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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전선체 논쟁 ② 단일전선체와 민주노동당:
전선은 대중투쟁, 당은 의회활동?

요즘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전국 순회 토론을 하고 있고, 그 내용 중에는 단일전선체 건설 문제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제출된 “상설연대체 건설에 관한 민주노동당 입장”(이하 ‘입장’)은 A4 한 장 정도로, 분량뿐 아니라 논란의 소지도 최소화한 듯한 싱거운 문서처럼 보인다.

단일전선체 문제가 당 내에서 거의 처음 논의되는 상황에서 지도부가 단일전선체 건설에 담긴 정치적 함의(와 문제)를 되도록 알리지 않고 토론을 이끌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이다.

당 지도부는 당원들을 정치적으로 설득하려 하기보다 은근슬쩍 두루뭉실 일을 진행시키는 식으로 이 문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 단일전선체는 민주노동당의 성격, 집권 전략 등과도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단일전선체 건설 문제가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논의 안건이 아니라 단지 보고 안건으로만 다뤄질 예정이라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당과 공동전선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노동당은 단일전선체에 참가하지 않는 게 좋다. 그 이유를 얘기하기 전에 오해 방지를 위해 분명히 해둬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 공동전선을 통해 다른 세력들과 연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절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반대, 평택 미군기지 반대, 한미FTA 반대, 비정규직 확대 반대 등을 목표로 하는 각각의 공동전선 안에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NGO, 민중단체, 급진좌파, 소규모 서클 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그 속에서 지지를 넓히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공동 투쟁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가령 이라크 전쟁에는 반대하지만 아직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설득할 수 있다. 또,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투쟁을 지지하고 지도하려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노조 간부들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만 아직 자신은 그렇지 않았던 현장조합원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단일전선체를 통해 “당 대중기반 확대”1)를 꾀하겠다는 것은 일확천금식 사고다. 민주노총, 전농 같은 대중단체들이 죽 이름을 내건 단일전선체의 일부가 된다고 해서 그 소속 회원들로부터 실질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장’은 단일전선체가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일전선체가 정치 강령의 통일을 추구하는 바람에, 특정 쟁점과 요구를 위해 건설된 공동전선과는 달리 시민단체들이 거기에 참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입장’은 단일전선체가 “높은 수준의 단일한 정치조직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이것은 자민통 경향 동지들이 오랫동안 의미 부여를 해 온 것과도 배치되는 설명이다. 이미 5년 전에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은 단일전선체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 바 있다.

“우리가 건설해야 할 민족민주전선체는 느슨한 수준의 대중운동연합체나 공동투쟁체가 아니라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강령적[자민통 강령] 기치 아래 각계각층을 하나의 힘으로 결속하여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라는 전략적 과업을 이끌어야 할 광범위하면서도 강력한 정치전선체이다.”2)

역할 분담

‘입장’은 단일전선체와 민주노동당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하나를 비켜갔는데, 그것은 이른바 대중투쟁과 의회활동 역할분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노동당은 원내 활동에 주력하고, 대중투쟁은 단일전선체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활동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은 지방선거 이후에 제기되고 있는 ‘운동권 정당 비판론’, ‘정책정당론’ 등과도 맥이 닿는다.

“민주노동당이 중소규모의 대중행동전에 일상적으로 앞장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고3), “당이 아무 때나 이른바 장외투쟁을 벌이게 되면 대중들로부터 ‘운동권당’ 소리를 듣기에 딱 알맞다”4)는 것이 역할분담론의 기본 발상이다.

“당은 그 특성상 원내활동에 많은 힘을 쏟을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당을 무슨 대중투쟁기구처럼 사고하는 경향은 당의 고유한 역할과 성격을 무시하는 것[이다.]”5)

하지만 원내 활동만으로 집권을 이룰 수는 없으므로 “당 홀로 집권을 위한 모든 정치활동을 도맡아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적절한 역할분담을 모색해야 한다. … 대중단체연합체가 대중정치투쟁을 중심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6)

이런 입장은 얼핏 대중투쟁과 의회활동의 절묘한 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의회활동 전담 기구로의 전락이다.

의회활동은 노동자 정당이 해야 할 여러 활동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해야 한다. 더구나 국회의원이 9명뿐인 민주노동당의 현실에서 당 활동이 의회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은 원내에서 다른 정당과의 동맹을 전제로 한 발상이다.

오해?

‘입장’은 “상설연대체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독자성과 결정권을 침해하는 …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오해가 당내외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가 아니다. 단일전선체가 “단일한 지도집행체계”를 갖출 것이고, 이 “지도집행체계의 의사결정사항들을 모든 소속단체와 개인들이 의무적으로 집행하는 규율”7)이 필요하다고 그 동안 여러 자민통 이론가들이 강조했다.

더욱이, 단일전선체가 “전략적 통일전선체”로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계급계층”의 “최소수준의 공통적 요구를 중심으로”8) 실천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에게는 족쇄가 될 수 있다. 만일 연합세력들이 합의한 최소공배수를 대중투쟁이 넘어설 것 같으면 그 운동은 집권을 위한 단결에 방해가 된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라 통일전선적 당이 돼야 한다는 주장, 즉 단일전선체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이미 나오고 있다. “노동운동은 진보적 대중정당을 노동자 계급만을 위한 정당,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맨 앞에 놓고 투쟁하는 정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9)

민주노동당 강령 변경 압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민주노동당은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요소를 극복하고 전체 민중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강령으로 대체하여야 한다.”10)

사실, 자민통 경향의 다수는 처음에 민주노동당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각계각층의 진보세력을 망라하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이 되지 못하고 협소한 계급정당”11)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노동계급의 독자정당”이라는 “좌경적 오류”로 민주노동당을 평가하기도 한다.12)

그래서 자민통 경향들은 민주노동당에 들어온 뒤에도 민주노동당을 민족민주정당 성격으로 “재창당”하거나 “혁신 강화”하려 해왔다. 이런 기류는 지방선거 평가를 둘러싸고도 “대중정당화”(큰 규모의 정당이라는 정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국민정당이라는 완곡어법적 의미) 주장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단일전선체 주창자들은 지금으로선 진보진영의 단결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투쟁적 당원들이 단일전선체가 적당한 때 추진하려는 계급 연합, 노동자 투쟁에 족쇄를 채울 계급 협력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정당하다.

1) 상설연대체 건설에 관한 민주노동당 입장.

2) 정대연, ‘9월테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민》 36호, 50쪽.

3) 최미란, 통일전선의 이론적 고찰과 당면한 과제에 대하여.

4) 정대연, 민중연대 조직발전을 위한 1차 토론회 자료집.

5) 이용대, 민주노동당은 왜 전선을 필요로 하는가.

6) 박경순, 진보적 대중정당을 혁신 강화하자.

7) 박경순, 단일연대연합체를 건설하자.

8) 상설연대체 건설에 관한 민주노동당 입장.

9) 박경순, 노동운동을 혁신 강화하자.

10) 최미란, 앞의 글.

11) 정대연, ‘9월테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민》 36호, 53쪽.

12) 한호석, 사회변혁운동과 노동계급의 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