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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아펙 투쟁이 남긴 것

〈참세상〉의 라은영 기자가 부산 투쟁을 되돌아보며 쓴 “반아펙 투쟁이 남긴 것”(11월 22일)에서 라기자는 반아펙 투쟁의 세 가지 문제를 짚고 있다. 첫째는 [급진]좌파의 무능함, 둘째는 반부시가 넘쳐난 것, 셋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에서 좌파의 구실에 대한 것이다.

이번 투쟁 과정에서 보여준 [급진]좌파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라기자는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부산 투쟁에서 좌파 민족주의 계열 동지들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우리는 이 동지들의 헌신이 부산 투쟁 성공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급진좌파들은 좌파 민족주의 계열 동지들과 개량주의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운동의 일부가 되길 꺼렸다.

부산 지역 급진좌파들과 일부 현장활동가들은 ‘아펙반대부시반대부산시민행동’이 만들어져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음에도 ‘아펙반대부산투쟁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따로 활동하려 했다.

하지만 이 조직은 미미한 활동으로 운동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이들은 “시민행동 중심의 반아펙 투쟁이 민족주의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따로 조직을 구성했다. 이런 태도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종파주의라 부른다.

“종파는 자신과 계급 운동의 공통점에서 자신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계급 운동을 구별해 주는 특정 표지에서 찾습니다.”(칼 마르크스, ‘슈바이쳐에게 보내는 편지’, 1868년)

운동에 대한 종파적 태도 때문에 이들은 운동의 언저리에 미미한 존재로 머물렀다. 라기자가 말하는 “좌파들이 부산 아펙 투쟁을 전개하는 조직 구성과 운영에서 철저히 소외된 단위였던” 이유는 자신들의 잘못된 태도 때문이었다.

라기자는 급진좌파인 ‘다함께’와 사회진보연대가 이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 아펙반대부시반대국민행동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조직의 사례에서 보듯 급진좌파에게도 공간이 존재했다.

종파적 태도가 낳은 결과에 대해서는 라기자도 잘 말하고 있다. “[10만 조직 전국 행진]에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좌파 민족주의 활동가들에게] ‘맡겨놓은’ 꼴이 됐다”

라기자는 “왜 이리 부시 타령을 하는지. 넘쳐나는 부시 선전물은 이리 많은지”라며 반부시가 부각된 것을 마뜩찮게 여긴다. 이런 견해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지난해 뭄바이 세계사회포럼 직후에 프랑스 아딱의 지도자인 베르나르 까상이 인도 신문과 인터뷰하며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 반부시가 넘쳐났다”고 불평한 바가 있다.

라기자는 반부시를 단순히 “‘전쟁 생산자’인 부시에 대한 타격, ‘반미 반제의 상징’인 부시에 대한 타격”쯤으로 치부한다. 물론 나는 부시의 핵심 아킬레스건이 이라크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그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부시는 단순한 반전 의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9월 24일 워싱턴 30만 시위는 이라크 점령과 부시의 국내 정책에 대한 분노가 결합된 ‘반부시’ 시위였다.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벌어진 반부시 시위는 이라크 점령과 부시가 추진하고는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반대가 결합돼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요컨대, 부시는 전쟁, 신자유주의 세계화, 환경 파괴 등 자본주의의 온갖 쓰레기 같은 정책들의 표상이다. 또 반제국주의 투쟁의 중요한 표적이기도 하다. 반부시는 좌파들의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올해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서 열린 급진좌파회합 ― 라틴 아메리카‍·‍미국‍·‍유럽의 좌파들이 참가했던 ― 에서도 11월 아르헨티나 반부시 투쟁을 협력적으로 건설할 것을 결의했다.
반부시가 강조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아펙반대부시반대국민행동 안에서 반부시 강조를 꺼리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에 조직명칭에 ‘부시반대’가 빠져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민행동 안에서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반부시 투쟁이 단순한 ‘반미 투쟁’일까? 워싱턴에 모인 30만 명의 미국인들과 부산 투쟁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반전연합체 ‘A.N.S.W.E.R’ 활동가를 보면 반부시 부산 투쟁을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반미투쟁’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좌파 민족주의 경향은 명백히 민족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운동 지도부의 정치만으로 그 운동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라기자는 “‘아펙’의 본질이 부차화됐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펙’의 본질을 부차화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펙반대국민행동은 수십만 장의 유인물과 신문을 통해 아펙의 본질을 폭로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다함께’도 《아펙과 제국주의》라는 소책자를 통해 아펙의 신자유주의적 본질을 폭로하기 위해 노력했다.

라기자는 “전 국토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장화의 구조조정, 업종의 영역을 뛰어넘는 자발적 자유화 조치 등 정책적, 정권에 대한 정치 투쟁들은 완전히 방기된 채 아펙 투쟁은 진행됐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제한된 요구로 결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런 면에서 “부시반대, 아펙반대”로 결집한 것은 적절했고 필요했다. 이것이 공동전선의 원리다.

라기자는 급진좌파의 현실을 매우 냉정하게 평가한다. “좌파 단위의 실질적 어려움, 실 활동가의 부족, 대안 의제 개발의 어려움 … 현실 운동에서조차 밀리고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안타까움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라기자가 내놓는 대안으로 급진좌파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라기자는 “속된 말로 어차피 참가자들 내에서 ‘쪽수로 밀릴 것’이라면 제대로 된 담론 형성, 대항 의제를 생산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한다.

선전주의적 대안은 급진좌파를 위기에서 구할 수 없다. 이는 운동의 상승기에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은 태도다.
중요한 것은 종파성을 버리고 개방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운동의 중요한 일부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급진좌파들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이번 부산 투쟁에는 3만 명이 참가했다. 이것은 성장하고 있는 한국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의 잠재력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급진좌파가 서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 운동의 한복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