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민주당과 반미 자주 활동가 권말선·한성 부부 압수수색, 청주 평화 활동가들 중형 선고...:
국가보안법은 왜 폐지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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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주된 타깃은 윤석열 정부의 친서방(미·일) 노선에 반대하거나 윤석열 탄핵 촛불 등 반윤석열 투쟁에 나서고 있는 반미자주파 활동가들이다.
10월 22일 〈자주시보〉 김병길 대표와 전현직 기자들이, 9월 11일 권말선 시인과 한성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공동대표 부부가, 8월 민중민주당이, 4월에는 김광수 부산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올해 2월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청주 활동가 3명에게 1심에서 무려 징역 12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은 형법상 범죄단체 조직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회합·통신 등 보안법 위반 혐의에는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해에도 창원과 제주 등지의 전직 민주노총 간부들이 구속됐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은 심화하는 지정학적 긴장과 정권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서방 제국주의 지지 노선과 극우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보안법을 휘둘러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고 속죄양을 찾으려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보안법 공격으로 반제국주의 운동과 반정부 운동을 위축·분열시키려 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독일의 사회주의단속법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보안법은 대한민국 국가의 탄생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법인 민법과 형법보다도 먼저 제정됐다.
미국은 한반도 남쪽에 친미 국가를 세워 냉전 전초 기지로 삼으려 했다. 이승만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았다.
미국 제국주의에 기대어 한국 국가를 수립하려는 시도는 분단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저항에 직면했다. 여순 반란, 제주 4.3 항쟁이 대표적이다.
남한 지배자들은 신생 국가를 세우기 위해 대중 저항을 짓밟아야 했다. 그래서 그토록 신속히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건국 이듬해인 1949년에 보안법 사건이 4만 6000건 넘게 벌어졌고, 약 12만 명이 검거돼 수감됐다. 1949년 1월부터 9월까지 총 기소 사건의 80퍼센트가 국가보안법 사건이었다.
보안법은 1960년 4월혁명 이후 잠시 잠잠했다가 박정희 집권 이후 다시 맹위를 떨쳤다. 군부 독재 시기 내내 보안법·반공법을 이용한 탄압이 숱하게 벌어졌다.
전두환을 끌어내린 뒤로도 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은 계속됐다. 오히려 노태우 때는 전두환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19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계급 대중의 투쟁이 더 커지지 않도록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도 보안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동구권 붕괴라는 국제 정세에 맞게 보안법이 개정됐다. 특히 제7조에서 “국외 공산 계열에 동조”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정부나 체제를 비판하는 ‘내부의 적’을 겨냥하겠다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한 것이다.
독재에 맞선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영삼도 집권하고 나서 보안법을 무기로 휘둘렀다.
김영삼은 1994년 “자신은 과거 국가보안법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이 법이 인권 억압에 악용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서도 “국가 안보를 위해서 이 법은 필요하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1017명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은 김영삼보다 한술 더 떴다. 김대중도 그 자신이 보안법의 피해자였지만, 김대중 정부 첫해에만 400명 넘는 사람들이 구속됐다. 임기 초 구속자 수는 독재 정권들 못지않았다. 김대중 정부 5년 동안 1164명이 구속됐는데, 3일에 2명꼴로 잡혀간 것이다. 당시 ‘국제사회주의자들’은 북한 국가를 전혀 지지하지도 않았는데도 단일 조직으로서는 구속자 수가 최대였다.
김대중 정부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안법으로 탄압한 배경에는 IMF 경제 위기가 있었다. 김대중은 정부와 기업주들의 고통 전가에 맞선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기 위해 보안법을 적극 이용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우파와 군부 등 이 나라 핵심 권력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물론 김대중은 좌파와 사회운동의 염원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보안법을 개정하겠다는 얘기는 했지만, 보안법 폐지에는 단호히 반대했다. 그나마도 개정하더라도 형법으로 보완할 수 있다며 군부와 우파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노무현 정부 때는 보안법 구속자 수가 세 자릿수로 줄었다. 그러나 보안법 구속자 수가 줄어든 것은 친북 좌파나 혁명적 좌파가 그만큼 줄어든 것을 반영하는 것이지 노무현 덕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가 보안법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 노무현 임기 첫해였다. 당시 언론들은 “희대의 간첩 사건”이라고 떠들었는데, 실제로는 노무현 정부의 위선을 보여 준 희대의 마녀사냥이었다.(관련 기사: 본지 450호, ‘국가보안법 탄압과 사상의 자유: 20년 전 송두율 교수 마녀사냥을 돌아보며’)
그 이듬해 노무현은 위선적이게도 “국가보안법은 독재 시대의 낡은 유물.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한 일을 무마하기 위해 반전 평화 운동을 무마하려는 속임수였다. 애석하게도 많은 자민통계 활동가들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보안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보안법 개정안은 국회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반대 투쟁과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국면에서 속죄양을 찾기 위해 보안법으로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을 공격해 민주노동당 분열을 조장했다(‘일심회’ 사건). 심상정 등 민주노동당 내 PD계는 보안법 탄압 피해자들을 방어하기는커녕 비난하고 심지어 내쫓으려고까지 했다.(이게 실패하자 그들 자신이 나갔다.)
이처럼 독재 정부가 막을 내린 이후로도, 민주당 정부들하에서도 보안법 탄압이 벌어져 왔다는 것을 꼭 알아야만 한다.
친북 사상만 처벌하는 게 아니다
보안법은 국가의 자의적 잣대로 생각과 말을 처벌하는 법이다. 구체적 폭력 행위가 없어도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특정 민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SNS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악랄한 법이다.
지금도 방첩사령부나 국정원은 북한 매체들을 샅샅이 살핀다. 그런데 만일 좌파 학자나 활동가가 학문적·정치적 관심으로 북한 매체나 출판물을 본다면 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
또한 보안법은 계급 차별적인 법으로, 지배자들의 역겨운 이중잣대를 드러낸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남한 지배계급 인사들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에 가서 북한 관료들과 환담하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보안법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반면 1990년대 초 남북 자유 왕래를 외쳤던 통일 운동가들은 처벌받았다.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연락하려는 탈북민들도 보안법으로 처벌받는다.
이런 이중잣대는 신념을 단속하는 법의 특징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신념단속법은] 분리의 법률이며, 분리의 법률은 죄다 반동적이다. 그것은 결코 법률이 아니며 하나의 특권이다. 어떤 사람이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을 다른 사람은 행해도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 그의 선량한 생각과 그의 신념이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안법은 탈북민 억압의 도구이기도 하다. 많은 탈북민들이 “잠재적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로 취급당하며 감시받으며 지내야 한다. 일부 탈북민이 반공 안보 선전을 열심히 하는 이유에는 ‘잠재적 보안법 위반 혐의자’ 취급을 받지 않으려는 것도 있다.
보안법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하나는 친북 사상만 처벌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연구의 우익적 권위자인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은 1991년 보안법 개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개정 전에는 반국가단체의 개념에 ‘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도 반국가단체로 본다’고 규정했으나 이러한 공산계열 반국가단체와 비공산계열 반국가단체를 구분할 실익이 전혀 없다는 지적에 따라 1991년 개정 시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즉, 북한·중국·옛 소련 체제에 비판적인 좌파도 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사회주의자들, 사노련, 해방연대,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 씨 등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좌파들도 보안법으로 탄압받았다.
한편, 보안법은 정부와 지배계급에 맞선 운동을 위축·분열·고립시키는 데 이용된다. 윤석열 정부가 반미자주파 활동가들을 속죄양 삼아 마녀사냥을 벌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최근 보안법 탄압의 주된 양상은 반미자주파 활동가들을 ‘회합·통신’ 조항 위반 혐의로 처벌하는 것이다. 검찰과 우파 언론은 석권호 씨 등 전직 민주노총 활동가 4인이나 청주 평화활동가 등이 북한 관료를 접촉한 간첩이라며 마녀사냥을 벌였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같은 자민통계인 진보당에서도 피해자들을 공공연하게 방어하려 나서지 않았다. 다른 한편, PD계 일각은 보안법 탄압에 반대한다면서도 북한과 연계된 간첩 행위는 방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안법에 반대한다는 것은 사상의 자유를 방어한다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를 지지한다면 당연히 사상을 표현할 자유도 지지해야 한다(김대중은 억지로 둘을 분리시켰지만 말이다). 정치 사상의 경우 그것을 그저 자기 머릿속에만 갖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북한 체제를 지지하는 사상을 실천으로도 옮긴다면 북한 국가 관료나 조선노동당을 접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북한 관료는 남한 노동운동과 좌파가 연대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 오류는 운동 내에서 토론과 논쟁으로 해결할 일이지 국가가 공권력을 들이대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그리고 본디 마녀사냥은 광범한 사람들에게 지지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어진다. 그래야 위축·분열·고립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보안법 탄압 피해자들을 수상쩍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곤 한다.
송두율 교수 마녀사냥도 그랬다. 검찰, 국정원, 우파 언론은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했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그러자 진보 진영이 분열했고, 일부는 송 교수에게 전향과 반성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누군가 사상을 이유로 탄압받을 때 그를 방어하지 않는다면, 그다음에는 나 자신이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르틴 니묄러의 유명한 시를 기억해야 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다음에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 그 다음에 나치는 나를 잡으러 왔다. 그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개정이 아니라 완전 폐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보안법은 조건 없이 완전히 폐지돼야 한다.
일각에서는(특히, 집권 전 김대중) 형법상 내란죄 등이 보안법을 대체할 수 있으니 보안법을 폐지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상 탄압 논리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는 보안법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게 되거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단속할 대체 법률 제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1989년 김대중의 평민당은 민주질서보호법을 대체 법안으로 내놓았는데, 국가보안법 7조와 비슷한 민주질서위해죄가 포함돼 있었다.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내 개혁주의자들이 보안법 폐지가 아니라 개정을 주장한다. 특히, 7조만 폐지 또는 개정을 주장한다. 보안법의 핵심 조항들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옥죄는 내용들로 가득한데도 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은 30년이 지나는 동안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에서 ‘7조 폐지’로, 7조 폐지에서 또 ‘7조 일부 개정’으로 점점 후퇴해 왔다.
이런 후퇴는 운동이 개혁주의적이 되고/되거나 민주당과 공조하는 과정 속에서 진행돼 왔다. 민주당은 집권 시절이든 야당 시절이든 보안법에 제대로 맞서지 않는다는 사실이 거듭 입증됐는데도 말이다.
애초 제정된 목적 자체가 신념에 대한 단속과 억압인 보안법은 본질적으로 반민주적이어서 손질해서 쓸 수 없고 통째로 없애 버려야 한다.
일각에서는 보안법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의 권위에 기대어 보안법을 폐지하려 한다.
물론 보안법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여러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는 ‘헌법 위의 법’이다.
그러나 헌법 자체에 국가보안법의 존재 근거가 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가 안보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다면 헌법상 권리를 제약할 수 있게 한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 국가의 헌법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일반 조항 속에서 나타난 자유와 유보 조항 속에 기록된 자유의 폐기가 공존한다. 헌법의 조항들은 그 자체에 반대 명제를 담고 있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헌법 37조 2항처럼 보안법에도 모호한 표현이 가득하다. 이런 모호함은 국가가 자의적으로 사상 표현을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게 해 준다. 사상 단속 법률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보안법은 (일제하 치안유지법은 차치하고라도) 한국 국가의 역사 내내 존재해 온, 한국 지배계급에게 매우 유용한 무기다. 지배계급과 우익은 보안법 폐지는 물론이고 개정조차 한사코 막을 것이(고 민주당도 그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계급 대중의 저항으로 체제가 바야흐로 전복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낄 때에야 비로소 국가는 보안법이라는 무기를 잠시 내려놓을 것이다.(그러나 이내 재사용할 것이다.)
체제의 위기와 양극화가 점점 심화하는 상황에서 보안법 공격이 더 많아질 수 있다. 게다가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과 속죄양 찾기는 근래에 국제적 현상이기도 하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 탄압에 일관되게 반대하며 모든 보안법 피해자들을 무조건 방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