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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하청 파업과 원하청 연대:
노동자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한가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가 지난 7월 21~22일 실시하다 중단된 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다시 논란을 빚고 있다.

그 투표는 하청노조 파업에 반대한 우파적 대의원들이 발의했다. 하청노조가 속해 있는 금속노조를 탈퇴하겠다는 압박을 가해 하청노조를 굴복시키려는 술책이었다.

그러나 정규직 조합원 다수의 정서는 호기롭게 총투표를 추진한 우파의 예상을 빗나갔다. 개표가 3분의 1가량 진행된 단계에서 이미 반대표가 찬성표를 앞섰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해당 선거구는 우파가 밀집해 있는 곳인데도 그랬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선관위 측은 (찬반 양쪽 모두에서) 무더기 표가 나왔다는 이유를 들어 개표를 중단시켰다.

방금 2주간의 여름휴가가 끝나고 다시 공방이 시작됐다. 노조 지도부는 중단된 개표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는 재투표를 하자며 맞서고 있다.

잠재력

투표 중에 이미 드러난 진실은 정규직 노동자 다수가 비정규직을 내치자는 선동에 동조하지 않고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연대 잠재력에 대한 일각의 비관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임금‍·‍조건 공격의 완충지대로 삼아 자기 잇속만 챙긴다고 회의하기 일쑤다.

아마도 그들은 대우조선 정규직의 우파적 일부가 (사측과 협력해) 하청노조 파업에 비난을 퍼붓고, 조직적으로 반대 시위를 하고, 농성장을 침탈하며 난동을 폈을 때, ‘역시 정규직은 안 돼’ 하는 결론을 내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규직 노동자의 다수는 우파의 선동에 호응하지 않았다.

정규직 일부가 비정규직을 배척한다고 해서 거기에 물질적 근거(이해관계의 대립)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비정규직을 잘라 정규직 일자리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쉽게 해고한 여세를 몰아 정규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원하청 연대가 의식적으로 조직됐다면, 하청노조에 훨씬 더 유리한 정치적 지형이 형성됐을 것이다 ⓒ출처 〈금속노동자〉

만약 이번에 원하청 연대가 의식적으로 조직됐다면, 하청노조에 훨씬 더 유리한 정치적 지형이 형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투쟁이 더 나은 성과를 냈다면, 그것은 대우조선의 하청 노동자들뿐 아니라 원청 노동자들, 더 나아가 한국의 전체 노동자들에게 이로웠을 것이다.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

아쉽게도 이번 투쟁에서 그 같은 원하청 연대는 이뤄지지 못했다.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요구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파적 조합원들의 반대 시위와 난동에 맞서지도 않았다. 그저 쩔쩔맸다.

후자의 압력을 부담스러워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지침을 어기고 민주노총 주최 공장 앞 연대 집회에 불참하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하청노조에 농성 해제를 요구해 사실상 파업 중단을 압박했다. 이는 우파 조합원들의 기를 더 살려 줬다.

흔히 노조 지도층 사람들은 모름지기 노동조합이란 후진적 견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자칫 노조가 분열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후진적 의견에 도전해 연대를 충분히 설득하지도 않은 채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불가피하지 않았던 타협을 조합원 탓으로 돌리는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이 점에서 정규직 노조 내 좌파 활동가들도 아쉽다. 분명 그들은 우파적 반동에 동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대 건설의 노력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저 중간에서 부유하는 노동조합 내 온건한 부위에 타협하며, 평화적 협상을 통한 해결을 주문했다.

노조 집행부가 우파 조합원들을 추수하고, 좌파 활동가들이 노조 집행부를 추수하는 연쇄 악순환이 벌어진 셈이다.

단결은 쟁취하는 것

온건한 정규직 활동가들은 하청노조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너무 세게 싸워” 갈등을 키운 게 갈등의 출구를 막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처럼 양극화가 첨예해진 상황에서는 현실론을 내세워 “적당히” 하라거나 “무리한 투쟁”을 자제하라는 압력이야말로 노동자들을 분열과 혼란으로 이끌었다.

정부와 사용자, 언론들은 이런 틈을 비집고 ‘과도한 투쟁으로 다 공멸하게 생겼다’며 이간질하고, 투쟁을 이끌 태세가 돼 있는 전투적 부위를 고립시키곤 한다.

단결은 여러 견해를 봉합해 중간에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라, 현실의 여러 압력에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논쟁하고 투쟁 속에서 힘껏 연대할 때 강화된다. 즉, 좌파가 싸워서 입증하고 쟁취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진정 필요했던 것은 점거 농성을 굳건히 방어하며, 사업장 안팎에서 노동자들의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협소한 자기 부문의 시야에서 볼 일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잖은 활동가들이 내 코가 석 자라는 이유로, 내가 속한 노조나 부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임금이 깎이는 고통을 눈감아 왔다.

대우조선에서는 좌파 집행부가 들어서기도 했지만, 그때도 하청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는 노조 기구 내 담당자의 몫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런 칸막이화는 관료주의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그저 추상적 원칙으로만 취급한 채, 조합주의와 부문주의에 갇혀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쟁취하고자 분투하는 투쟁적 계급정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