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서평
《혁명의 지성사》(엔초 트라베르소 지음):
혁명가라면 누구나 도움을 얻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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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태생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엔초 트라베르소가 쓴 《혁명의 지성사》
사회주의자들이 이루려는 바는 무엇일까? 이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가 어떤 모습일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밀접히 연관된 근본 쟁점 또한 존재한다.

현 체제의 세세한 부분을 고치는 것이 목표인 이들에게는 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고 일부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의회주의만을 원칙으로 고수하는 이들은 사회 기반 전체를 무너뜨릴 의사가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반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모종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재앙적 기후 혼돈을 해결하기 위해서든, 차별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해서든, 오늘날 혁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과거보다 더 대중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실천에 이르면, 급진적 개혁주의의 여러 버전 중 하나가 제시되는 경우가 흔하다. 프랑스에서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선거 연합 뉘프와 같은 의회주의적 좌파가 최근 벌이는 실험에 기대를 걸거나, 영국의 제러미 코빈이 새로운 의회주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길 바라는 것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종류는 살짝 다르지만 전직 노동당 소속 리버풀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역에 깊게 뿌리내린
하지만 엔초 트라베르소는 무척 신선하게도 진짜 혁명에 대해 얘기하고, 혁명이라는 단어를 비방과 물타기에서 구하려 한다. 그는 혁명이 현실적이고 또 필요한 목표로 다시 인정받게 되길 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 책은 도입부에서부터 자신의 포부를 드러낸다. 트라베르소는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트라베르소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역사학계의 다수에게 혁명이란, 폭정 연구의 하위 주제로 분류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것이다. 러시아 혁명에서 해방을 향한 열망이 드러난 생생한 순간을 긍정적으로 인정할지는 몰라도, 이들이 러시아 혁명에서 연구하는 실제 대상은 스탈린주의의 득세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테러, 억압, 독재에 관한 것이다. 이들에게 혁명은 인간 해방을 위한 본보기라기보다는 인종 학살에 훨씬 더 가까운 주제로 여겨진다.
트라베르소는 변화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깨뜨리는 이런 왜곡을 바로잡는다. 그는 혁명이
혁명 과정에서 삶은 놀랍도록 강렬해진다고 그는 주장한다. 대중은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던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깨닫는다.
그래서 트라베르소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는 풍부한 사례가 가득하다. 트라베르소가 사용한 방법 하나는, 당시 혁명에 반대했지만 그럼에도 사건의 핵심을 이해했고 그래서 두려워한 이들을 인용하는 것이다.

귀족 출신 역사가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48년 프랑스 혁명에 대해 1850년에 쓴 회고록을 보면 2월 봉기 동안 노동하는 계급들이 점령한 프랑스 수도를 생생히 묘사한다.
토크빌이 발견한 둘째 특징은 평온함과 진지함이었고 이를 보며 그는
후대의 러시아 혁명이나 스페인 혁명을 기록한 저자들을 연상시키며 토크빌은 이렇게 말한다.
이 광경이 불쾌했던 토크빌은 이렇게 덧붙였다.
트라베르소는 이런 역사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트라베르소는 이렇게 주장한다.
이 책은 여러 혁명의 연대기도, 핵심 주제들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도 아니다. 대신 이 책은 혁명적 상징과 기억, 혁명과 신체, 자유와 해방 등 다양한 이슈를 아우른다.
철도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장에서는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신선하고 유용한 사실이나 사례를 적어도 하나 이상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1920년에 러시아 적군이 장갑열차 120대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백군을 물리치는 데서 이 장갑열차들이 그토록 핵심적 구실을 수행했다는 것도 몰랐다.
또 이 책에서 진보적 운동이 자신이 밀어내고 있는 구체제의 상징물과 동상을 무너뜨리는 과정들을 다룬 부분도 뛰어나다.
1792년 8월, 프랑스 혁명 과정의 일부로서 국민의회는
프랑스 혁명의 또 다른 막이었던 1848년 2월에는 퇴위당한 국왕 루이-필리프의 많은 초상화가 파괴되거나 훼손됐으며, 국왕 흉상의 목에 밧줄을 묶은 것을 대열 맨 앞에 든 행진 대열들이 여러 프랑스 도시를 휩쓸었다. 1871년 5월 파리 코뮌은 방돔 광장의
다른 혁명들 또한
그러나 오웰이 지적하듯
이는 BLM 활동가들의
트라베르소는 변화의 상징이 갖는 중요성과 대담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서 매우 뛰어난 통찰을 보여 준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은 원래 실용적 필요성 때문에, 즉 무기의 탄약을 구하기 위해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내 변화를 상징하는 파괴 행위로 전환됐다. 당시 감옥에 갇힌 사람은 7명에 불과했지만 바스티유는 중세 시대 이래로 왕과 귀족들의 지배를 상징했다.
프랑스 혁명이 벌어지고 50년 후에 집필된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서 쥘 미슐레는 당시의 바스티유 공격이 파리 민중에게 얼마나 까다로운 과제였는지를 설명한다.
당시 타협을 바라거나 쉽게 흔들리던 이들이 공격을 미루고 협상하자고 주장했을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미슐레가 결론 내리듯, 바스티유 함락은 봉기한 민중의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추동돼 이뤄진 것이었지, 세력 균형을 찬찬히 평가하고 행동한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이 행동이 이성이 아니라
이런 공격이 성공을 거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슐레는 바스티유 감옥이 지닌 상징적 측면에서 답을 찾는다.
트라베르소가 사용한 예시는 아니지만 러시아 혁명도 비슷한 논쟁을 겪었다. 트로츠키는 10월 혁명 전날
이들은 임시정부가 확고하게 지휘하는 병사가 수천 명이라고 주장했고, 임시정부에는
그러나 트로츠키는 이렇게 주장했다.
트로츠키가 성공 가능성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공세적 전술을 펴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트라베르소는 많은 이론가들과 달리 폭력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당연히 혁명가라면 모름지기 식민주의
트라베르소는 혁명이 폭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 지배계급은 가차 없고, 가장 유혈낭자한 수단을 사용해 적을 파괴할 준비가 얼마든지 돼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윤과 지배력을 위해 전 세계 여러 지역을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보라. 체제 전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이 없는데도 저들은 그랬다. 평화주의는 이런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는 현재의 문제다. 수단에서 혁명가들은 비폭력주의를 원칙으로 결의하고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시리아에서 혁명이 내전으로 발전해 나라 절반이 파괴된 것은 모든 이들이 깊게 고려해 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폭력을 완전히 거부하면 쿠데타 정권의 무장 세력에 맞서 대중이 총을 들고 저항을 벌일 가능성에 대해 면밀히 토론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 수단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은 옳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대중 운동과,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대안적 민주주의 구조를 조직하는 것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지배자들, 혹은 옛 지배자들의 잔혹함에 맞서 방어적 폭력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순간 또한 존재한다.
트라베르소는 아나키스트 출신의 볼셰비키 당원 빅토르 세르주를 인용한다. 세르주는 1919년 당시 페트로그라드에서
이 책에서 바리케이드와 바리케이드의 상징적 구실에 대한 대목도 오늘날 수단의 상황에 유효하다. 수단 수도 하르툼 거리에 엎어져 있는 구조물들을 찍은 사진을 보면 활동가들이 굳이 왜 애를 썼을까 의문이 들 수 있다. 구조물들이 너무 허술해 제대로 된 군사 공격을 전혀 막을 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바리케이드는 일차적으로 저항의 상징이자 경찰과 군대가 건너지 말아야 할 선이다. 그것은 쿠데타 정권으로부터 해방된
그러나 스탈린주의와
트라베르소는 혁명의 미래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역사가의 전문 분야가 아닐지 모르지만 위기와 재앙, 저항이 중첩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는 시급한 필요성이 있는 주제다.
전쟁 이전, 임금과 노동조건에 관한 선동에 활동을 국한한 노동조합 운동이 있었다. 선거와 투표에 중점을 둔 의회주의 그룹 또한 별개로 존재했다. 평화주의는 개인 수준의 저항과 개인들이 전투를 거부하는 활동을 기반으로 전쟁에 반대했다. 페미니즘은 주로 기존 체제 안에서 남성과의 형식적 평등을 추구했다.
전쟁은 이 모든 세력의 본질을 밝히 드러냈다. 노동조합들은 공장 내 경찰처럼 행동하며 살육 기술을 위한 생산을 끌어올렸다.
새로운 정당이 필요했다. 일터와 거리에서의 행동에 초점을 두고, 제국주의에 온전히 반대하고, 자본주의 국가와 이 국가가 보호하는 기업들을 무너뜨리는 데 헌신하는 정당이어야 했다. 기존 체제 안에서 묘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정당이어야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이런 정당이 노동계급을 권력 장악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이자 방식이다.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혁명가라면 도움이 될 내용을 누구나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