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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거인이 깨어났다”

미국 이민법 반대 시위

“잠자는 거인이 깨어났다”

이수현

지난 3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1백만 명이 참가한 이민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그것은 지난해 12월 공화당 하원의원 제임스 센센브레너와 피터 킹이 공동 발의해 통과된 법안(일명 HR 4437)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그 법안은 멕시코-미국 국경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천1백20킬로미터에 이중 철책을 설치하는 등 국경 통제·감시 강화 조처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중(重)범죄자로 취급해 구금 후 신속히 추방하고, 그 고용주들도 처벌하며, 심지어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성직자 등 누구든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도와 준 사람을 죄다 처벌하는 역사상 최악의 이민 통제 법안이었다.

그래서 대다수 시위대가 히스패닉·라틴계 학생들과 이주노동자들이었지만, 일부 고용주들과 가톨릭·개신교 성직자들도 시위에 참가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다양한 구호가 적힌 팻말이나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는 학생, 부모, 이웃이다”, “모든 이주노동자를 사면하고 완전한 권리를 보장하라”, “미국인은 모두 이주노동자들이다” 기타 등등.

“고맙다, HR 4437. 네 덕분에 우리가 다시 단결했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는 멕시코계 이주노동자의 팻말에는 “잠자는 거인이 깨어났다”고 적혀 있었다.

LA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이 날 미국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이민법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5만 명이 시위를 벌였고,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도 2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두 시위 모두 도시 또는 주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였다.)

이 날 시위는 2주 넘게 미국 전역에서 계속된 HR 4437 반대 행동의 절정이었다.

지난 3월 7일 워싱턴 DC에서 2만 명이 HR 4437 반대 시위를 벌였고, 사흘 뒤 시카고에서도 3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시카고 시위는 1886년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이주노동자 약 8만 명이 도심을 행진한 이후 최대 규모의 이주노동자 시위였다.

이런 대중 시위와 저항 때문에 3월 27일 상원 법사위에서는 공화당이 분열해, 센센브레너 법안의 가혹한 처벌 조항들이 삭제된 절충안이 12 대 6으로 통과됐다(민주당이 주도한 절충안에 공화당 의원 4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

물론 여기에는 값싼 노동력을 계속 이용하고 싶어하는 일부 대기업(특히 농업과 건설업) 자본가들의 요구, 중간선거를 앞두고 라틴계 유권자들이 많은 캘리포니아·텍사스·플로리다 주 등지에서 역풍을 우려한 부시의 압력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절충안에 반대한 공화당 의원들은 절충안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모두 사면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부 이민자 권리 운동 단체들은 절충안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절충안에는 국경 경비요원 수를 증원하는 등 국경 통제·감시 강화 조처가 그대로 담겨 있다. 또, 부시도 지지한 ‘초청노동자’ 프로그램은 앞으로 해마다 이주노동자 40만 명을 임시직으로만, 6년 기한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초청노동자’가 6년 뒤에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고 그 뒤 5년 동안 직업·전과·납세·영어능력 등의 테스트를 거쳐 시민권을 얻을 수 있지만, 그 11년 사이에 60일 이상 실직 상태이면 언제라도 즉시 추방당할 수 있다. 또, 1백50만 명의 농업 ‘초청노동자’를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결코 다른 직종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현재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1천 달러의 벌금을 내면 고용허가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 기한이 6년일 뿐인 데다 고용주의 보증이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고용주는 이를 무기 삼아 이주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무노조 등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번 절충안도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2등 시민”으로 차별하고 국경 통제를 더 강화하자는 법안이다. 그런데도 공화당 원내대표 빌 프리스트 등 강경파들은 앞으로 2주간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주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수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맞서 이민자 권리 운동 활동가들은 오는 4월 10일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전국 행동의 날에 적어도 10개의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고 호소하고 있다. 고무적이게도, 보수적인 미국노총(AFL-CIO)조차 4월 10일 행동의 날을 공동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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