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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정치의 인종차별주의가 낳은 결과

지난 12월 11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남부 크로눌라에서 인종 폭동이 일어나자, 국내외 언론들은 그 일주일 전 레바논계 청년들의 해안구조대원 폭행 사건이 발단이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해안구조대원 폭행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무슬림 이주민 청년들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 선동을 시작한 오스트레일리아 언론들, 특히 미디어 제왕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신문과 라디오 방송의 지속적인 도발과 선동은 무시했다.

시드니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12월 6일치 1면 제목은 “크로눌라의 투쟁 ― 우리의 해변을 되찾자”였다. 이튿날은 “폭력배들이 크로눌라 해변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였다. 여기서 말한 폭력배들은 그 지역 깡패나 극우 집단들이 아니라 “중동계 깡패들”이었다.

그 신문은 그 주 내내 “해변의 수치를 씻기 위해 함께 싸우자” 따위의 제목을 단 독자편지들을 계속 실었다. 심지어 그 지역 조직폭력배 두목과 한 인터뷰도 특집으로 보도했다. 그는 자신이 ‘관할하는’ 해변에서는 중동계 폭력배들이 설치지 못한다고 으스댔다.

타블로이드 신문뿐 아니라 이른바 자유주의 신문이라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도 중동계 청년들을 비난하는 글을 주요 칼럼으로 실었다. 그 칼럼니스트는 인종 폭동을 “소수 얼간이들의 행동”쯤으로 치부하고, 레바논 폭력배들의 “이질적인 하위문화”를 비난했다.

또, 유명한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한 명은 청취자들에게 “집회”, “거리 행진”에 참가해서 “지역사회의 힘을 보여 주자”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인종차별적 문자 메시지들이 유포되는 이유를 알겠다고 말한 뒤, 일요일(12월 11일)을 “레바논 놈과 아랍 놈 응징의 날”로 만들자고 선동했다.

그러나 언론의 이런 도발과 선동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와 뉴사우스웨일스 주(州) ― 시드니가 있는 주 ― 정부가 지난 몇 년 동안 의식적으로 인종차별을 부추겨 온 더 넓은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연방정부 총리 존 하워드는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격을 바탕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 왔다. 그는 1996년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극우 정치인 폴린 핸슨이 조장한 인종차별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이주민과 난민,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인 애버리진을 공격하며 하원의원에 당선한 핸슨이 등원 첫 연설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아시아인들로 뒤덮여 있다”고 주장하자, 하워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느끼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반영한 말”이라고 핸슨을 두둔했다.

2001년 총선에서 자유당·국민당 연립정부는 난민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오기 위해 자기 자녀들을 바다에 빠뜨렸다고 거짓말하는 등 난민 반대 선동을 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자유당의 핵심 선거 구호는 “오스트레일리아 입국의 대상과 조건은 우리가 결정한다”였다.

또, 9·11 테러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개시 이후 하워드 정부는 무슬림과 중동 이주민들을 계속 속죄양 삼았다. 정부 각료들은 이주민과 난민에게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였고, 경찰은 불심검문이나 불시단속의 대상으로 난민과 이주민을 골라잡기 일쑤였다. 그리고 지난 11월 3일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는 하워드 연방총리가 제출한 반테러법안을 통과시켰다(〈다함께〉 69호 관련 기사 참조).

12월 11일 사태에 대한 하워드의 반응은 으레 그랬듯이 위선적이었다. 그는 집단 폭력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번 사태의 근저에 인종차별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레바논 폭력배들의 “부족주의”가 진짜 문제라고 강변했다.

한편, 주류 야당인 노동당도 하워드의 인종차별 책략에 동조해 왔다. 뉴사우스웨일스의 노동당 주(州)정부는 인종차별과 종교적 분열을 끊임없이 선동했고, 무슬림에 반대하는 인종차별 정서를 이용해 왔다.

1995년부터 올해 7월까지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의 총리를 지낸 밥 카는 재임 기간에 이주민 청년들을 거듭거듭 공격했다. 그는 또 범죄자들과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 너무 쉽게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어올 수 있다며 하워드 정부에게 이민을 엄격하게 규제하라고 요구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의 현 총리 모리스 예마(Morris Iemma)도 전임자의 행동을 반복했고, 그의 정책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그는 12월 15일 경찰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폭동 진압 관련법을 급히 제정하기도 했다.

또, 이번 인종 폭동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 내의 심각한 사회적 긴장도 보여 줬다. 폭력 행위를 저지른 장본인들로 비난받는 무슬림 청년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시드니 서부 교외 지역은 심각한 빈곤, 높은 청년 실업률, 부족한 여가·문화 시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무슬림 청년의 실업률은 다른 오스트레일리아인들보다 대여섯 배나 높다.

이런 사회적 박탈감 때문에 많은 노동계급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채 절망에 빠져들고 있다.

시드니 동부 해변 지역에서도 비슷한 경향은 찾아볼 수 있다. 그 곳의 많은 백인 청년들도 괜찮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거나 심지어 삶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위기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인종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노동계급 청년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어 자신들에게 날아올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 한다.

하워드의 연방정부가 가장 후진적인 형태의 오스트레일리아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것이나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 위선적 “법질서” 회복 운동에 의존하는 것은 모두 똑같은 정치적 필요에서 비롯한 것이다.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류 정당들은 모두 아주 인기없는 우파적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고용 안정을 해치고, 임금과 생활수준을 저하시키는 정책들 말이다. 이런 정책은 최근 60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노동법 개악 반대 시위 같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들 주류 정당들은 이렇듯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과 분노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인종차별 카드를 이용해 왔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을 빙자한 무슬림 이주민 공격과 인종차별 선동이 지속되는 한은 이번 인종 폭동 같은 사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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