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맹세와 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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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계급 적대를 누르고 국가와 기존 질서에 충성하도록 만들기 위한 지배자들의 도구일 뿐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김종필이 간택한 문안에 박정희가 친필 싸인을 곁들임으로써 1972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이 때는 3선 개헌 강행이 대중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그 결과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간신히 승리하는 등 박정희에게 위기의 시기였다.
박정희는 이 위기를 유신 체제의 확립과 애국주의 조장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 한 방법으로, 여성경제인연합회에게서 국기함과 태극기 1만 개를 받아 낙도와 벽지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영화관에서 애국가 필름을 돌리게 하는 등 대대적인 ‘국기 캠페인’을 벌였다.
학생들은 학교를 오가며 심지어 하루 10번 넘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해야 했다. 맹세를 거부하면 정치범 취급을 받았다. 당시 광양에서는 2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심문을 받았고, 이 학생들에게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 주일 학교 교사는 ‘사상범’으로 지목돼 결국 구속됐다.
1950년대 반공 구호와 일제 시기 황국신민서사와 그 내용에서 형식까지 꼭 닮은 ‘국기에 대한 맹세’는 박정희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980년 전두환 정권 때는 국무총리 지침에 따라 학교뿐 아니라 전 국민이 국기 경례와 맹세를 의무로 병행하게 됐다.
오늘날도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생각과 무관하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만 한다. 최근 한 중학생은 종교적 신념상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썼다가 고등학교 입학이 거부됐고,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청에서 징계 위협까지 받았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보다 애국심을 우선시하고 강요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