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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간첩단’ 사건의 교훈

남한 공안당국의 간첩 소동은 근본적으로 북한 관료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남북 지배자들 사이에는 더러운 커넥션이 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96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북한측에 휴전선에서 총격을 가해 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다. 안보 이슈를 부각시켜 선거에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형법에 간첩죄가 있는데도 굳이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 것은 운동을 분열·위축시키기 위해서다.

많은 경우에 소위 ‘간첩단’은 이번 ‘일심회’ 사건의 경우처럼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한두 명의 자생적 남한 좌파의 결합으로 구성돼 있다. 이따금 등장하는 북한 공작원은 탄압의 빌미일 뿐 진정한 공격 대상은 따로 있다.

예를 들어, 1992년 안기부는 대선 직전 ‘중부지역당’ 사건을 뻥튀기해 김영삼에게 유리한 대선 국면을 조성했는데, 북한 공작원 이선실에게 포섭된 남한 주체주의자 황인오 씨가 북한 당국의 지령을 받아 민중당(좌파 포퓰리즘 정당) 내에 지하 조직을 건설하려 했다는 것이다. 북한 공작원과 만났다는 혐의만으로 62명이 구속되고 3백여 명이 수배됐다. 우익은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김대중의 비서가 군사 기밀을 유출했고 민주당 정치인들이 간첩과 접촉했다고 공격했다.

1998년 안기부는 ‘영남위원회’ 사건을 터뜨렸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대량 해고에 정면으로 맞섰던 울산 현대차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을 위축시키기 위해 이 사건을 기획했다. 이 사건으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교육선전국장, 금속연맹 울산지부 정책실장과 교육부장 등 울산지역 활동가 16명이 체포됐다.

당시 법무부 장관 박상천이 “경제 위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 사건의 정치적 목적을 잘 보여 줬다. 실제로, 1997년 경제 위기를 전후해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급증했다. 이 사건은 경찰의 증거 조작 등 조작의 혐의가 짙었다. 결국 법원은 애초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 적용을 포기하고 이 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려야 했다.

1999년 9월의 민혁당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다녀왔다가 변절한 김영환의 자백에 의존해 사건을 기획했다. 그래서 전체 386세대 활동가들과 우리 운동을 마치 간첩 집단인 양 몰아갔다.

급진화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그 해 4월에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벌였고, 5월에는 정부 고위 관료가 연루된 뇌물 사건인 ‘옷로비’ 추문이 터졌다. 6월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의 결과로 서해교전이 벌어지자 우익이 금광산 관광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미쳐 날뛰었다. 민혁당은 이런 상황의 속죄양이었다.

김영환은 나중에 “몇몇 사람의 경우 잘 모르는데도 아는 사람들인 것처럼 실명을 거론했다”고 시인했다. 이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전했다는 정보도 국가 기밀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일간지 뉴스 수준이었다.

이렇듯 국가보안법이 겨냥한 칼끝은 결국 국내의 정치적 반대자들과 운동이다. 우리 운동의 일부 사람들이 조선노동당에 가입했건 안 했건, 북한 공작원과 접촉했건 안 했건 그것은 전혀 본질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마녀사냥을 통해 운동의 전진을 차단하려는 지배 유지 법이다. 국가보안법은 그 탄압 대상자들을 일관되게 방어할 때만 무력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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