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9일, 이라크 선관위는 이라크 18개 주 가운데 10개 주에서 ‘통일이라크연맹’(이하 UIA: 주요 시아파 세력인 ‘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IRI)’와 ‘다와당’ 사이의 연합)이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는 총선 개표 초기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선거에 참여한 수니파 정당 연합과 세속 정치 세력들은 이러한 발표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선거가 어마어마한 부정으로 얼룩졌다고 주장한다.

주요 수니파 선거 연합 가운데 하나인 ‘이라크국민대화전선’의 살레 무틀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는 완전히 사기다. 모든 곳에서 민주주의가 훼손됐다. 모든 것이 조작과 기만, 사람들에 대한 협박 그리고 종교를 이용한 위협에 기초해 치러졌다. …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테러리즘이다.”

이라크 선관위에 따르면, 이제까지 1천여 건의 부정 행위 신고가 있었고, 이 중 20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선거인 명부에 없는 사람들의 투표와 중복 투표가 보고됐고, 심지어 죽은 사람이 투표한 경우도 발견됐다. 다른 지역에서 버스로 사람을 실어와 투표하도록 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시아파 밀집 지역인 이라크 남부에서 민병대원들은 사람들을 위협하며 허공에 총을 난사했다. 선거 기간 내내 후보자와 선거 관리인의 암살이 이어졌다.

수니파 밀집 지역인 안바르 주나 팔루자 등에서는 아예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문을 연 투표소에는 투표용지가 모자랐다. “도후크와 키르쿠크에서도 두 개의 주요 쿠르드 정당이 저지른 선거 부정에 관한 수많은 고발이 들어왔다.”(〈가디언〉)

수니파들이 주도하는 무장 저항은 미군과 이라크 정부를 곤경에 빠뜨려 온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 때문에 부시와 미국 ― 특히 이라크 대사 잘마이 칼릴자드 ― 은 수니파의 선거 참가에 대단히 큰 의미를 뒀다.

그들은 정치 일정에 참가한 수니파 지도자들에게 약간의 권력을 나눠주는 대신 이들이 수니파 사회의 다수를 이라크 안정화 과정에 끌어들이는 데 협력하길 원했다.

그러나 대규모 선거 부정과 더불어 이러한 계획은 시작도 되기 전에 파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주요 수니파 선거 연합인 ‘국민화합전선’의 지도자 아드난 알 둘라이미는 초기 선거 개표 결과가 “이라크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선거 기간 동안 공격을 중단하라고 설득했던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보이콧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선거 참가를 호소했던 사람들에게 대체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수니파 선거 연합들은 선거 부정 시정과 바그다드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임시정부 총리를 지냈던 친미 인사 이야드 알라위와 CIA 첩자 출신인 아메드 찰라비조차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개표 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수니파 지도자들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른 수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미국이 이번 선거 부정 의혹이 낳은 위기를 모면한다고 해도 그들이 원하는 ‘안정’은 여전히 요원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 참가한 연합들은 대체로 통일성과 결속력이 매우 취약하다. 예컨대, 알 사드르가 이끄는 시아파 저항 운동 세력이 UIA에 합류했지만, 알 사드르는 UIA의 주요 지도자인 알 하킴과 핵심 문제들에서 심각한 견해 차이가 있다.

알 사드르는 연방제를 강하게 비난하지만 알 하킴은 열렬히 찬성한다. 알 사드르는 반미·반점령 정서의 대변인 노릇을 하길 원하지만 알 하킴은 미국과 타협을 추구하고 저항 운동을 더 강력하게 탄압하길 원한다.

이러한 차이는 그들의 사회적 기반과 연관이 있다. 사실 알 사드르는 이번 선거에 자신의 무장 조직인 ‘메흐디 민병대’에 기반을 둔 별도의 선거 연합을 참가시키는 ‘이중 플레이’를 구사했다.

주요 수니파 연합 두 개도 저항 운동과의 관계에 차이가 있다. 물론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 정치 연합 사이에는 이보다 더 큰 갈등이 존재한다.

이렇듯 취약한 ‘연합들의 연합’을 성공적으로 조정·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 구성은 물론 연방제 문제, 헌법 개정과 확정, 석유 통제권, 점령군 철수 등 새로 구성된 정부가 다뤄야 할 사안들 대부분에서 격렬한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주요 세력 모두 무장 조직(쿠르드의 ‘페쉬메르가’, SCIRI의 ‘바드르 여단’, 알 사드르의 ‘메흐디 민병대’, 수니파의 무장 저항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선거 참가를 호소한 수니파 지도자들의 위신은 이미 크게 떨어졌다. 만약 이들이 정부에 참가해 미국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한다면 수니파 대중은 급속히 실망하게 될 것이다.

“합법적 변화에 대한 약속에 이끌려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은 진지한 변화가 없을 경우 속았다고 느낄 것이다.”(〈가디언〉의 조너선 스틸)

“그들은 워싱턴과 런던이 자신들을 신경쓰는 진정한 이유는 자신들이 1만 7천 명의 미군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장 저항은 그들의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카드로 남아 있다. 그들은 미군이 철수에 동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인디펜던트〉의 패트릭 콕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