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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정치

[편집자 주] 주류 언론들과 지배자들은 새해 벽두부터 독일 월드컵을 홍보하며 국가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월간 《다함께》 9호(2002년 2월)에 실린 이 기사는 월드컵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기초가 될 것이다. 약간의 편집을 거쳐 다시 싣는다.

축구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대중 스포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연인원 4백억 명 이상이 TV를 통해 월드컵 경기를 시청했다.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축구를 보며 다소간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장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좀체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진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전 세계를 유린하는 미국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의 약소국들에 패배할 수 있다. 또, 전반전 내내 고전하던 팀이 후반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을 때 많은 사람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또, 빈민가 출신의 스타 플레이어들(펠레, 마라도나, 호나우두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기 때문에 축구는 흔히 지배자들의 유용한 지배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고대 로마의 지배자들이 콜로세움(노천 원형 극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음식과 오락을 제공해 대중의 불만을 달랜 것처럼 말이다.

월드컵의 창시자 줄 리메는 “축구야말로 계급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모두를 한 마음으로 만들어 세계를 행복한 한 가족으로 단합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드컵의 역사는 각국 지배자들이 월드컵을 억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왔음을 보여 준다.

1962년 칠레 정권은 격렬한 파업을 무마하는 데 월드컵을 이용했고, 1966년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월드컵 우승을 틈타 임금을 동결했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197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월드컵을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적극 이용했다. 또, 우승으로 군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준결승전에서 페루를 매수했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고 결국 우승했다.

펠레는 월드컵이 이렇게 억압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에 항의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군부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은 브라질 대표 유니폼을 입고 싶지 않았습니다.”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다. 각국 지배자들은 월드컵을 이용해 “국민적 단결”을 호소하고 민족주의(국가주의)를 부추기려 애쓴다. 그 때문에 월드컵은 종종 국가 간 경쟁과 폭력으로 얼룩지곤 했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홈팀인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에 이겨 우승했다. 그러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아르헨티나인들이 도로로 뛰쳐 나가 우루과이 영사관에 돌을 던졌고 그 때문에 두 나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됐다. 1969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서 맞붙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경기는 경기장 밖 전쟁(5일 전쟁)으로 번져 수천 명이 사망했다.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거대한 상품이다. 특히 1970년대 이후 TV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중계료를 주요한 돈벌이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2002년과 2006년 월드컵대회 중계권을 획득한 대행사인 ‘키르히’와 ISL은 20억 달러(약 2조 원)에 FIFA와 계약했다.

‘키르히’와 ISL은 축구 이외의 종목들로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결국 파산해버렸지만, FIFA는 2010년과 2014년 대회의 중계권도 대륙별로 대행사를 선정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중계료를 더욱 높이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코카콜라는 월드컵 청량 음료 스폰서가 되는 특권으로 10년 동안 1억 달러(약 1천억 원)를 지급했고, 아디다스는 10년 동안 1억 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심판복에 아디다스의 삼색선 상표를 부착하게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월드컵 브랜드 독점권으로 공식 협찬사들이 지급한 평균 액수는 4천만 달러(약 4백억 원)였다.

이들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축구 규정을 바꾸고 경기 수를 늘린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더 많은 골이 터지도록 골대 크기를 늘렸고, 광고 시간을 늘리기 위해 4쿼터 경기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공식 협찬사들의 이윤을 위해 16개 국이던 본선 진출국 수가 지금은 32개 국으로 늘어났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호나우두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무릎 부상인데도 나이키와 맺은 계약 조건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어슬렁거려야 했다. 호나우두는 그 후유증으로 3년 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축구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월드컵은 뇌물, 승부 조작, 판정 시비, 다국적 기업들의 돈벌이, 마약 밀매, 경기장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노동자들은 멋진 축구 경기에 열광하다가도 월드컵의 추악한 실상에 환멸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월드컵에 매료되는 노동자들의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지배자들이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 지배자들이 노동계급의 영혼을 사로잡기 위해 이용하는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와 자본주의

애초에 축구는 미래의 은행가, 공장 소유자, 제국 행정관이 될 청년들의 스포츠였다. 이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자치 능력, 독창성, 자기 규율이 요구됐다.

축구가 대중 스포츠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후반이었다. 자본가들은 산업혁명기의 착취 방식에서 탈피해 점점 더 (반)숙련 노동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얼마간의 교육과 적절한 식사와 여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야 했다. 토요일 오후 휴무는 대중 스포츠의 길을 열었다.

축구가 상류층에서 노동계급으로 확산된 것은 “모범적인” 노동계급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용주들은 스포츠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노동에 적합한 규율을 부과하고 싶어했다.

그 결과, 아스날 팀은 울리지의 로얄 아스날(왕립 병기 창고) 노동자들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은 랭커셔와 요크셔 철도 노동자들로, 웨스트 햄 유나이트 팀은 탬즈 철강 노동자들로 구성됐다.

오늘날 축구는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때문에 거대한 사업이 됐다. 이것은 축구가 철저하게 자본의 이해 관계에 따라 운영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들이 축구를 즐기고 때때로 경기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축구는 근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이 통제하고 지시하는 프로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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