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체포:
인터넷 메신저를 둘러싼 제국주의적 경쟁과 관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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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8월 24일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프랑스 검찰은 조직 범죄 집단이 불법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공모한 혐의, 감청 협조 거부, 아동 포르노 배포 공모 등의 혐의로 두로프를 수사하고 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출신인 파벨 두로프와 그의 형이 2013년에 만든 소셜 메신저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10억 명이 사용한다. 텔레그램은 홍콩 항쟁과 러시아 반정부 운동을 비롯해 여러 운동의 참가자들이 국가 검열을 우회하려고 사용하곤 한다.
이번 두로프 체포에는 유럽 지배자들의 핵심 이익이 걸린 우크라이나 전쟁이 강력한 정치적 동기로 작동했을 것이다.
텔레그램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서 유력한 메신저가 됐다. 러시아인 50퍼센트, 우크라이나인 72퍼센트가 텔레그램을 사용한다.
양측 정부도 텔레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전쟁에서의 선전·선동, 공습경보, 구조, 비공식 군사 정보 수집에 텔레그램이 이용된다.
의심
러시아는 심지어 군용 통신에도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이는 텔레그램이 러시아와 깊이 협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올해 초 텔레그램 서버가 러시아에 있으며, 텔레그램이 러시아 보안국과 협력해 친우크라이나 채널들을 차단한다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의원들 일부는 텔레그램이 러시아로 데이터를 유출할 수 있다며 지난 3월 텔레그램 규제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 발의 한 달 뒤 텔레그램은 우크라이나가 군사 정보 수집을 위해 운영하던 자동 프로그램(봇) 3개를 하루 동안 차단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텔레그램은 알고리듬 오작동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텔레그램이 일방으로 러시아 편이라고 보기는 힘든 정황도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SNS와 반정부 언론들이 차단돼 있는 러시아 상황에서 텔레그램은 정부 주장과 다른 목소리를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중적 플랫폼이다.
텔레그램은 〈메두자〉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표방하는 언론이 채널을 개설해 검열을 우회하도록 해 준다.
지난해 6월 프리고진의 쿠데타 당시에도 텔레그램은 프리고진과 바그너 용병 그룹의 채널을 차단하지 않았다.
통신과 안보
텔레그램이 정말 러시아 측에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는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방은 텔레그램이 러시아 정부에 협조한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이참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할 것이다.
두로프의 체포는 프랑스 등 서방이 텔레그램에 보내는 경고인 동시에 다른 인터넷 기업들에게도 조심하라고 하는 메시지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텔레그램을 통한 데이터 유출을 걱정하게 된 것이다.
무릇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지배자들은 안보를 위해 인터넷 등 통신을 통제하려 한다.
예컨대, 미국은 중국 정부의 해킹으로 의심되는 F-35 전투기 정보 유출 사건 등을 겪으면서 2010년 “사이버 전쟁”을 지휘할 사이버 사령부를 창설했다. 당시 대통령 오바마는 디지털 인프라를 국가의 전략 자산으로 규정했다.
비슷한 때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사이버 감시를 강화해 전 세계 통신을 무차별 도청했다. 동맹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조차 감시 대상이었다.
제국주의
이런 일들은 강력한 국가 간의 제국주의적 갈등이 인터넷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즈음 러시아군은 왓츠앱과 텔레그램 중 텔레그램을 선택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왓츠앱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왓츠앱을 소유한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미국 기업이다.
거꾸로 우크라이나군은 군내 텔레그램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역시 러시아와 텔레그램이 연결돼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말 보안을 이유로 장관들에게 국산 메신저를 쓰라고 지시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2018년에 두로프를 만났을 때 텔레그램 본사를 프랑스로 옮기라고 권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마크롱은 주요 인터넷 메신저를 자국 통제하에 두려 했던 것이다.
미국 NSA가 전 세계를 도청할 수 있었던 데는 주요 인터넷 기업들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애플 등은 모두 NSA가 자신들의 인프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줬다.
제국주의의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되면서 인터넷 통제를 둘러싼 긴장 역시 높아지고 있다. 주요국 각국의 지배자들은 안보 관점에서 통신을 자국 통제하에 두려 한다. 일본이 라인 메신저를 자국 기업으로 만들려 하는 것도 자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통신 수단을 외국 통제하에 두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제한다는 것은 그 내용을 감시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 역시 두로프를 기소하면서 감청 협조 거부를 문제 삼았다. 감시가 증가하면 표현의 자유는 침해된다. 10여 년 전 에드워드 스노든의 NSA 폭로로 주춤했던 국가 감시가 다시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두로프 체포는 제국주의간 갈등이 인터넷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주는 최신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