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29:
정신적 고통은 단지 의학적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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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감정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거부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 고통이 별 것 아니라는 취급을 받거나 꾀병을 부린다는 거짓 비난을 받기 일쑤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더 어렵다.
일터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낙인 찍히거나 차별을 당했다고 호소한다. 정신적 고통과 관련해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자금·인력 부족에 허덕인다. 거기에 더해 정신적 고통을 비하하는 언어도 문제다.
정신 건강 위기는 사회의 특정 부분만 겪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집단은 정신적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생계 문제로 남들보다 극심한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정신적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도 정신 건강 악화를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정신 건강 서비스가 늘어나고 거기에 더 많은 재원이 제공돼야 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파괴하는 이윤 중심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갈수록 많은 신경과학 연구들은 인간의 뇌가 — 더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 전반이 — 우리가 처한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경과학자 브루스 웩슬러는 다방면의 뇌과학 연구 데이터가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이 근본부터 철저하게 사회적임”을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웩슬러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뇌는 물질 세계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뇌는 우리의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 무시나 충격, 내핍 등으로 말미암은 부정적 경험은 정신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오로지 뇌와 유전자의 결함에서 찾고, 의학적 치료를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는 관점이 너무나도 지배적이다.
물론, 약물 치료는 삶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학 모델은 정신적 고통을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 파악하고, 우리의 뇌나 개인의 이러저러한 취약성이 문제라고 시사한다.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는 과학적으로 끊임없이 반박돼 왔다. 예컨대 우울증이 뇌 안의 화학적 불균형과 관련있다는 가설은 입증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연구가 많다.
의학 모델을 넘어선 사회적 모델이 필요하다. 사회적 모델은 사람들의 삶(특히 어린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이 그 사람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본다. 특히, 정신적 고통을 촉발하는 데서 착취와 차별, 소외가 하는 구실을 분석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육체적·정서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에 기초해 있지 않고 이윤을 축적할 필요로 추동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필요는 많은 경우 왜곡되고 억눌린다. 정신적 고통의 근원은 사회에 있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서 삶에 대한 통제력을 박탈하고, 창조력을 발휘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킬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를 마르크스는 소외라고 불렀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현상은 많은 사람들의 노동 강도와 실적 압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나타났다.
원자화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더 극심한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노인들은 외로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정신적 고통을 시달리는 사람들이 겪는 무력감과 수치심, 고립감에 도전하기 위해 능동적 의식과 연대감을 고취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 고통은 개인의 실패 때문이 아니며, 축적을 우선하며 소외가 만연한 체제에 구조적으로 내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