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카 강요:
탈레반이 서방의 제재에 여성 억압 강화로 대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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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는 모든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가리는 의복)를 착용하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탈레반 권선징악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부르카 착용이 아프가니스탄 전통에 부합하며 여성이 존중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계도 기간을 거치되, 만일 이를 어기면 해당 여성의 법적 남성 보호인(남편, 아버지 등)을 벌금·구금 등으로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탈레반은 3월 말 여학생들의 등교를 금지했다.
탈레반의 이런 조치들은 여성 억압적이며 반동적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권리는 확대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탈레반의 조치를 비난하고 나선 이른바 ‘국제사회’와 서방의 태도가 극도로 위선적임도 지적돼야 한다. 먼저 서방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기간 동안 실상이 어떠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서방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20년: 끔찍한 빈곤과 전쟁, 부패로 얼룩지다
미국과 서방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 양 포장했지만, 그 실태는 정반대였음이 드러났다.
지난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은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점령과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돼 왔다.
서방 세력이 점령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어떠했는가? 많은 경우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통치 지역조차 친서방 군벌의 폭력으로 인한 치안 불안 때문에 등교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교육 같은 사회서비스 대부분은 그나마 카불 등 대도시에 한정됐고, 전체 인구 3900만 명 중 대다수(72퍼센트)가 사는 농촌 지역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서방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2조 달러 넘게 썼지만, 서방이 점령했던 20년이 지난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인의 90퍼센트는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나토 연합군의 폭격은 이미 수십 년간의 외세 침공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농촌의 가난한 마을에 집중됐다. 서방의 폭격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사망했고, 연합군은 이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아프가니스탄 대중은 절망하고 분노했고, 농촌 지역에서 탈레반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았다.
서방의 후원으로 세워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부패했다. 정부의 핵심 인물들은 군벌 출신인데, 탈레반 못지않게 여성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방식으로 각자의 지역을 통치했다. 친서방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뒷받침한 핵심 군벌인 북부동맹은 탈레반의 1차 집권 전인 1992년부터 1996년 사이에 수많은 집단 강간과 학살을 저지른 세력이다.
이런 군벌들이 통치한 지역에서 여성들은 탈레반 통치 시절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생활했다. 여성들은 부르카를 강요받았고, 강간과 폭력 등 여성에 대한 범죄는 만연했다.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굶주리는 동안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요인들은 양귀비 재배와 헤로인 밀수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친서방 아슈라프 가니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군벌 출신 압둘라시드 도스툼의 호화 저택이 탈레반의 카불 장악 이후 공개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절대 다수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빈곤선 하에서 근근이 생활하는 동안, 도스툼은 실내 정원, 수영장, 대리석 사우나 등 최고급 시설이 설치된 거대 저택에서 살았다.
서방은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들과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와도(부패하고 여성 억압적인 자들일지라도) 손을 잡았다.
아프가니스탄 문제 전문가이자 전 버클리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사바 마흐무드는 이렇게 꼬집었다.
“어째서 전쟁이 낳은 조건([강제] 이주와 군사화)과 ([미국이 지원했던 이슬람주의 조직] 무자헤딘하의) 기근이 (탈레반하에서의) 여성의 교육 기회 박탈, 고용 금지, 그리고 특히나 서방의 언론이 집중하는 옷차림보다 여성에게 덜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서방의 제재와 탈레반 정부가 직면한 모순
탈레반은 정치적 안정과 질서를 약속했다.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의 점령을 종식해 전쟁과 폭격을 끝내겠다고도 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탈레반 외에는 다른 정치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던 친서방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탈레반에게 정권 유지는 정권 획득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 때문에 탈레반 정부의 자금 대부분이 동결된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교사, 보건의료 노동자 등 필수 분야 종사자 수백만 명의 임금이 수개월째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는 수많은 여성들과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빈곤과 기아로 밀어 넣고 있다.
산업과 사회 기반 시설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탈레반 정부는 대규모 기아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유엔 조사를 보면, 아프가니스탄인 중 95퍼센트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은 아프가니스탄인 870만 명이 기아 위기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레반 정부는 종교적으로 더 보수적이고 급진적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도전도 받고 있다. 이들은 탈레반이 서방과 협상에 나서는 등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고 비난한다.
탈레반 정부가 부르카 강요를 통해 이루려는 것은 이런 안팎의 압력에 대응해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을 더욱 통제하는 것이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고 10개월이 지난 시점에 부르카 강요를 시행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짧게는 서방의 점령 20년, 길게는 소련의 침공부터 4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인들은 너무 많은 고통과 죽음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서방의 제재는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이런 고통의 연장을 강요하고, 탈레반 정부가 더욱 억압적인 조처로 대응하는 빌미를 줄 뿐이다. 서방과 이른바 ‘국제사회’의 ‘개입’이 아프가니스탄 인들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서방 제국주의의 제재와 간섭이라는 장애물이 없을 때, 어렵더라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삶을 개선할 단초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