 남부의 산업도시인 리용에서 최초의 심각한 폭동들이 일어났고 사회당이 낙후한 빈민 지역에 공공투자를 하도록 자극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는 이 지역에 기업들을 유인할 면세지구를 설치해 내부 투자를 강화하는 쪽으로 강조점이 이동했다. 이것은 기껏해야 새로운 저임금 직업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현재 실업률은 매우 높다. 빈민가 인구의 절반이 25세 미만인데, 이들은 졸업 이후 괜찮은 직장을 얻을 가망이 거의 없는 형편없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국가는 빈곤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경찰력 강화로 대응해 왔다.
한 프랑스 교사는 소요 사태 초반에 시위 진압 경찰이 모스크에 최루탄을 쏘며 난입해 한 무슬림 여성에게 욕설을 퍼붓던 상황을 설명했다. “예배자들은 나가면서 경찰에게 욕설을 들었다. 경찰은 이렇게 외쳤다. ‘이 창녀야, 씨팔년아’.”
정부는 소요들에 대해 더 많은 억압과 더 많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가난과 실업은 오직 “단순 저임”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차별 고용 ― 일부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고용 조건을 누리는 반면 흑인과 아랍계 이주자의 자녀들은 가망없는 저임금 일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버려지는 ― 의 완곡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