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아마존 등 미국 대기업들:
앞에선 낙태 지원, 뒤에선 반낙태 정치인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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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한 지 2주가 지났다. 공화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주에서 낙태 금지·제한 조처가 속속 발효되고 있다.
대통령 바이든은 7월 8일에서야 낙태약 접근 보장 등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뒤늦은데다 그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고, 낙태 금지 주법이 있는 곳에서는 영향력이 없다. 바이든은 ‘하이드 수정안’(낙태 시술 대부분에 연방정부 기금 사용을 금지한 법안) 폐기도 말하지 않았다. 행정명령이 발표되고 하루 뒤 백악관 앞에서 여성들이 바이든더러 더 많은 조처를 취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한편, 미국 거대 기업들 사이에서도 낙태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소속 노동자가 낙태를 위해 주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것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과 골드만삭스, JP모건, 씨티그룹 등 금융회사, 통신기업 AT&T, 월트 디즈니 등이 낙태를 위한 이동 경비나 그 기간 유급 휴가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침묵하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미국 기업들의 낙태 비용 지원 소식을 크게 부각했지만, 한 외신에 따르면 이런 기업은 미국 기업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
낙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일이고, 더 확대돼야 마땅하다. 지난해 미국 성인 18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퍼센트가 직장 건강보험에 낙태가 포함되기를 바랐다. 아마존의 노동자들은 이런 조처가 계약직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행보가 그들이 진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서는 아니다.
개별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낙태 금지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력에서 이탈하는 상황이 손해일 수 있다. 미국에서 여성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핵심적 노동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한적으로 이런 조처를 내놓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기업들은 낙태 권리를 후퇴시켜 온 공화당과 그 인사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대 왔다. 미국의 낙태권 활동가들은 기업의 어마어마한 후원이 없었다면 각 주에서 낙태 반대 정치인과 단체가 저토록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을 거라고 꼬집는다.
미국의 독립 감시 언론 〈파퓰러 인포메이션〉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부터 13개 주요 기업은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와 각 주에서 낙태 금지 조처를 이끌어 온 전미공화당상임위원회(NRSC), 공화당주지사협회(RGA) 등에 1520만 달러를 기부했다.
여기에는 노동자에게 낙태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아마존(97만 4000달러), 시티그룹(68만 5000달러), 구글(52만 5000달러), AT&T(147만 2000달러)가 포함됐다. 이는 낙태 반대 정치인에게 직접 기부하거나 비영리 단체에 기부한 것을 제외한 액수다.
여성 단체인 울트라바이올렛은 2020년부터 미국 기업들이 낙태 금지법을 추진한 의원들에게 1억 9540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낙태 지원을 밝힌 AT&T(499만 2000달러), 월트 디즈니(45만 2000달러), 우버(28만 달러)는 여기서도 큰 손이다.
기업이 해당 지역의 유력 우파 정치인에게 돈을 대는 일은 미국에서 흔한 일이다. 그 대가로 기업은 세금을 면하거나 노동정책에서 유리한 혜택을 받는다. 정치인들이 그 돈으로 해당 주에서 여성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릴 낙태 금지를 밀어붙이든 말든 기업에게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들의 비난이나 저항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미국 기업들이 낙태 금지를 최전선에서 추진하는 정치인에게 막대한 돈을 대면서, 자신의 낙태 지원을 홍보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