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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레프트’? ‘제3의 길’은 없다

최근 언론들이 ‘뉴레프트’(신좌파)의 등장을 보도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뉴레프트’는 ‘좋은정책포럼’, ‘새희망포럼’, 세교연구소 같은 단체들이다.

그러나 이 단체들을 뭉뚱그려 ‘뉴레프트’라고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서구의 뉴레프트 운동은 1960년대 스탈린주의 공산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 등 보수화한 전통적 노동운동 조직에 반발하는 급진적 흐름에서 출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70년대 중후반 ‘신사회운동’(노동계급(운동)과의 거리두기를 뜻하는)으로 후퇴하며 우경화의 길을 걸었다.

세교연구소를 제외하면 이 단체들은 ‘뉴레프트’라기보다는, 자신들도 인정하듯이 앤서니 기든스 류의 ‘제3의 길’(사회자유주의)을 표방하는 단체들이다.

‘좋은정책포럼’과 ‘새희망포럼’은 모두 “한국적 제3의 길”, “신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제3의 길

‘제3의 길’은 1990년대 중반 영국 블레어의 ‘신노동당’, 독일 슈뢰더의 사민당 등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우경화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배경이 돼 왔다. 사실상 신자유주의를 사회민주주의적 외피로 포장한 것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복지를 공격하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공격해 왔다.

이들이 추진한 신자유주의는 노동대중의 광범한 환멸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제3의 길’ 정당들은 잇단 실패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우경화와 이에 대한 대중의 환멸 때문에 우파가 집권했다. 또한 ‘제3의 길’ 정당들의 위기는 새로운 급진좌파가 성장할 여지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의 ‘좌파당’, 영국의 ‘리스펙트’, 포르투갈의 ‘좌파블록’이 최근 약진하고 있다.

서유럽에서 이미 ‘실패한 길’로 입증되고 있는 ‘제3의 길’이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등장하려 하고 있다.

한국판 ‘제3의 길’ 단체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잡탕’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좋은정책포럼’에는 류동민 교수 같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부터 “부산 아펙을 FTA 추진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 현오석 같은 자들까지 공존하고 있다.

‘새희망포럼’의 설립자 이태복은 1996년 “개혁세력이 대연합을 형성,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을 지원해야 한다”며 신한국당에 입당하려 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 복지부장관을 지냈다. 이태복은 병원 영리법인화 허용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비록 ‘진보·좌파적 가치’를 모호하게 표방하기도 하지만,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좌파와 우파의 타협이다.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인 김형기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 모델은 한국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많은 그늘이 있었지만 그 기초 위에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었다는 것을 진보세력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뉴라이트’의 유석춘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화답했다.

둘째, 이들은 신자유주의와 시장을 인정한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신자유주의는 세계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나가게 하고 한국의 경제 주체들을 단련시키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의 대안은 ‘국가와 시민들에 의해 조정’되는 “공정한 시장경제”다.

셋째, 계급 투쟁에 대한 부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등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 함께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사·정·민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양극화와 계급 적대를 봉합하겠다는 정치는 몽상적인 동시에 구체적 맥락에서는 노동자 투쟁을 반대하게 될 뿐이다.

이렇듯 자본주의의 압력을 받아들이고 체제의 논리에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단체들의 주장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개념으로 혼란돼 있다.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면서도 양극화의 주범인 ‘시장개방’과 FTA 체결을 ‘적극적·능동적 방식’으로 지지한다.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말하면서 동시에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 규제 완화’가 공존한다.

이들이 결국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을 옹호하기 때문에, 이들의 실천은 진정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혼란

사실 한국적 ‘제3의 길’ 단체들의 출현은 노무현과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좋은정책포럼’ 대표들은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했다. 이 포럼에 참여한 인사들 중 상당수가 전·현직 대통령정책자문위원들이다.

‘새희망포럼’은 “민주화세력의 세 번에 걸친 국정운영 실패는 … 참담하기 그지없다”며 “토론과 연구를 통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좋은정책포럼’의 김동민 교수는 “미우나 고우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성공해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전혀 없다”(《인물과 사상》 2003년 12월호)고 말했다.

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은 이 단체들의 구실은 “현 정부의 정책을 보완”하는 것이며, 이들의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뉴레프트’는 전혀 ‘새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