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소설 《사소한 일》:
‘사소한 일’로 전락해 버린 팔레스타인의 비극

팔레스타인의 슬픔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학살로 사망한 사람들 장례를 치르고 있다 ⓒ출처 Wahaj Bani Moufleh/ Activestills

작년 10월 22일에 끝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수상이 예정된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의 시상식이 취소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주최 측이 이스라엘과 연대를 표하며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시상식 참여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이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 올가 토카르추크 등 세계적 문학가들이 도서전에 항의했다.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에 연대를 표한 김남일 작가 등 문인 175명이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이 터무니없는 사건은 문학계에도 존재하는 팔레스타인인 차별을 보여 준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었기에, 전례도 없는 시상식 취소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강, 172쪽, 15,000원

《사소한 일》은 1948년 나크바(이스라엘이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고 고향에서 쫓아낸 일) 이후 이스라엘의 폭력이 ‘사소한 일’로 전락해 버린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다룬다.

1부는 나크바 이듬해의 얘기로, 이스라엘 점령군의 한 소대로 시선이 향한다. 특히 겉으로 규율도 잡고, 윤리적인 척하는 소대장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이 소대는 이집트 국경 근처에서 아랍인 수색 및 제거 작전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한 아랍인 소녀를 발견하자, 소대장은 처음에는 물로 씻기며 소녀를 보호할 것처럼 말한다. 소녀를 건드리려 하는 병사들에게 그러면 총으로 쏴 버릴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소녀를 먼저 강간한다. 이후 병사들의 집단 강간도 방치하며, 문제를 덮기 위해 소녀를 살해한 다음 사막에 암매장하는 잔혹한 일을 저지른다. 그날은 1949년 8월 13일이었다.

2부에서는 그 사건이 발생한 이후 25년 뒤에 태어난 팔레스타인 지식인 여성의 시선에서 소설이 전개된다.

그녀는 우연히 한 신문 기사를 보고 자신의 생일에 벌어진 끔찍한 일을 알게 되지만, “지속적인 살해가 지배적인 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과 비교했을 때 정말로 딱히 특별한 게 없었던 탓”이라고 말하며 그 일을 사소한 사건으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일에 벌어졌다는 찝찝함에 진실을 찾으러 자신의 신분증으로 갈 수 없는 이스라엘 점령지로 간다. 이후 점령지에서 다양한 일을 겪게 되며, 끝나지 않는 팔레스타인인 억압을 실감한다.

《사소한 일》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슬픔을, 여러 장치를 통해 독자의 가슴을 울리도록 기억해 낸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창조적으로 기억한다는 점에서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소설의 임무를 충실히 구현한 명작이다.

이 소설의 독특한 구조는 주목할 만하다. 보통 장편소설과 달리 팔레스타인이라는 배경에서 펼쳐지는 두 개의 얘기가 ‘사소한 일’로 이어지는 구조다.

2부의 주인공 ‘나’는 자신과 맞닿아 있는 ‘사소한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계속 위협을 받고, 차별에 시달린다. 이 장면에서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님을, 소설 속 반세기 이후에도 강제 점령이라는 큰 틀이 변함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독특한 구조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임을 상기시킨다.

소설 속 사건과 배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 역시 인상 깊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사막 한복판 모래가 흩날리는 곳, 이스라엘이 강제 점령한 팔레스타인에 와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세한 묘사를 통해 현실의 특수한 반영인 소설이 때로는 사진이 실린 기사나 영상으로 된 뉴스보다도 독자의 마음을 훨씬 더 깊게 찔러 온다.

이 소설의 역설적인 제목 ‘사소한 일’도 독자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표면적 의미는 서방 제국주의와 충견 이스라엘이 차마 말로 표현하기 끔찍한 팔레스타인의 학살을 사소한 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팔레스타인의 일상적 비극인 ‘사소한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외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사소한 일을 단지 관조할 것인가, 아니면 사소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질문과 마주치게 된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한 독자라면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이 ‘사소한 일’이 아닌 잔혹한 비인간적인 범죄로 규정돼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려면 강탈국가 이스라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들에 적극 연대해야 할 것이다.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