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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평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 공산당 선언부터 기후 위기까지》:
생생한 최근 사례로 마르크스주의 다가가기

《미국 사회주의자가 들려주는 —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 공산당 선언부터 기후 위기까지》 폴 더마토 지음, 이원웅 옮김, 책갈피, 624쪽, 24,000원

마르크스주의의 탄생부터 오늘날 그 사상과 운동이 갖는 의미를 다룬 훌륭한 입문서 《미국 사회주의자가 들려주는 —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 공산당 선언부터 기후 위기까지》가 나왔다.

저자인 폴 더마토는 미국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의 혁명적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에 같은 제목으로 2002년부터 격주로 연재했던 칼럼들을 엮어서 2006년에 출간했다가 2014년에 대폭 개정·증보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의미”라는 제목에 걸맞게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되도록 최근의 사례와 쟁점 등을 들어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가 “유의미”한지 보여 준다. 저자가 2014년 개정판을 낸 것도 “몇 년 동안의 변화를 반영해” “현대의 사례들을 갱신”하기 위해서였다. 초판을 낸 후 벌어진 세계경제 위기를 감안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더 자세히 다루고, 생태 위기 등 더 중요해진 쟁점에 관한 논의도 보강했다.

입문서치고는 다소 두껍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만큼 현대의 생생한 사례와 논의들을 다루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본 번역서는 원서가 출간되고 7년이 지난 다음 나온 것이지만 그 생생함은 전혀 바래지 않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위기에 처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상황을 묘사하는데, 이는 마치 최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이들을 계승한 후대 혁명가들이 어떤 맥락과 논쟁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는지 설명한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최근의 연구나 그들이 논박하려 했던 주장의 현대적 형태 등도 다룬다.

예컨대,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인간 본성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오늘날 큰 인기를 끌고 있고, 마르크스가 거부했던 기계적 유물론의 최신 형태인 진화심리학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계급과 국가의 출현을 다룬 대목에서는 엥겔스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 논지를 뒷받침해 주는 최근의 인류학 연구들을 소개한다. 마르크스 시대 이후의 크고 작은 여러 투쟁 경험들에서 교훈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첫 세 장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기원과 방법론, 역사유물론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4장과 5장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주요 내용들을 설명하고 이것이 오늘날, 특히 장기 불황의 시작점이 된 2008~2009년 세계적 금융 위기와 뒤이은 부채 위기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사회 변화

이후 저자는 다시 사회 변화에 관한 논의로 돌아가서 마르크스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주목한 노동계급이 왜 여전히 중요한지 살펴본다. 또 정치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선거와 입법을 통한 점진적 개혁으로는 왜 근본적 변화를 이룰 수 없는지 다룬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인 만큼 저자는 이 문제를 미국 정치와 역사라는 맥락에서 많이 다룬다. 그러면서 집필 당시 집권 중이던 오바마 정부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그 한계를 풍부하게 폭로한다. 이런 분석과 폭로들은 현 바이든 정부의 한계를 미국 민주당의 역사와 본질적 성격 속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8장과 9장은 러시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볼셰비키의 건설과 그들의 경험이 오늘날 좌파들에게 주는 교훈을 제시한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승리와 패배를 다루면서, 그 패배가 낳은 스탈린주의 지배 체제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이후의 장들은 제국주의와 여성·인종·성소수자 차별, 기후 위기 등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미처 다루지 못했거나 다룰 수 없었던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후대의 혁명가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켰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쟁점들은 대부분 오늘날 더 첨예해졌다.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세계경제는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었고, 팬데믹이 촉발한 경제 위기는 2008~2009년 세계 금융 위기 때보다도 더 큰 국가 개입을 낳았다. 팬데믹 초기의 충격이 가시기 시작한 후에도 시장은 자신의 비효율성을 스스로 입증했다.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공급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팬데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기후 위기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과 재난도 더 잦아지고 있다. 미·중 간 제국주의 갈등도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지난달 토네이도로 파괴된 미국 켄터키주의 한 도시. 기후 위기는 이런 재난을 계속 키울 것이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와 재난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출처 State Farm(플리커)

요컨대 자본주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으로 점철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모순과 위기가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사실, 이 방면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보이는 탁월함은 자본주의 옹호자들도 종종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분석과 설명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연설했듯이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혁명가”였다.

그리고 이 책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혁명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다루고 있다.

국가

좌우를 막론하고 사회주의는 흔히 복지나 공공서비스를 강화하거나 국유화,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강화하는 것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국가를 강화하기는커녕 국가 자체를 폐지해 버리기를 바랐으며,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으로 기존 국가 기구를 분쇄하고 사회의 모든 측면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국가로 대체하면서 국가의 사멸이 가능해진다고 봤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는 누군가가 노동계급을 대신해 선사해 줄 수 있는 게 아니고, 기존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합법적으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정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날 지배적 사회주의 조류는 이를 거부하는 개혁주의에 해당한다.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제러미 코빈 지도부하의 영국 노동당,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속한 미국의 민주사회당(DSA) 등 지난 몇 년 동안 체제의 위기 속에서 부상했던 여러 급진 좌파들도 이런 개혁주의에 해당한다. 비록 개혁주의 내에서는 급진적인 축에 속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은 언제나 한계에 부딪혔다.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체제의 논리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것에 완강히 저항했기 때문이다. 또, 노동계급 투쟁 자체를 발전시키기보다는 기존의 의회 체제 내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을 우선하는 전략으로는 지배자들에 맞설 힘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포데모스가 연립정부 파트너로 정부에 들어가시리자가 집권했지만 대중의 변화 염원을 배신하고 위기에 빠진 것은 바로 이런 약점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지금, 마르크스의 혁명적 정치가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