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31지방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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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중정당”론 ― 정확히 말하면 “국민정당”론 ― 은 선거가 끝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제기됐다. 이 주장은 민주노동당이 선거 정당으로서 성공하려면 노동계급의 범위를 넘어 훨씬 더 광범한 사람들 ― “영세자영업자, 중소상공인” ― 에게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주노동당이 아직 노동계급 속에서도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조직 노동자들의 지지가 당 초기에 비해 늘어나긴 했어도 여전히 전체 조합원 중 5퍼센트만이 당에 가입해 있다.
이처럼 미조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사활적인 과제가 있으나, 당 기획조정실이 인정하듯이 민주노동당은 “비정규법안의 강행 통과를 저지한 것 외에 특별한 사업이나 성과를 마련하지 못하였다.”(‘2006지방선거 평가 토론용 초안’)
따라서 노동계급을 넘어 “좀더 광범위한 계층에 호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의 외연을 중간계급에로 넓히려다 노동계급에 내린 뿌리마저 얕아지는 실수를 저지를 공산이 크다.
민 주노동당이 노동계급의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중의 전투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정당”론이 뜻하는 바는, “‘장외투쟁’을 삼가고 의회 내에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자본가 정당들과 ‘상생’하는 것이다. 이른바 국민적 “상식”을 당 활동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다 보면 의회 협상과 전술이 점점 중요시될 것이다.”(김하영, 《단일전선체의 정치학》, 다함께, 56∼57쪽.)
당 기획조정실이 제출한 ‘2006지방선거 평가’는 이 우려되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당의 “운동권 단체 이미지”가 “지지층을 확산하고 득표력을 높이는 데 큰 장애로 작용하였다. … 대중의 상식에 맞지 않는 제도와 활동 방식을 점검하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한다.
〈진보정치〉와 〈민중의 소리〉는 서울·울산 같은 지역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국회의원을 공천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민중의 소리〉는 이를 위해 “선거를 지역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지도부가 … 공천에 개입”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국회의원이 나왔더라면 김종철 후보나 노옥희 후보보다 더 많이 득표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차이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 프로파일보다 정당 투표 양상이 더 두드러진 요즘 선거의 근본적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점은, 득표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냐는 점이다. 김종철 후보 개인은 현직 국회의원 누구에도 못지 않은 훌륭한 선전가·이론가이다. 게다가 다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보다 더 좌파적인 공약과 메시지를 전달했다. 물론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것은 사소한 것이었고, 게다가 좌파적 입장에서 봤을 때 느낀 아쉬움이다.
〈진보정치〉와 〈민중의 소리〉는 보수적으로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덕망성에 바탕해 후보의 적절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집권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의 정책과 주장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고 “비판적인 인상을 더 많이 주”기 때문에 대중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당 기획조정실).
현실 가능한 대안?
물 론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사회 공공성 강화 ― 교육·의료·주거 등 ― 는 지금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근시안적인 의미에서 현실주의적으로 이 주장을 거두고 “대중들이 실현 가능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 비전” 제시로 후퇴해야 하는가.
“실 현 가능”한 대안이 주류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를 뜻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경제 위기의 시기에 기성체제의 이익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고서 어떻게 개혁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당이 가장 많이 주장하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드는 1백조 원(매년)은 자본가의 이윤을 희생시켜야만 마련할 수 있다.
더 욱이 이런 후퇴는 민주노동당과 열우당의 차이를 “한강”이 아니라 “실개천”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열우당과 거의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열우당보다 더 멀리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열망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면, 민주노동당이 독자 정당으로 존재해야 할 까닭이 없다.
“현 실적인 대안”은 그 옹호자들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이 “산업 정책과 경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배만이 아니라 성장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 파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이야기한 적이 없다.”(김성진 최고위원) “선거 전술을 봐도 성장 대 복지 대결 구도에서 절대 복지 쪽으로 표가 안 온다.”(심상정 의원)
그러나 자본주의 하의 “성장”은 노동자의 희생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성장”의 과실이 자동으로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오직 대중 투쟁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자칫 분배를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거품 물고 반대하는 우파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