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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공제도는 통상 의제가 될 수 없다”?

“사회 공공제도는 통상 의제가 될 수 없다”?

이 말은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다. 다름 아닌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의 말이다. 그는 14일 “교육, 의료 등 사회 공공제도는 통상 의제가 될 수 없고 한미FTA 협상 테이블에도 오를 수 없다”면서 “한미FTA를 체결하면 교육, 의료시장이 완전 개방된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동아일보〉).

환영할 만한 발언일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그의 말을 믿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으려면 김종훈 씨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부터 해야 할 것이다.

첫째, 사전협상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FTA 사전협상에서 이미 “새로운 의약품 약가 정책은 도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의료비용 중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용은 OECD 평균인 17.8퍼센트보다 무려 11퍼센트가 높은 28퍼센트이다.

따라서 한국의 건강보험재정을 절약하여 현재 의료비의 50퍼센트밖에 대주지 못하는 건강보험 혜택을 늘이려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이러한 약제비 비용을 줄여야 한다. 말하자면 다국적 제약회사와 국내 제약회사들의 약값을 깎아야만 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재 의약품 가격 정책은 한마디로 ‘제약회사 퍼주기’다. 오죽하면 미국 정부가 한미FTA 협상에서 요구한 바가 “지금 이대로”이겠는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약회사의 이윤을 제한하는 제도나 입찰을 통해 약값을 깎는 제도가 한국에는 아예 없다. 의약품 약값은 우리 나라 건강보험 재정의 30퍼센트를 차지하며 따라서 약값 정책은 핵심적 의료제도다.

이 제도가 이미 사전협상에서 제약회사에 가장 유리한 “지금 이대로”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한미FTA에서 의료제도는 의제도 아니라는 말을 믿으라고?

둘째, 의약품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이야기를 더 해 보자. 미국 무역대표부는 최근의 무역장벽 평가서에서 한국의 약가 정책이 외국의 신약 중 25퍼센트만 선진국 7개 나라 평균 약값으로 정해지고 있다면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모든 ‘신약’의 가격이 선진 7개국 약값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 7개국의 평균 약값? 이 결과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예가 바로 글리벡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이 백혈병 치료제는 선진 7개국의 평균 약값에 따라 한 알의 약값이 2만 5천 원으로 정해졌고 한 달 약값이 3백만∼6백만 원이었다.

보험이 적용돼도 평생 한달 90만∼1백80만 원을 부담해야 했다. 백혈병 환자들이 2001년 여의도 한국노바티스사 앞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약이 없어 죽을 수는 있어도 돈이 없어 죽을 수는 없다”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한국의 약값이 “선진 7개국 평균약가”로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제도 탓이었다.

한미FTA의 협상의제 중 의약품 약가 정책은 핵심 의제이며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품 가격 전부를 이렇게 정하도록 하자는 것이 미국 정부의 주장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현재 의약품 특허는 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에 따라 20년으로 정해져 있다. 이 기간에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특허를 이유로 자기들 마음대로 약값을 정할 수 있다. 이 특허 때문에 전 세계 4천만 명의 HIV/에이즈 감염인과 환자들 중 한 해에 3백만 명이 약 한 번 못 써보고 죽어간다.

이 3백만 명 중에는 미국의 빈민들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이 체결한 모든 FTA에서 특허기간 연장은 핵심 의제였고 이를 30년, 50년으로 늘이려고 해 왔다. 그런데 의료제도가 FTA 의제가 아니라니?

셋째,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영리병원 허용과 건강보험 관련 제도의 문제이다. 앞서 말한 미국의 무역장벽 보고서는 전국적 범위에서 “외국인이 학교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투자장벽으로 명시했다.

또한 이 보고서는 고용유연성이 높고[해고가 자유롭고] 세금이 싸며 외국인이 병원과 학교를 영리법인 형태로 소유할 수 있게 만든 인천 송도 등 3개 경제자유구역을 개방의 표준으로 제시했다. 한미FTA의 결과는 바로 이 경제자유구역의 전국화이다.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병원에서 번 돈은 병원 안에서만 쓰도록 되어 있는데(병원의 비영리성 규정) 경제자유구역의 병원은 주주들에게 돈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영리병원으로 허용돼 있다.

또한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증이 통하는 병원(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이지만 경제자유구역의 병원은 건강보험증이 통하지 않는 건강보험 예외 병원이다.

따라서 이 병원은 모든 의료비를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병원이 주식회사가 되지 못하고 건강보험증이 통하도록 돼 있는 이 제도가 한국 의료제도의 공공성을 그나마 지켜주는 기둥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돼 있어 과실송금을 할 수 없는데, 이것이 미국이 지적하는 무역장벽인 것이다. 학교와 병원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마지막 장벽을 걷어치우고 경제자유구역을 전국화하자는 것이 한미FTA인데 “교육, 의료 등 사회 공공제도는 통상 의제가 될 수 없다”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의 최대 목표가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하는 것이라고 했고 김현종 통상본부장은 18일에 서비스 업종이 적극적인 전략적 개방 대상이라고 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경제자유구역의 업적이 특히 교육과 의료에서 서비스 선진화를 이루어낸 것이라고 한다. 경제자유구역의 교육과 의료의 ‘모범’을 전국화하는 것은 한미 정부의 공통된 목표이다.

아, 김현종 씨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은 학교와 병원을 주식회사로 만들어 자본이 최대한의 이윤을 제한 없이 추구하게 하고 등록금과 의료비를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한미 정부, 그리고 한국의 사학재단과 한국의 병원이 똑같이 원하는 것이니 굳이 통상의제로 삼을 필요도 없다는 말로 이해하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여기에 건강보험도 안 되는 병원의 값비싼 의료비를 내려면 AIG나 삼성생명의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확 넓어져 한국과 미국의 보험기업들도 모두 찬성을 할 터이니 굳이 통상의제로 다룰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되면 전국에 귀족병원과 귀족학교가 생기면 전 국민이 귀족이 될 터인데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의료비 폭등에 약값 폭등, 등록금 폭등이 일어난다 해도 한국과 미국의 자본에게 그것은 학교기업, 병원기업, 그리고 보험기업의 주가 폭등일 뿐이다.

아, 그런데 한미FTA는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도를 폐지시키고 미국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도 허용하는 것일 텐데? 정부 관료나 기업주들에게도 이건 문제가 아닐까? 아니. ‘그들’에게는 이것도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값비싼 유기농 식품과 청정 쇠고기만으로도 충분히 식단을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종훈 씨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자본에게는, 한미FTA에서 다루는 모든 문제에서 그들의 삶과 관련이 있는 ‘교육과 의료 제도나 사회 공공 의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