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최초 흑인 여성 대법관 지명:
흑인 차별 반대 운동의 성과로 반긴다.
그러나 대다수 흑인의 삶은 그대로다
〈노동자 연대〉 구독
최근 미국에서 대법관 지명자 커탄지 브라운 잭슨 판사의 청문회가 끝났다. 그가 상원 표결을 통과하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 탄생한다. 올해 초 고령의 대법관 스티븐 브라이어가 은퇴하자 바이든은 자신의 공약대로 흑인 여성을 지명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최고 사법 기관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최종 판단을 하는 기관이다.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합쳐 놓은 기능을 한다. 대법관은 총 9명으로 구성돼 있고, 이들은 종신직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소수인종 우대 정책, 낙태권, 총기 규제, 동성 결혼 등 미국 사회의 첨예한 쟁점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법관의 임명은 언제나 정쟁의 대상이 돼 왔다.
현재 대법원은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6명과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한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이 대법관이 돼도 보수 우위 구도에는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 될 거라는 점 때문에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789년 이래 미국 연방대법관 115명 중 유색인종은 3명, 여성은 5명에 불과했다.
미국 연방 판사로 재직한 흑인 여성의 비율은 미국 역사를 통틀어 2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또한 2021년 기준 미국의 흑인 변호사는 4.7퍼센트밖에 안 된다. 흑인 여성 변호사는 고작 2퍼센트이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낙태권을 지지하고 장애인 차별을 개선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여러 문제에서 진보적 입장을 취했다. 연방대법관에게는 이례적인 국선변호인 경력도 있다.
그래서 그를 대법관으로 지명한 것은 차별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흑인의 90퍼센트가 흑인 여성 대법관의 탄생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의 지명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남긴 퇴적물의 일부이다. 2020년 대중적으로 분출한 이 운동은 평등에 대한 피차별 대중의 염원을 보여 줬고, 이것이 연방대법원 같은 고위 국가기구 내에도 작게나마 변화가 반영될 여지를 만든 것이다.
이런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예컨대 1960년대 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거대한 반란 이후 공직에 진출한 흑인의 수가 크게 늘었다. 1969년과 비교해 1975년에는 그 수가 3배가 됐다(1125명에서 3509명).
인종차별적 우파인 공화당의 다수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바이든의 흑인 여성 대법관 지명 예고에 공화당 미시시피주 상원의원 로저 위커는 “[없어져야 할] 우대 조처의 수혜자에 불과”하다고 냉소했다.
반면,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전미여성기구(NOW), 휴먼라이츠캠페인(HRC) 등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권 단체들은 커탄지 브라운 잭슨을 지지하며 상원 통과를 촉구했다.
이면
흑인 여성 대법관의 탄생은 이렇듯 평등에 대한 피차별 대중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그의 지명을 환영한다.
그런데 바이든은 이번 지명을 이용해 피차별자들로부터 환심을 사려고 한다. 개혁 염원 배신으로 바이든은 현재 임기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바이든은 이번 대법관 지명을 치적으로 삼으려 한다. 대법관 스티븐 브라이어가 바이든에게 큰 선물을 주려고 지금 은퇴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은 여성·유색인종·성소수자를 등용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다양한 내각”을 자랑해 왔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진보성’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와 같은 좌파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임명된 사람들이 진정으로 개혁 지향적이지 않다는 점도 있다.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해리스는 검사 출신으로 경찰 단속 강화와 (흑인을 훨씬 많이 수감시키는) 현재의 사법제도를 옹호한 전력이 있고, 상원의원 재임 시절 낙태 시술 재정 지원에 반대표를 던지고 트럼프의 시리아 공습을 지지했다.
최초의 흑인 국방부 장관 로이드 오스틴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지원하고 모술에서 전쟁 범죄로 유명한 이라크 보안군 훈련을 도운 전직 군장성이다.
물론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앞서 지적했듯이 몇몇 문제에서 진보적 판결을 했다.
여전한 인종차별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경찰의 인종차별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또 한 명의 흑인이 경찰에게 살해됐다. 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에 총을 쏴 두 명을 살해한 극우 카일 리튼하우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소수의 여성·흑인·성소수자가 고위직에 진출한다고 해서, 평범한 대다수 여성·흑인·성소수자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까지 했던 나라에서, 여전히 흑인은 백인보다 5배 이상 많이 수감되고,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경찰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근본적으로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국가는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한 기구다. 그래서 고위직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종종 자신과 같은 차별받는 집단의 다수(노동계급)를 배신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 하나가 1991년에 임명돼 현재에도 대법관인 클래런스 토머스다. 그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흑인 대법관이 됐지만, 소수인종 우대 조처를 반대하고 ‘불법’ 이민자 자녀의 추방을 유예하는 법도 폐지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고위직에 오른 일부 사람과 민주당이 피차별 대중에게 개혁을 선사할 수는 없다. 진정한 진보적 판결과 입법은 언제나 평등을 요구하는 흑인·여성·성소수자·노동자·이민자 등 피차별 대중의 투쟁 덕분에 가능했다. 권력자들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도록 투쟁이 강제한 것이다. 노동계급 등 차별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대중 투쟁을 벌일 때만 실제로 차별을 개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