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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임옥상 작품 철거를 묵인해선 안 된다

9월 5일 서울시장 오세훈이 임옥상 작가의 성추행 유죄 판결을 이유로 ‘위안부’ 추모 공원인 남산 ‘기억의 터’에 있던 ‘대지의 눈’ 등 핵심 조형물 2개를 철거했다.

9월 5일 남산 ‘기억의 터’에서 철거되는 ‘대지의 눈’ 조형물 ⓒ출처 서울시

최근 임옥상 작가는 2013년에 자신의 연구소 직원을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한 혐의로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기억의 터는 2016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시민 1만 9755명의 모금(3억 1712만 원)에 힘입어 만들어진 공원이다.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해당 작품 철거를 옳게 반대했다.

민중미술가로 유명한 임옥상의 많은 작품이 저항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서울 중구 전태일다리 위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이다. 작품 중에는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를 그린 것도 있다.

〈조선일보〉 등 우파 언론과 오세훈이 판결이 나오자마자 크게 보도하며 임옥상 작품 철거 여론 조성에 나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서울시 요구로 전태일 재단은 ‘전태일 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를 통해 동상 철거 여부를 결정하는 논의에 들어갔다. 이 동상도 2005년 양대 노총 등 노동자·시민의 모금으로 설치됐다.

오세훈의 임옥상 작품 기습 철거는 여성 인권 존중과 무관한 역겨운 위선이다. 그저 역사적 기억(민주주의의 기억) 지우기가 목적이다.

서울시는 “성추행 유죄 판결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존치하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세훈이 지도적 당원인 국민의힘이야말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해 온 장본인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 면책 합의를 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합의 철회 요구를 국민의힘은 철저히 무시했다.

윤석열 정부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에게서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효화시켰다.

오세훈은 한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일본의 전쟁 범죄를 눈감아 주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물론 임옥상의 성추행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그는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우파가 캔슬 컬처를 이용해 그의 작품들을 철거하는 것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의 작품이 성추행 찬양 작품도 아니고, 범죄의 산물도 아닌데, 직결되지도 않는 문제로 정부는 우파에게 불리한 역사 지우기를 이미 실행하고 있다.

캔슬 컬처의 모순

제국주의와 노동자 억압, 민주적 권리 침해를 지지하고 여성 차별을 온존시켜 온 우파가 성폭력 사건을 이용하는 것은 실로 역겹다.

교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우파가 여성운동 등 차별 반대 운동에서 널리 사용되는 ‘캔슬 컬처’를 이용해 자신의 불순한 목적을 감춘다는 점이다. ‘캔슬 컬처’는 잘못된 언행을 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학교나 직장, 공동체에서 추방하려는 활동을 총칭하는 말이다.

오세훈과 국민의힘, 〈조선일보〉 등 우파가 여성단체들의 ‘기억의 터’ 철거 반대를 임옥상의 성추행을 비호하는 것처럼 비난한 것은 왜곡이다.

그러나 정의연 등이 임옥상 작품 철거는 “환영”하지만 기억의 터 철거는 반대한다고 선별해 주장한 것에는 난점이 있다. 여성단체들은 철거된 ‘대지의 눈’ 등은 임옥상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과 여러 작가와 활동가, 모금에 동참한 시민들이 함께 만든 상징물이라며 철거에 반대했다. 하지만 기억의 터가 순전히 임옥상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고는 해도, 철거된 조형물은 임옥상이 주도한 작품이다.

사실 여성단체들이 캔슬 컬처 같은 과도한 방식을 지지하고 실천해 온 것을 지금 우파가 적극 이용해 역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캔슬 컬처는 차별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그 수호자들이 아니라,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개인들을 규탄하고 배척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 대상은 대개 평범한 사람들이고, 문제의 상대적 경중을 흐리는 등 여러 난점이 있다(관련 기사: 본지 413호, ‘캔슬 컬처, 차별에 맞선 효과적인 방법?’). 그러나 차별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지배계급이 주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캔슬 컬처의 핵심 모순은 지배계급은 그런 방식으로 약화되지 않는 반면, 도덕주의적 찍어내기 방식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과 좌파 사이에서는 갈등이 심해지고 운동이 분열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좌파는 그 누구의 성폭력이나 여성 차별적 언행이라도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비판 대상의 다른 업적들을 무효화시키는 환원론에 따라서도 안 될 것이다.

예컨대 폴 고갱이 타히티의 10대 여성과 성관계를 했고 폴리네시아 사람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드러냈다 해서 해외 여성단체들이 그의 작품 전시를 ‘캔슬’한 것은 지나친 일이었다.

다른 예로 줄리언 어산지의 성폭행 혐의와 별개로 그를 미국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방어해야 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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