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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가여운 것들〉:
가여운 탄생 대담한 여정

재능 있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 〈가여운 것들〉이 개봉됐다.

주인공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 분)는 자살한 임산부에게 태아의 뇌를 이식해 되살린 존재다. 외과의사 고드윈 백스터(윌렘 대포 분)가 성공시킨 실험체다. 벨라는 고드윈을 “갓”이라 (줄여) 부른다.

19세기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설정이지만, 이 여성은 그 ‘괴물’과 달리 사랑스러운 존재다.

20대 몸이지만 벨라는 아기 같다. 옹알이와 걸음마를 하고 거침없이(위험하게) 행동하고 순진하게 웃어 댄다. 그러다 사춘기가 금세 오고 이내 훨씬 더 큰 세계를 원한다.

여성의 성에 잔인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세계에서 벨라는 지적·성적 각성을 하며 급격히 성장하지만, 어린 인간 특유의 두려움 없는 태도와 놀라운 회복력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남성들이 혼란에 빠진다.

빅토리아 시대는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재임기(1837~1901년)를 가리킨다.

당시 여성 억압·통제, 결혼·가족에 대한 보수적 숭배가 더욱 지독해졌다. 하지만 점잔 뺀 나리들일수록 더욱 ‘난잡’했다.

영화 〈가여운 것들〉은 먼저 나온 영화 〈바비〉처럼 여성의 (만들어진) ‘탄생’에 대한 현대적 우화를 보여 준다. 그들은 ‘유아기’에서 시작해 대담한 여정을 거쳐 성장하고 발전한다.

영화 〈가여운 것들〉은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더 깊은 통찰과 매력은 원작 소설 《가여운 것들》에 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추천: 〈송곳니〉, 〈더 랍스터〉

두 영화 모두 억압 체제에 대한 강렬한 반감과 기발한 풍자가 가득한 블랙코미디다.

둘 다 영화적으로 남다르지만, 그저 남다르진 않다. 극적인 현악기 음악, 뚝뚝 끊기는 대화나 장면, 독특한 화면 구도 모두 실제로 효과적이다.

〈송곳니〉(2009)

이 그리스 영화를 보고 나면 영어 제목인 dogtooth의 의미가 더 적절하게 다가올 수 있다.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다. 다만, 문법이 생경하고 일부 장면은 불편할 수도 있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폭력에 대해 공동 각본가인 에프티미스 필리포는 “현실이 훨씬 잔인”하므로 영화 속 폭력은 현실보다 한 수 아래라고 했다.

영화는 외부와 철저히 분리돼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철통같은 폐쇄와 통제는 자녀들에 대한 기만과 폭력으로 유지된다.

네이버 관람 평 중에 “북한의 축소판”이라는 소감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억압·통제·폭력·기만은 민주 국가를 자부하는 국가들에도 공통된 기능·속성이다.

이 영화는 가족(제도)의 억압적 면모에 대한 직설적 은유이기도 하다. 가족 구조는 흔히 아빠가 제일 위에 엄마가 그 아래 있고 둘은 종종 아이들 내면을 파괴할 만큼 틀 속에 가둬 주조하려고 한다.

심장이 없는 것처럼 극도로 냉혈한 이 세상에서 가정만큼은 따뜻한 안식처인 것처럼 체제의 수호자들이 강력히 홍보하는 가운데 많은 보통 사람들도 그런 열망을 품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가정은 안식처이기만 한 게 아니라 종종 안식 대신 지옥을 선사한다. 자본주의는 가족제도 유지에 큰 이해관계가 있고 체제가 가하는 고통과 불행에서 가정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더 랍스터〉(2015)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할리우드 배우들과 해외에서 영어로 제작한 첫 영화다. 각본은 역시 에프티미스 필리포와 함께 썼다.

〈더 랍스터〉의 세계는 (그 시대를 살았거나 잘 안다면) 냉전 시대에 대한 은유 같을 것이다. ‘솔로지옥’인 도시의 억압 사회든 ‘커플지옥’인 숲속의 억압 사회든 숨 막히는 감시 사회이긴 매한가지다. 적대 관계인 둘은 거울 이미지처럼 전도됐지만 똑 닮았다.

영화는 정상적 인간관계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기발하게 풍자했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결혼과 가족뿐 아니라 독신이나 커플이 되는 것 역시 힘들고 쉽지 않다.

〈더 랍스터〉는 소외, 인간관계의 비틀림, 가족처럼 정상이라 여겨지는 것들의 부조리함을 잘 드러낸다. 심하게 웃프면서 섬찟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