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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좌파 정부와 재건공산당의 미래

지난 5월 중순 이탈리아에서 중도좌파 정부가 출범했다. 총선은 4월 9∼10일 실시됐지만,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재검표를 요구하며 버티는 바람에 새 총리 로마노 프로디는 한 달여 만에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다.

총선 결과는 아슬아슬했다. 중도좌파연합이 겨우 0.1퍼센트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얄궂게도 베를루스코니 덕분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해 말 해외 거주 이탈리아인들이 우파를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해 그들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해외 거주 이탈리아인들의 다수는 좌파를 지지했다.

어쨌든, 이라크 전쟁을 지지해 군대를 파병하고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한 베를루스코니가 실각한 것은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중도좌파 정부의 앞날은 별로 밝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중도좌파연합은 쉽게 승리할 수도 있었다. 지난해 제로 성장을 기록한 심각한 경제 위기, 이라크 전쟁·점령과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불만, 1백20억 달러(약 11조 3천억 원)의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 베를루스코니의 부패·비리 스캔들 때문에 정부·여당의 인기가 형편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프로디를 앞세운 야당 중도좌파연합의 선거운동은 분명하고 확실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중도우파 정당인 기독교민주당에서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한 프로디는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 기업 IRI의 회장을 지내며 IRI를 사유화했다.

또, 1996∼98년 중도좌파 연립정부의 총리 시절 이탈리아를 유럽화폐통합(EMU)에 가입시키기 위해 연금과 사회복지비를 삭감했고, 옛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연립정부에 참가하고 있던 재건공산당(리폰다찌오네 꼬무니스따: 이하 PRC)이 연립정부에서 탈퇴했다. 그래서 프로디는 총리직을 그만둬야 했다.

그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지내며 EU를 동유럽으로 확대하고, 신자유주의적 EU 헌법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러나 그 헌법은 지난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그는 이번 선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자유화·사유화”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EU 집행위원장 시절 이룩한 성과를 자랑했다.

프로디는 선거 막바지에 쟁점으로 떠오른 조세 제도와 경제 정책 문제를 둘러싸고 우파적 입장에서 베를루스코니를 공격했다. 프로디는 기업들의 사회복지 부담금을 5퍼센트 낮춰 주겠다고 약속했고, 중도좌파연합의 선거 강령은 예산 동결을 주장했다.

그래서 베를루스코니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데 실망한 많은 기업주들이 프로디를 지지했다. 이탈리아에서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일간지도 프로디를 공개 지지했다.

반면에, 중도좌파연합에 실망한 좌파의 전통적 지지 기반 일부는 떨어져나갔다. 그래서 공업이 발달한 이탈리아 북부, 특히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좌파의 득표가 줄었다.

이렇게 중도좌파연합이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선거운동을 하지 못한 결과, 독일 총선처럼 이탈리아 총선도 확실한 승자가 없게 됐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도 총선 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대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PRC 때문에 적어도 당분간 대연정은 힘들 것이다. PRC는 이번 총선에서 2백여 만 표를 얻어 하원에서 30석이 증가한 41석, 상원에서 24석이 증가한 27석을 확보했다. PRC 사무총장 파우스토 베르티노티는 하원의장으로 선출됐다.

PRC는 1991년 당원 1백만 명을 자랑하던 이탈리아공산당(PCI)이 공공연히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좌파민주당(PDS)으로 변신할 때 이에 반발한 소수파가 따로 결성한 정당이다.

처음에 PRC는 나이 많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집합처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8년 프로디 정부와 결별한 뒤 지도권을 장악한 베르티노티가 당시 갓 생겨나고 있던 반자본주의 운동에 당이 적극 관여하도록 이끈 덕분에 PRC는 급진좌파 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지금 PRC 당원 8만여 명의 대다수는 옛 공산당이 해체된 뒤 가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PRC는 운동에 관여하면서도 자신들이 “이데올로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것은 PRC가 운동에 헤게모니를 행사하거나 지도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뜻이었다. PRC의 청년 당원들은 점차 자율주의 운동으로 흡수됐다.

지난 2년 동안 베르티노티는 선거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승리하면 이탈리아의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중도좌파와의 연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당을 이끌어 왔다. 지난 3월에 열린 PRC 전당대회에서 그는 이 정책을 지속하기로 한 결정을 관철시켰다.

이런 결정은 그 동안 강력한 대중 파업과 시위 등 많은 투쟁이 있었음에도 베를루스코니가 건재하고, 따라서 그를 제거하는 방법은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뿐이라는 비관론이 널리 퍼진 데서 비롯했다.

그러나 PRC가 중도좌파연합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밖에서 비판적으로 투표하는 방안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 제안은 전당대회에서 거부당했다. 그 결과, PRC가 행동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상실한 채 새 정부의 노선을 따르라는 압력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졌다.

머지않아 이라크 주둔 이탈리아군의 철수 문제, 아프가니스탄 주둔 이탈리아군의 병력 증가(중도좌파는 이것을 “인도주의적” 조처라며 지지한다) 문제,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한 법률의 폐지 문제 등을 둘러싼 원내 표결이 있을 것이다.

PRC가 이런 문제들에서 조금이라도 후퇴하면 당 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논쟁은, 하원의장으로 선출된 뒤 PRC 사무총장직을 사퇴한 베르티노티의 후임자를 둘러싼 논쟁과 맞물려 더 격렬해질 수 있다. 그러면 1998년처럼 PRC가 또 분열할지 모른다.

한편, 기업주들 편에서는 프로디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에다가 최근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법(CPE)이 좌절된 사실이 더해져 자유시장주의자들 사이에서 우울한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룩셈부르크의 총리는 솔직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실행해야 하는 개혁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그런 개혁들을 어떻게 실행하고 그 뒤 선거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일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 대륙 각국에서 대연정이 추진되거나 논의되는 것은 중도좌파 정당들과 중도우파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의제들을 옹호했을 때 대중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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