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부는 탈북자를 환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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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에서든 탈북자들을 방어하는 건 남한과 미국의 보수우익들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탈북자의 너그러운 보호자 행세를 하는 보수우익 정치인들의 위선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는 탈북자가 밀려드는 것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탈북자들을 걸러낼 수단 개발을 위해 탈북자들에 대한 악감정을 차곡차곡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보기는 쉽지 않다.
최근에 한나라당 의원 정형근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탈북자 중에 간첩이 많다”고 말했다(4월 10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이 얘기를 듣고 정형근이 ‘또 튄다’고 넘길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오랜 보안경찰 경력자답게 이주자와 난민 통제에 대한 국제 우익의 추세를 잘 본뜨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 중에 간첩이 많다”는 말의 효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탈북자들을 북한 체제와 똑같은 이미지로 한데 얽는 것이다. 지금은 남한 정착을 위해 북한 사회를 고발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세뇌당한 게 어디 가겠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흔한 착각과 달리, 미국이 북한을 악마로 그리면 그릴수록 대다수 탈북자들의 처지도 함께 나빠지게 마련이다.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북한 지배관료들로부터 억압받는 북한 국민을 돕겠다는 것이고, 그러면 탈북자들의 처지가 더 나아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게 완전한 착각이라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에 있는 무슬림들의 처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후세인(과 이슬람국가의 독재자들)이 제 나라 국민을 억압해 왔다고 비난했고, 그로부터 무고한 무슬림을 구할 사명에 불타는 듯이 말하곤 했다. 물론 이 국가들로부터 상징적인 망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수의 평범한 무슬림들은 어떻게 됐나?
최근 영국 지방선거에서 버밍엄 의원으로 당선된 살마 야쿱(리스펙트 소속)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나라에 살든, 이민자로 막 도착했든, 이미 서구 사회에서 정착을 하고 있든, 무슬림들은 … 사담 후세인, 빈 라덴, 자살특공대, 사악한 이맘(무슬림 성직자)과 똑같은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자기 나라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그들의 나라가 공격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서방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길거리나 그들의 집에서 공격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
탈북자와 “깡패 국가”의 상관 관계?
이런 일은 미국의 지배자들이 이민 담론과 안보 담론(“깡패 국가”의 위협)을 서로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벌어졌다. 그런데 이미 미국 지배자들은 이 연결을 탈북자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미국 북한인권특사 제이 레프코위츠는 “난민 수용 절차를 앞당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하고 있다”면서도, “북한 정보원이나 미국에 안보 우려를 일으킬 사람이 포함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단서를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형근의 간첩 운운도 이와 맞아떨어지는 얘기다.
무슬림 공포증을 어떻게 탈북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고 안일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왜냐면 이민자를 “안보 문제화”하기 시작한 것은 냉전이 끝난 후 동유럽에서 경제적 위기가 발생하면서부터였다. 동유럽에서 난민들이 몰려들까 봐 걱정하면서 말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에 적용하기 딱 좋은 개념이다.
미국의 우익 정치인들은 탈북자 문제를 떠들썩하게 쟁점화시키고 싶어하지만, 결코 탈북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되도록 적게 수용하고 최대한의 정치적 효과를 내는 게 그들의 전략이다.
최근에 남한 정착 탈북자 서재석 씨의 미국 망명이 수용되고, 동남아에서 6명의 탈북자가 난민으로 인정되면서 마치 미국이 앞으로 탈북자를 대거 받아들일 것처럼 과장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재석 씨 수용과 탈북자 6명의 난민 판정은 ‘2004년에 북한인권법을 마련하고도 왜 단 1명의 탈북자도 수용하지 않느냐’는 빗발치는 미국 내 2년여 항의 끝에 이뤄진 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법에 책정된 예산 2천4백만 달러(북한 사람 1인당 1달러꼴)는 그 동안 1달러도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탈북자 수용의 정치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을 감추지 못한다. 최근에 “미 국무부 관계자는 미국이 탈북자를 수용하는 것은 북한 인권 신장을 위한 상징적인 조치이며, 미국 정부가 탈북자를 대량으로 받아들이기로 정책을 바꾼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미국은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는 탈북자들을 선별 수용하려 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탈북자 방어 단체 관계자들도 인정한다. “꼭 필요한 사람을 골라서 작업하려고 합니다. 위폐라든가 마약관계라든가 이런 것에 관련 있었던 사람들….”(5월 4일 SBS 뉴스)
미국 정부는 평범한 이라크인들을 걱정하지 않았듯이 평범한 북한 사람들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는 부시가 탈북자 얘기를 하면서 짓는 한없이 자비로운 표정 뒤에서 인종차별적인 우월감과 경멸을 똑바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탈북자 문제는 결코 한미 우익의 쟁점이 아니며, 탈북자를 환영해야 하는 것은 남한 피억압 민중 진영의 몫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북한 피억압 민중의 연대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