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대물림하는 이주노동자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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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족과 오랜 기간을 떨어져 지내는 신세다. 10년 이상 가족과 떨어져 지낸 사람도 적지 않다.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한국으로 데리고와 가족 결합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이 미등록 신분이다 보니 그 자녀도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불법’이 된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간에 결혼을 해 가족을 이룬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출생 신고 기간 한 달이 지난 순간부터 ‘불법체류자’ 신분을 안겨 준다. 이 나라 국적법이 혈통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둔 이주노동자 가족은 대부분 맞벌이를 해야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다. 국공립 양육시설은 부모가 미등록 신분인 이주자의 아이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 경우 브로커가 개입해 돈을 받고 일을 처리한다.
부모와 함께 한국에 남게 된 자녀들의 처지도 매우 심각하다. 이주노동자 가족들이 대부분 빈곤층이지만 어떠한 사회보장 서비스도 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 자녀의 63퍼센트가 아파도 병원에 못가고 있다.(국가인권위, 2003년 ‘국내 거주 외국인노동자 아동 인권’)
이 아이들이 커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또래 한국인 아동이나 청소년들처럼 학교에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출입국사실증명서’가 있어야만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하고 중학교를 진학하면 청강생 자격만 부여한다. 고등학교 진학은 아예 불가능하다. 2003년 ‘불법체류’ 아동 1천 명 중 2백5명만이 취학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매우 어린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국가인권위 조사를 보면 초·중학생 나이의 이주노동자 청소년 5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공장 노동자가 20.7퍼센트나 됐다. 미취학 중학생들 중에서는 50퍼센트가 공장 노동자라고 답변했다. 이들은 3D 업종 공장에 취업해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보통 80만 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동남아 출신 아동들은 “깜둥이”, “아프리카”라고 놀림을 당하고 무시당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과 그들 부모의 신분이 합법화돼야 한다. 그리고 취업의 자유뿐 아니라 기본적인 교육과 사회보장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미등록 신분의 부모가 단속에 걸려 추방당해 그들의 자녀들이 아무런 보호도 없이 혼자 방치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국제 조약’을 비준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자유 왕래가 보장돼 수년 씩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지내야만 하는 안타까운 일이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