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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해결할 시간과 방법이 있을까?

이 기사는 9월 13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이제는 누구나 기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자연재해가 더 잦아지고 위력도 커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여름철 호우 패턴의 변화입니다. 단순히 비가 많이 오는 수준을 넘어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사회 인프라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있습니다. 산불은 대형화되고 있고 30도를 넘는 폭염이 흔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더 심각한 재난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올해 7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었고, 8월은 두 번째로 더운 달이었습니다. 해수면 온도 상승은 실로 놀라울 정도여서 기상학자들은 올해 시작된 엘니뇨가 내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두려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는 이제는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열대화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며 시급한 대응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기후 재난의 사회적 요인

우리는 기후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또 다른 패턴도 발견합니다. 재난의 규모가 극대화하는 데에는 늘 사회적 문제가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여름 서울의 반지하방에 살던 장애인과 그 가족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물에 익사한 사고가 대표적입니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뿐 안전한 주택 공급에는 투자하지 않은 것이 이런 비극을 낳았습니다.

올해 일어난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실된 제방, 작동하지 않은 배수 펌프, 차량 통행을 제때 통제하지 않은 것은 자연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 관료들은 ‘예상치 못한’ 폭우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 합니다.

이런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국가가 보통 사람들의 안전에 얼마나 둔감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소방서 등 안전 관련 일선 현장은 언제나 인력과 재원 부족에 시달립니다. 국가의 우선순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수십 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기업주들의 이윤을 위해 대중의 필요와 안전을 더욱 희생시켜 왔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소방 시설이 낙후하거나 인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엄청난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하와이에서는 소방 호스에서 아예 물이 안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속되는 기후변화와 사회의 뒤집힌 우선순위라는 두 재난 사이에 짓눌리고 있는 것입니다.

실패를 거듭한 30년

약 30년 전에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기후변화의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조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그 30년 사이에 전 세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 전의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국제지속가능개발연구소(IISD)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G20 국가들이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에 쏟아부은 공적자금이 사상 최대 규모인 1조 4000억 달러(약 1871조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도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2021년에 열린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기로 합의해 놓고, 이를 완전히 어긴 것입니다.

이렇게 유엔 기후변화 협약 30년의 역사는 완전한 실패의 역사였습니다. 그 실패의 핵심 요인은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대책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야말로 기후 위기의 진정한 원인인데 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기후 위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두 개의 적대 관계로 작동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자본이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자본들 사이의 경쟁 관계입니다.

서로 극한의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기술혁신을 도입해서 수익성을 높이고 시장점유율을 키우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류 경제학이 “부정적 외부 효과”라고 부르는 것은 무시하거나 은폐합니다. 화석연료를 태워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결국에 기후변화를 일으킨 것은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부정적 외부 효과”일 것입니다.

자본 간 경쟁과 국가 간 경쟁 시스템은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이자 기후 위기 대책을 가로막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요 강대국들은 거대 화석연료 기업들의 근거지이고, 그 나라들의 산업은 대부분 화석연료에 의존합니다.

선진국들은 ‘탄소 중립’을 외치지만 하나같이 책임을 다른 국가들로 떠넘기는 데 골몰합니다.

선진국 정부들과 기업들은 신기술 도입,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 탄소 포집 등 상쇄 기술 개발이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의 핵심 취지는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2022년 5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전 세계 석유·가스 기업들은 2030년까지 “195개의 탄소 폭탄 사업”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탄소 폭탄은 사업이 끝날 때까지 이산화탄소를 10억 톤 이상 배출하는 초거대 석유·가스 채굴 사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195개의 탄소 폭탄으로 배출될 이산화탄소 총량은 현재 전 세계 배출량의 18년치에 해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기후 위기를 멈추기 위한 급속한 전환에 저항하는 것은 화석연료 기업들만은 아닙니다. 화석연료 산업에 차질이 생긴다면 연관 산업들과 전체 금융 시스템도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후 위기가 미래의 이윤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자본가들조차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전환이 느리는 이뤄지는 게 최선이라고 여깁니다.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제이슨 히켈 등은 친환경 정책으로 유명한 11개국의 탄소 배출량 감소치를 계산해 최근 발표했습니다. 11개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면서 경제도 성장시키는 이른바 ‘디커플링’에 성공했다는 나라들입니다. 호주,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모범국으로 꼽히는 11개국의 2013~2019년 배출량 감축률은 연평균 1.6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이 나라들이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00년이 넘습니다.

더욱 가까워진 위험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8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유엔 산하의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기후 재앙을 피하려면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2022년 5월에는 2026년 전에 그 1.5도를 넘길 가능성이 48퍼센트나 된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최소한 수억 명이 극단적 자연 재해에 내몰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저는 이 경고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기후 위기는 단순한 자연재해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그 충격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전쟁, 극우의 준동, 인종차별, 여성차별 등은 기후 재난이라는 불꽃을 끔찍한 비극으로 만들 위력을 가진 연료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팬데믹 대처를 돌이켜보면 한 가지 진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체제의 지배자들은 위기가 닥치면 평범한 사람들 중 일부의 생명을 아주 쉽게 포기할 태세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는 2050년에는 약 2억 명이 기후 변화로 살던 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아시아 나라 출신으로 지금대로라면 엄청난 비극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 유럽 정부들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오는 난민들의 입국을 막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2014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만 7000여 명이 지중해에서 사망·실종됐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2018년 이후 기후 운동이 기존의 우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급진적이고 활력 있는 대중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인 예란 테르보른은 이런 변화를 반기며 2022년에 쓴 글에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네 가지 흐름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는 앞서 언급한 기업주와 정부의 대처 방식입니다. ‘하던 대로 하기’와 ‘새로운 이윤 획득 기회로 삼기’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더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른 두 가지는 그린 뉴딜과 탈성장론을 포함하는 반자본주의적인 흐름입니다.

그린 뉴딜과 탈성장

그린 뉴딜은 미국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영국 노동당 전 대표 제러미 코빈 같은 좌파가 제시한 대안입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후 위기도 멈추고 그 과정에서 일자리와 소득도 늘리자는 정책입니다. 전 세계 기후 운동이 이 주장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저도 기후 위기를 해결하면서 노동계급 사람들의 소득과 일자리를 보장하자는 취지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린 뉴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자본주의 국가를 통해 서민 친화적 기후 해법을 추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버니 샌더스는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바이든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뒤 그린 뉴딜이 탄력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기후 운동이 바이든의 꾀죄죄한 기후 정책에 만족하라는 압력을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린 뉴딜을 실행하려면 정부가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기업주들에게서 대규모 재원을 징발하고 화석연료 기업들을 폐쇄해야 하는데, 바이든은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본가들과 기성 권력자들은 정말로 실효성 있는 기후 대책에는 격렬히 저항할 것입니다. 이를 제압할 방법이 없는 대안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탈성장론은 경제성장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 중 좌파적 버전은 명백히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더 합리적인 생산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 공통된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을 더 합리적 생산으로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려 나설 때 어떻게 맞설 것인지 전략 문제를 공백으로 남겨 두는 약점이 있습니다.

웬만한 노동계급 사람들도 생활수준 하락을 감내해야 한다고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기후 위기로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공동 책임을 물으면 그런 대안은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혁명적 대안의 절실함

마지막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대안을 소개하겠습니다.

기후 위기의 원인도, 그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끝내고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해야 기후 위기도 멈출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주장한다고 해서 개혁을 위한 투쟁을 얕잡아 보거나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실제 혁명들은 부분적 개혁을 위한 투쟁들에서 발전했습니다.

근본적 체제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화석연료 채취 금지,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 정의로운 전환 등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그 운동이 성장하고 전진하도록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러 운동들이 서로 연결되어 투쟁이 심화되고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게 되도록 애쓴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부분적 성과를 거두고 때로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히는 투쟁 경험을 통해서만 대중은 혁명적 대안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후 재앙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중의 투쟁과 각성을 기다릴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적 대안이 절실합니다. 실패를 거듭해 온 방법들을 되풀이하는 것은 낙담과 사기 저하를 낳을 뿐입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올라간다고 해서 지금 당장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후 위기가 가속되면 재난과 고통이 심각해지겠지만, 그로 인해 정치적 양극화와 계급투쟁도 심화할 것입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엄청난 일들이 빠르게 벌어졌습니다.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고 그후 주요 선진국들의 석탄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핵 오염수 방류도 시작됐고요. 기후변화는 세계 도처에서 파괴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변화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대중의 문제 의식도 달라질 것이고, 대규모 반란과 혁명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기후 운동이 더 크고 강력해지려면 노동계급의 참여가 핵심적으로 중요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자본 축적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 노동자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그 힘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들은 흔히 논쟁 구도를 ‘일자리냐 환경이냐’로 몰아가고, 적잖은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기후변화 대응이 노동자들을 위협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삶을 위협하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일자리와 기후 대응을 결합시킬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물론 기후 위기가 심화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저절로 기후 운동에 참여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혁명적 좌파가 노동자들의 일자리 및 노동조건 투쟁과 기후 운동을 연결시키는 구실을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일자리 대안과 반자본주의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말입니다.

이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노동자들의 고유의 힘을 간과하면 기후 운동은 소수의 급진성에 기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본주의 국가는 이런 운동을 어렵지 않게 파괴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심화 속에서 다양한 투쟁이 일어나고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열릴 텐데 혁명적 좌파는 그 가능성을 내다 보며 현실화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투쟁에 참여하면서 그 투쟁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지배자들의 이간질에 맞서 운동이 단결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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