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후변화》, 교유서가, 마크 매슬린 지음:
유용한 과학적 정보를 주지만 정치적 대안은 다소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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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매슬린이 쓴 《기후변화》가 국내에 출간됐다. 마크 매슬린은 기후변화를 알리고자 노력한 과학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의 초판은 2000년대 초 기후변화에 관한 진실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 초심자들을 위해 쓰인 개설서다.
초판 발행 이후 인기에 힘입어 네 번째 전면 개정판이 나왔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늘어나서이기도 하지만, 수십 차례의 국제 협상에도 사태가 더욱 악화된 것이 개정판을 내 온 핵심 이유라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은 두 배 증가했다. 이것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단체로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네 번째 개정판만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 모든 것이 변한 것은 세 번째 세계적 환경운동의 물결이 시작된 2018년이다.”
마크 매슬린은 영국의 멸종반란 운동, 그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청소년들의 ‘학교 파업’, 매우 영향력 있는 IPCC 보고서 발행 등이 이어진 것에 큰 영감을 얻은 듯하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지구시스템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만큼 기후변화에 관한 설명은 매우 깊이 있다. 동시에 전혀 난해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또, 기후변화 부정론을 “증거의 무게”로 압도하는 그의 비판은 통쾌하다.
그런데 저자는 기후변화 협약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그 비판이 트럼프 같은 우파를 향할 뿐 바이든에게는 너무 관대하다. 이 책이 바이든 취임 이후 처음 열린 26차 당사국 총회(COP26) 전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이 회의에서 바이든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 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아예 거꾸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가 석유 증산을 요청하고, 미국 국내에서 신규 석유 채굴을 허용한 것이다.
마크 매슬린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정치를 주도해 온 신자유주의가 기후변화 대응을 막은 주범이라고 비판한다.
“가장 커다란 아이러니 중 하나는 자유시장 가치에 대한 위협 때문에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바로 그 정치인들이 화석연료 업계에 대한 연간 5조 달러 이상의 보조금 지급을 기꺼이 승인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건 미신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체제의 근본 작동 원리에 대한 분석과 비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정부, 국제기구 등이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의 탄소 중립 선언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 기업주와 국가들이 정말로 신속한 전환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난망하다. 화석연료는 여전히 핵심 에너지원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상품이다. 그만큼 큰 이윤이 걸려 있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주요 선진국 정부들이 하나같이 가장 더럽지만 값싼 에너지원(석탄)을 향해 달려간 점은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는 개별 기업들이 자본 축적 경쟁을 벌이는 체제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 경쟁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고 개입도 하지만 근본에서는 자국 기업의 승리를 위해 노력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어떤 기업이나 국가도 나홀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다. 더 많은 비용을 치르면 결국 자본 축적 경쟁에서는 패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는 기술과 과학조차 사회 전체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주들의 이윤 경쟁을 위해 취사선택된다.
다른 많은 과학자처럼 저자도 이 문제에 관해 지나치게 순진한 태도를 취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원자력발전소가 여전히 안전하지 않으며 인간의 실수와 자연의 변덕 앞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인정하면서도, “충분한 시험을 거쳤으며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라는 이유로 대안 목록에 올려 둔다.
그러나 주요 국가들이 핵발전을 늘리려 하는 주된 이유가 핵무기 개발과 생산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알았다면 위험천만한 핵발전을 대안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지구공학이나 탄소포집 기술 개발, 나무 심기 등의 대안도 지지한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이 실제로는 가장 시급히 필요한 조처(화석연료 사용 중단)로부터 눈을 돌리는 데 이용된다는 점은 보지 못한다. 지구공학이나 탄소포집은 안전성 문제도 있거니와 아직 실용성 있는 기술 개발까지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허풍에 가까운데 말이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나무 심기와 같은 ‘탄소 상쇄’ 프로그램이 근본에서 사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보들은 흥미롭고 진지하다. 그러나 체제 분석과 그 대안은 턱없이 부족하다. 20여 년 전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운동이 커진 현 시점에서 이런 약점은 특히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