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
깊어져 가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쟁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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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이하 NSA)의 사찰 파문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NSA가 프리즘 같은 정보 수집 프로그램들을 이용해 전 세계에서 통화와 인터넷을 광범하게 감시해 온 것이 폭로됐다. NSA는 구글, 페이스북, 야후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서버에 접속해 정보를 얻기도 했다. 2013년 3월 한 달에만 NSA는 전 세계 전산망에서 9백70억 건의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명분으로 제시한 통킹만 사건이 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는 최근 사태를 보며 자국민에 대한 NSA의 감시 능력이 “옛 동독의 보안경찰 슈타지조차 상상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그런데 이는 단지 민간인들의 개인 정보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NSA와 CIA가 각국 정부 주요 인사와 정치인 들을 불법으로 도청하고 비밀리에 감시해 온 것도 폭로됐다.
심지어 독일 총리 메르켈 같은 우방국 정상들도 도청과 감시의 대상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이들 정상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일로 미국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미국은 NSA의 불법 사찰에 대한 비판에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개인 정보 수집은 테러 방지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며, 각국 정부 간의 스파이 행위도 서로 묵인해 온 관행 아니냐며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 한다.
물론 미국 지배자들의 변명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자본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은 어떻게든 경쟁에서 우위에 서려고 서로 염탐하고 정보를 캐내려 해 왔다.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이들은 모두 “싸우는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푸틴 정부도 G20 정상회의 때 스파이 프로그램이 담긴 USB를 각국 정상에 선물했다가 들통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미국의 사찰과 스파이 행위는 양과 질에서 다른 경쟁 국가들을 훨씬 능가한다.
이번 일로 미국의 ‘인도주의적’ 제국주의가 실상 얼마나 비인도적이고 비민주적인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방국 정상들뿐 아니라 수많은 민중도 이 사태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악화하는 국내 여론 때문에라도 각국 정부는 미국에 항의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인도주의적’ 제국주의
이 사건은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이 커질수록 민주주의적 기본권이 위협받는다는 점을 보여 줬다. 미국 정부는 2001년 9·11 사건 이후 의회에서 ‘애국자법’을 통과시켰다. 그 덕분에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내·외국인을 영장도 없이 무려 1백만 명 이상을 체포했고 20만 명 이상을 구금했다.
NSA도 테러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애국자법을 이용해 무차별적인 개인 정보 수집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세계에서 테러를 줄여 주지도, 미국 국민을 더 안전하게 해 주지도 못했다.
전 세계의 많은 차별 피해자들은 2008년 오바마가 당선하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했다. 그해 오바마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연설했을 때, 수만 명의 독일인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내 줬다. 심지어 에드워드 스노든도 오바마한테 기대를 품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과 환멸로 바뀌었다. 오바마는 부시의 전쟁을 지속했다. 약속했던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는 계속 지연됐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예멘 등지에서 오바마 정부는 드론(무인기)을 이용한 공격을 강화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오바마 정부한테는 이런 작전을 수행하는 데 NSA의 감시·정보수집 능력이 상당히 유용했을 것이다.
NSA 파문은 전 세계 민중한테 오바마도 부시와 똑같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선적인 제국주의자임을 명백히 보여 준 사건이다.
경제 위기
또한 이번 일은 경제 위기 속에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도 보여 줬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2008년에 터진 세계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경제 상황이 다시 악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면 자본주의 국가 간에 협력이 유지되기 어렵고, 국가 간 상대적 힘의 비중도 크게 변하면서 불안정이 커진다. 이 때문에 국가 간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 정부는 경제 위기와 ‘테러와의 전쟁’ 실패 속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우위를 지키려 몸부림쳐 왔다. 오바마는 집권 초에 잠시 다자주의적 언사를 썼다가, 얼마 안 가 호전적이고 일방주의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중국 같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갈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국 정부에 대한 NSA의 도·감청이 더 활발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NSA 사건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두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요한 쟁점이다.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미국은 중국 정부가 자국 정부기관과 기업을 해킹해 군사와 산업 정보를 빼간다고 비난해 왔다.(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도 중국과 홍콩을 광범하게 감청하고 중국 정부의 기밀을 훔쳐 봤다는 게 드러났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미국과 나머지 서방 국가들은 동맹 관계이고 당장에 군사적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최근 이들 사이에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가 많았고, 무엇보다 이 나라들은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경쟁적인 관계다. 그래서 NSA는 독일·일본·프랑스 등을 상대로 감청할 때 핵심 기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애썼다.
독일 정부가 미국의 도·감청을 문제 삼자, 미국 정부는 바로 독일이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해 세계경제의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비난하며 맞불을 놨다.
한국도 NSA의 중요한 관심 대상이었다. 2007년 1월 NSA의 ‘전략 임무 리스트’에 한국은 미국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초점 지역’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외교·군사 정책과 정보기관, 전략기술 등이 핵심적 정보 수집 대상이었다.
이때는 노무현 정부 말기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이르는 시기였다. 아마 미국은 당시 한미FTA, 미국산 쇠고기 협상 같은 통상 문제뿐 아니라, 북핵 문제, 이라크전 파병 등의 문제에서 한국 정부의 속내를 알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을 것이다.
이처럼 경제 위기 속에 국가들 간의 지정학적·경제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번 NSA 파문은 이 갈등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계속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 간 갈등이 커진다면, 이런 일은 더 빈번하게 벌어지며 세계를 더 위험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