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기후정의행진 내에서: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일으킨 논쟁에 부쳐
〈노동자 연대〉 구독
9월 7일 기후정의행진을 며칠 앞두고 백종성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하 전진) 공동집행위원장은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 위성정당 창당세력 배제를 둘러싼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제목으로 글을 발표했다.
그전에 7월 11일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이하 907조직위) 1차 회의에서 백종성 전진 공동집행위원장(이하 직함과 존칭 생략)은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한 진보당·기본소득당을 배제하자’는 안을 발의했다. 그 안은 8월 1일 조직위 회의에서 (찬성 23표, 반대 28표, 기권 19표로) 부결됐다.
전진 측의 안에 주도적으로 반대한 단체는 인권운동사랑방과 플랫폼C라고 한다. 백종성은 인권운동사랑방과 플랫폼C를 비판하며 전진 측이 내놓았던 ‘진보당, 기본소득당 배제 안건’의 정당성을 재천명하려고 사실상의 전진 측 입장문인 이 글(이하 ‘어떻게 볼 것인가’)을 발표했다.
백종성은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전진 측의 진보당·기본소득당 배제안에 반대한 907조직위 소속 단체와 개인들을 “인민전선 이론가들”에 비견하며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1879~1940)의 다음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인민전선 이론가들은 본질적으로 산수의 첫 번째 규칙, 즉 덧셈을 넘어서지 않는다: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를 합하면 그 합은 개별 숫자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 지혜의 전부다. 그러나 산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최소한 역학이 필요하다. 힘의 평행사변형 법칙은 정치에도 적용된다. 힘의 평행사변형에서, 그 구성요소가 더 많이 갈라질수록 그 합력 또한 작아진다. 정치적 동맹자들이 서로를 반대 방향으로 당길 때, 그 합력은 0과 같다.”
물론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민전선은 노골적 친자본주의 정당과 공동 정부 세우기를 목표로 하는 선거 연합이 핵심인 연합체다. 이 목적을 위해 인민전선은 노동계급 투쟁을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 실제로 1930년대 중반 프랑스의 준準혁명적 상황과 스페인의 혁명적 내전 상황에서 인민전선의 제동기 구실은 입증됐다.
그러나 백종성에게는 미안하게도 907조직위는 인민전선이 아니다. 907조직위는 몇 가지 구체적 요구들을 중심으로 9월 하루 행동을 위해 수백 곳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구성한 기층 조직이다.
따라서 이런 사안별 연대체에는 트로츠키가 주장한 공동전선의 기본 취지를 적용하려 애써야 한다(비록 그 연대체가 트로츠키가 말한 공동전선과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공동전선은 코민테른 제3~4차 대회(1921~1922년)에서 레닌과 트로츠키가 발의한 방침이고, 1930년대 초 트로츠키가 독일 반파시즘 투쟁의 전술로서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공동 활동의 필요성은 어떤 인위적 조처나 교묘한 책략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공동의 적에 맞서려면 단결해야만 하는 노동계급의 객관적 필요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 점을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혁명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 노동계급 대중은 이런 충돌 과정에서 행동 통일의 필요를 깨닫고, 자본주의의 강력한 공격에 저항하거나 자본주의를 공격할 때 단결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노동계급의 행동 통일 필요성에 기계적으로 반발하는 정당은 반드시 노동자들한테 비난받을 것이다.”(‘코민테른에 제출한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테제’)
공동전선은 많은 정치적 이견이 있는 좌파 단체들과 노동 단체들이 합의할 수 있는 제한된 특정 요구들을 중심으로 공동 활동을 조직하는 연합 조직이다. 합의할 수 있는 특정 요구들을 중심으로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행동에 나서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보면, 907조직위에 진보당·기본소득당이 참여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보당은 좌파 노동자 정당이고(비록 중도좌파인 척하지만), 기본소득당은 (비록 중간계급 기반이지만) 노골적 친자본주의가 아니라 중도좌파적 자유주의 정당이다. 둘 다 집권을 해서 노동계급의 삶을 망가뜨린 적도 없는 개혁주의 정당(비록 전자가 스탈린주의 전통 속에 있고, 후자가 아나키즘 전통 속에 있지만 말이다)이다.
그러나 백종성은 진보당·기본소득당을 민주당과 동일시하며 그들을 배제하려 했던 전진 측의 입장을 공격적으로 변호하려 한다. 진보당·기본소득당은 민주당과 연합 정당을 만들어 “‘적’과 연대한 세력”이므로 그들의 참여를 허용한 907조직위는 “운동의 민주당 의존성을 실천 상으로는 수용”한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인권운동사랑방과 플랫폼C는 진보당·기본소득당이 민주당과의 연합 정당에 참가한 것을 비판하는 입장을 이미 각자 냈는데도 말이다.
백종성은 어떤 정당의 전술·전략과 그 당의 사회적 기반을 구별해야 한다.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이 민주당과 연합 정당을 세웠어도 그들은 민주당과는 독립적인 조직이고, 그들의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그리고 민주당이 공공연한 친자본주의 정당이어서, 잠재적인 적이기는 해도 당면한 주적은 아니라는 점도 건전한 정세 분석이라면 고려해야 한다.)
코민테른은 각국 공산당들에게 공동전선 전술을 제안하면서, 필요하다면 파업을 파괴했던 개혁주의 지도자들, 심지어 혁명가 룩셈부르크와 립크네히트를 몇 년 전에 살해한 자들과도 함께해야 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그런가?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따르고 있다면, 이 지도자들과 협상하지 않고서는 대중을 공동의 적에 맞선 공동 행동으로 불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당의 이데올로기와 강령보다 먼저 그 사회적 기반(물질적 토대)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진보당·기본소득당이 자신들의 전략에 따라 민주당과 연대를 하더라도 그 당의 개혁주의적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다. 특히 진보당은 좌파 노동조합(민주노총)의 상근간부층 다수에 기반을 둠으로써 민주노총 현장 조합원 중에도 꽤 많은 당원을 확보한 노동자 정당이다. 이런 당을 배제한다는 것은 조직 노동계급을 불필요하게 분열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대중 행동의 중요성
백종성은 진보당·기본소득당 배제가 기후정의운동에 좋지 않은 효과를 낼 것이라는 반박에 대해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글 전체를 보면, ‘아무튼 이런 세력들과 함께 대중적 행사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이다.
심지어 진보당·기본소득당의 가입 신청을 정직하고 도덕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 이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을 연대라는 미명 아래 부정직하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눈감는 것인 양 간주하는 듯하다. “그 단위가 배제될 경우, 기후정의운동 연대체에 많은 타격을 야기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가진 단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기후 악당과 당을 만들고, 어떤 반성도 없이 다시 연대체에 가입을 신청했으며, 연대체는 이를 허용했다. ‘연대’를 위해.”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공동전선의 취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지적한다.
“투쟁의 애초 구호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더 많은 대중이 운동에 동참할수록 대중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대중의 자신감이 높을수록 운동은 더 단호하게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운동의 규모가 커지면 운동이 급진화하는 경향이 있고, 공산당의 구호, 투쟁 방법, 공산당의 지도력 일반에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된다.”
이렇게 대중 행동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노동자 대중이 오직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옛 의식·조직과 결별할 것이라는 관점과 전망에 따른 것이다.
대중의 혁명적 급진화 전망과 관련해서이지만 비슷하게 레닌도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백종성은 현재 기후정의행진이 “자본과 국가에 하등의 위협도 되지 못하는 행사로, 가슴조차 뛰지 않는 행사”로 돼 있다며 안절부절하고 조급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대중 행동의 규모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의식이 향상되도록 한다는 레닌·트로츠키의 관점과 달리, 백종성은 907조직위 내의 “토론과 논쟁”을 통해 운동의 순도를 높이는 데 집착한다. 진보당·기본소득당 배제를 제안한 것도 운동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광범한 대중 운동이 어떻게 순수할 수 있을까. 그런 운동의 가치는 오히려 다양성에 있지 않을까.
더구나 운동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는 백종성의 생각은 논리상 계속해서 배제 대상 확대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동안 전진 측이 곳곳에서 참가 자격 감별사나 도덕 경찰 노릇을 자처해 온 것을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번 907조직위에서는 민주당과의 위성정당 창당을 문제 삼으며 진보당·기본소득당 배제에 골몰했지만, 올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겨냥해서는 진보당뿐 아니라, 민주당과의 과거 연대를 문제 삼아 녹색정의당에 대한 지지 철회도 요구했었다. 녹색정의당은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907조직위 가입 단체 중에 친민주당 성향의 단체, 기업 후원을 받는 단체들이 없을 리 없다. 백종성이 플랫폼C의 설명, 곧 “907조직위 가입단체들은 전환의 경로, 기업 및 기득 정치권과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 등에서 각양각색”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듯이 말이다.
물론 백종성은 그런 단체들을 모두 내쫓아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토론과 논쟁”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그는 객관적 운동 상태에 대한 분석 대신에 자신의 바람과 의도를 그 자리에 갖다 놓는다. “기후위기라는 현상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는 인식,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탄중위해체공대위 이후 기후정의운동의 정신이었다. 바로 그랬기에 전진 같은 사회주의 정치조직도 기후정의운동 일원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최근 10여 년의 국제 기후정의운동에서 좌파적 사상은 영향력이 커져 왔다. 국제적으로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라는 구호가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체제 변화가 무슨 뜻이고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전략은 여전히 각양각색이다. 더구나 현재 기후 운동에서 주된 전략은 (급진적임에도) 개혁주의다.
백종성의 바람대로 ‘기후정의운동의 정신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운동이다’ 하고 막무가내로 선언해 버린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당장 907조직위 소속 단체들이 각양각색이라는 그의 시인과도 모순된다.
최후통첩적 태도
907조직위 소속 단체들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운동의 규모를 키워 급진적이 되게 할 것인지 건설적으로 제안하는 가운데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별해 내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은 힘써 행하면서도 차이점에 대해서는 밝히는 게 옳은 자세일 것이다.
이와 달리, 907행동과는 직접적 관련성도 없는 민주당과의 위성정당 설립 문제를 이유로 함께할 수 없다며 진보당·기본소득당 배제에 골몰한 것은 운동의 분열만 키우는 일이다. 그래서 플랫폼C가 이 논란을 돌아보며 “많은 단체가 적절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토론에 참여하게 됐다”고 평가한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백종성은 민주당과 동맹한 전력이 없는 자들만이 참여하며 반자본주의 강령에 근거하는 운동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기후 운동이 퇴행했다고 주장한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이라는 총체적 관점을 탈각하고 ‘행진은 행진’, ‘건별 연대’ 논리로 퇴행했다.”
아마도 백종성은 “자본주의 체제와 대적하겠다는 날 선 운동이 필요하다”며, “총체적 관점”이 부족한 907기후정의행진 조직위도 “퇴행”에 일조한 것으로 지목하는 듯하다. 그러나 “[반자본주의적인]총체적 관점”은 대중 조직들에 강요할 일이 아니라, 대중 운동의 규모를 키워 그런 접근법이 효과적임이 대중 자신에게 입증되도록 할 일이다. 이와 달리 백종성은 ‘계급투쟁 없는 기후정의 운동’이 문제라며 907조직위에 “기후정의 계급투쟁”이라는 “총체적 관점”을 받아들이라고 최후통첩을 한다. 사실상 ‘당신들이 기후 위기와 싸우고자 한다면 자신과 같은 (민주당과 관련된 전과가 없고) 반자본주의적인 조직의 지도하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이런 ‘최후통첩주의’야말로 혁명가들이 공동전선 안에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트로츠키는 강조했다. 트로츠키는 최후통첩주의를 노동계급이 스스로의 투쟁을 거쳐 강령을 지지하도록 애쓰지는 않고 그저 강령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비타협적인 강경 자세로 정의했다. 이런 최후통첩은 “노동자들을 화나게 하고 모욕하는” 짓이다.
최후통첩주의는 강령을 통일해야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생각과 연관된다. 공동 활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단체들과 개인들이 강령을 통일해야 한다면 그 운동은 극도로 협소해질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급진좌파 단체들이 기회주의에 반발한다며 이런 편협함과 자기만족에 빠져 왔던가.
이 지점에서 혁명가들이 왜 공동전선을 제한적 특정 요구들을 둘러싼 행동의 조직으로 제안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혁명가들은 자신의 강령(기본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대중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 대중에게 강령을 바싹 들이밀 수도 없고, 반대로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령을 내팽개칠 수도 없다. 그래서 단결은 특정하고 제한된 요구(쟁점)들을 둘러싸고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동의하는 부분에서 힘써 연대할 수 있고, 차이점은 숨기지 않고 밝힐 수 있는 것이다. “건별 연대”를 “퇴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선전과 선동의 차이를 구별할 줄 모르는 오류에 불과하다.
많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예부터 강령 통일에 집착했다. 그들은 흔히 공동전선을 자신과 기본입장이 엇비슷한 급진좌파 단체들이 연합한 동아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트로츠키가 강조한 공동전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보아 넘기는 것이다.
백종성이 트로츠키주의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런 잘못된 선전주의적 접근법으로는 “총체적 관점”을 갖고 대중에게 다가갈 능력을 갖출 수 없다. 그저 기본입장이 엇비슷한 소수만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급진좌파 정당 건설에는 그런 접근법도 일부 필요할지 모르지만, 연대·연합 논의에서 문제 되고 있는 것은 광범한 대중 운동 건설이다.
전진 측의 이주노동자 방침 일부를 보려면 ‘급진 좌파 단체,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외국인 가사노동자 “환대”한다면서 그들을 마뜩잖게 여기는 연대체에 가입’(517호, 임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