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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철학의 근본 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
유물론으로 분석한 흥미진진한 서양철학사

《철학의 근본 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 타카다 모토무 지음, 최미선 옮김, 책갈피, 272쪽, 15000원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을 중심으로 서양철학사를 쉽고 흥미진진하게 살펴보는 신간 《철학의 근본 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타카다 모토무 지음, 최미선 옮김, 책갈피, 272쪽)이 나왔다.

철학 책이라고 하면 흔히 따분하고 현학적이어서 열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저자 타카다 모토무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일본 노동운동의 선구적 활동가이다.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교육해 온 저자는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1970년대 초에 노동자들이 쉽게 서구 철학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

철학을 낯설어 할 이들을 염두에 두고 풍부하고 재치 있는 비유와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하려 한 저자의 노력이 물씬 느껴진다.

고대 사회, 봉건 사회, 부르주아 혁명 시대를 거쳐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형성에 이르는 실로 방대한 역사를 다루면서도 복잡하거나 장황한 설명으로 독자들을 함정에 빠뜨리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게 요점을 전하는 저자의 능력이 돋보인다.

매끄러운 번역도 글을 편안하게 읽는 데 크게 한몫한다.

길잡이

이 책이 여느 철학 책에 견줘 돋보이는 것은 독자들의 철학 역사 여행이 “마음 편한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세심한 노력과 뛰어난 글솜씨만이 아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칼뱅, 홉스, 흄 등등 고등학교 윤리(또는 도덕) 시간에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들의 사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이들 사상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라는 큰 줄기 속에서 소개된다. 엥겔스는 “사고와 존재의 관계 문제”가 “모든 철학의 근본 문제”라며 “이 문제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철학자들은 양대 진영으로 분열했다”고 썼다.

그러나 저자는 이 근본 문제를 둘러싼 철학 논쟁의 역사가 그저 사상과 사상이 충돌한 역사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저자는 왜 특정 시기에 특정 철학 사조가 등장해 논쟁이 벌어졌는지를 그 사회의 생산력과 그것이 주된 영향을 미쳐 형성한 사회관계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가령 관념론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 철학은 “민주 정치의 해악에서 벗어나고 가능하면 전통적 질서를 지탱하는 신화로 복귀하고 싶”은 “귀족적 반동의 일원이었던 그의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 중세 말 서유럽에서 벌어진 교회 개혁 운동의 이면에는 “로마 교회의 권력에 맞선 투쟁에 가장 직접적인 이익이 걸린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요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 사상에는 노예 소유주 계급의 어떤 이해관계가 반영된 걸까? 스토아 학파의 도덕주의와 노예제 사회의 부패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르네상스 자연철학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프랑스 유물론과 중세 권력, 농노제에 맞선 투쟁은?

저자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던 물질적‍·‍사회적 현실과 연결시켜 사상이 어느날 갑자기 “버섯처럼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유물론의 방법으로 철학의 역사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다.

또,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저작들을 꼼꼼히 살펴서 철학자들에 대한 그들의 예리한 논평을 적재적소에 소개한다. 그들의 논평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균형 있고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철학의 역사는 곧 과학적 세계관 확립의 역사이기도 하다. 저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이 이전 철학자들의 유산을 구석구석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 합리적 핵심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으로 어떻게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과 과학적 세계관의 초석을 놓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마르크스주의에는 세계 문명 발전의 큰 길에서 벗어난 어딘가 폐쇄적이고 경직된 학설이라는 의미의 종파주의 같은 구석이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기초를 놓은 새로운 세계관은 “인류의 가치 있는 모든 유산의 집대성”이었다.

“철학사의 출발을 장식한 이오니아 자연학의 자생적 유물론과 자생적 변증법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도전으로 단련되면서 갈지자 행보를 거쳐, 한편으로는 프랑스 유물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다만, 프랑스 유물론은 형이상학적 약점이 있었고, 헤겔의 변증법은 관념론적으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운 새로운 세계관은 이런 약점과 일그러짐을 걷어 내고 유물론과 변증법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의식적이고 내적으로 결합시켰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영원한 발전 과정이라는 헤겔의 사상을 보존하면서도 관념론적 선입견은 내다버렸다. 1844년 파리에서 사회주의자들과 토론 중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세계관은 “모든 지식의 근원이 경험에 있고 따라서 모든 것은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경험론과도 다른 것이었다.

저자는 “과학은 어떤 면에서는 경험에 근거하지만, 그 외형의 다양성에 사로잡히거나 경험담만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며 경험론이 사물을 피상적으로 보는 데 그쳐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영국 경험론의 궤적을 통해 경험론이 어떻게 유물론에서 출발해 주관적 관념론으로 미끄러질 수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물의 본질(즉 내적 구조)과 현상(즉 겉으로 드러난 외관)을 구분해, 본질은 현실을 단순히 관찰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겉보기에는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도는 것 같지만 진실은 정반대인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관념론뿐 아니라, 유물론의 전통에 있는 서로 다른 유물론들의 의의와 약점을 고루 살펴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실천철학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은 무엇보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를 위한 실천의 철학이었다.

‘사고’와 ‘존재’ 가운데 무엇이 근원적인지를 따져 묻는 것은 실천과 동떨어진 학자들의 현학적 논쟁거리가 아니다.

이스라엘과 서방이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한다고 한들 이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크라이나 전쟁도 “권위주의 vs. 민주주의 전쟁”이라는 지배자들의 말이 아니라 실재를 봐야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리전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옛 소련과 중국, 북한 국가가 사회주의를 표방한다고 해서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투쟁의 정당성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 75년 넘게 이어져 온 이스라엘의 인종학살과 점령이라는 역사적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관념이나 말이 아니라 실재를,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그 내부의 모순과 변화를 보는 눈은 무엇보다 착취와 억압으로 얼룩진 세계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변화를 이끌 동력과 방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다.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무기가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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