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혐오증과 인종차별의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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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혐오증과 인종차별의 발로
주류 언론들은 이른바 무하마드 풍자만화 사태가 서구와 이슬람의 ‘문명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그래서 타리크 라마단 옥스퍼드대 교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유럽인들은 종교 풍자에 익숙지 못한 이슬람권 문화를 이해하고, 무슬림들도 종교 풍자가 유럽 문화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을 보면, 문화적 차이라기보다는 무슬림 혐오증과 인종차별에 바탕한 의도적 도발에서 비롯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9월 30일 덴마크 일간지 〈율란트-포스텐〉에 실린 무하마드 풍자만화 12컷이었다. 무하마드가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그림, 하늘나라에서 자살폭탄 공격자들을 만난 무하마드가 그들에게 보상으로 제공할 처녀들이 다 떨어졌다고 말하는 그림, 베일을 두른 여성들을 양옆에 끼고 한 손에 칼을 든 무하마드가 이를 드러내고 히죽 웃는 그림 등이었다.
〈율란트-포스텐〉은 만화가들에게 “무하마드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이라는 주제로 만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가득 찬 그림들이었다.
〈율란트-포스텐〉의 편집자는 “사람들이 무슬림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 검열에 굴복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 만화를 게재했다고 말했다.
〈율란트-포스텐〉은 1920∼30년대에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나 독일 나찌 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것으로 악명높은 신문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33년에 이 신문은 덴마크에도 독재정권이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율란트-포스텐〉은 덴마크 총리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이 이끄는 우파 연립정부를 지지한다. 이 연립정부에는 이주민과 무슬림을 혐오하고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정당도 포함돼 있다.
라스무센은 지난해 10월 무슬림 나라 대사 11명이 무하마드 풍자만화에 대한 항의성 면담을 요청했을 때 이를 거절했다. 그 뒤에도 덴마크 정부는 덴마크 무슬림 단체들의 항의를 계속 무시했다.
그러다가 지난 1월 말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가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들을 소환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은 덴마크 상품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그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유럽 2위의 유가공업체인 덴마크 회사의 중동 지역 매출이 바닥을 치자 덴마크 정부는 마지못해 유감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여전히 〈율란트-포스텐〉을 옹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프랑스·독일·네덜란드·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 등의 언론들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며 잇따라 만화들을 게재했다. 〈프랑스 수아르〉의 편집자는 사설에서 “이런 반동적 광신도들은 신물난다”고 썼고, 〈르몽드〉는 작은 글씨로 “무하마드를 그려서는 안 된다”고 쓴 문장들을 모아서 무하마드의 얼굴 모습을 그린 만화를 독자적으로 게재했다.
이런 무슬림에 대한 모욕과 도발 공세에 우파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무슬림 여성들의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네덜란드 국회의원은 “덴마크 만화가들과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상징적 조처”로 자신의 웹사이트에 무하마드 풍자만화들을 게재했다.
또, 프랑스 내무장관 니콜라스 사르코지도 덴마크 정부와 유럽 언론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의 무슬림 이주민들을 “쓰레기”라고 비난해 인종 소요를 촉발한 자다. 인종 소요 직후 사르코지가 주도해 만든 법률에 따르면, 모든 외국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범죄 혐의로 기소되기만 해도 즉결 추방당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라 인종 소요 당시 체포된 청년 수백 명이 지금 추방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사르코지는 지금 언론의 자유 운운하며 무슬림에 대한 모욕과 도발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 소요 이후 비상사태를 선포해 시민적 자유를 억압한 장본인이 바로 사르코지다. 또, 사르코지와 대통령 자크 시라크가 이끄는 우파 정부는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해 많은 무슬림의 반발을 사고 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도 외국인들을 독일 땅에서 쫓아낼 더 강력한 조처들을 요구했고, 네덜란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지원할 군대를 추가 파병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2월 3일 미국 국무부는 무하마드 풍자만화 게재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그런 만화는 무슬림들의 신앙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그런 자유는 언론의 책임에 부합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종교적·인종적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한 위선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핑계로 애국법을 만들어 시민적 자유를 억압하고 미국 내에서 무슬림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하며 수치와 굴욕을 강요한 것이 바로 부시 정부다.
또,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감옥이나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 무슬림들의 신앙을 모욕하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도 부시 정부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인들의 사상자 수를 제대로 기록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
지난해 초 2기 취임사에서 “십자군 국가 미국” 운운하며 무슬림들을 자극했던 부시는 1월 31일 국정연설에서도 “자유를 반대하는 주된 세력은 과격 이슬람”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무슬림들이 예언자 무하마드에 적대적인 만화가 도발적이고 선정적으로 언론에 게재되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이라크 전쟁과 점령이 지속되고 있고, 지난 1월 25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한 뒤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위협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란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돼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와 궁극적으로는 군사 공격까지 준비되는 듯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불거졌다. 무슬림들의 반발과 분노가 거셀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번 사태는 서구와 이슬람권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직접적 결과인 무슬림 혐오증과 인종차별의 확산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수현
유럽 언론의 이중잣대
영국 리스펙트 사무총장 존 리즈
“유럽 언론이 반(反)이슬람 만화들을 싣는 것은 완전한 이중잣대를 보여 준다. 만약 그것이 제시 잭슨 목사의 얼굴을 기괴하게 그린 만화라거나 매부리코의 유대인이 돈을 세는 그림이었다면, 자유주의 언론들은 당연히 그런 인종차별적 그림들을 비난하는 사설들을 통해 분노를 터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화들이 이슬람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유럽의 이른바 자유주의 언론들은 그런 만화를 비난하기는커녕 앞다퉈 그 만화들을 싣고 있다.
이제 이슬람혐오주의는 받아들여도 좋은 마지막 인종차별 형태가 된 듯하다.
우리는 그런 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 마치 냉전 시절 반공주의가 냉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였듯이, 9·11 공격 이후 이슬람혐오주의는 이라크 전쟁과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됐다.
이것이 지금 뜻하는 바는 세계의 일부 약소국에서 온 압도 다수의 가난한 아시아계 무슬림들이 영국에서 다른 인종이나 종교 집단이라면 당하지 않을 차별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 지역사회를 지지해야 한다. 인종이나 종교의 차이를 떠나 모두 힘을 합쳐 차별에 반대해야만 1930년대에 유대인들을 게토로 몰아넣은 것과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