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26:
자본주의, 가족, 성소수자 해방
〈노동자 연대〉 구독
성소수자(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을 접하거나 겪다 보면 성소수자 차별이 마치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방대한 역사적 증거들은 성소수자 차별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반면,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이 원래 다양한 것이라는 증거는 아득한 옛날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찾을 수 있다.
이성애가 ‘규범’이 되고 거기서 벗어난 사람들을 가리키는 “동성애자”라는 개념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초기의 인류 사회, 특히 1만 년 전 계급 분단이 등장하기 이전의 사회들은 동성 간 관계와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인정했다.
그에 관한 관념은 역사에 따라 변해 왔는데 특히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계급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를 핵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가족 제도이다. 가족은 다음 세대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사회화한다.
예컨대, 유럽 중세 시대의 농민 가족은 봉건적 생산에 기초해 있었다. 유럽 봉건 사회의 지배계급은 그리스도교를 이용해 자신의 성도덕 관념을 정당화했다. 교회는 오늘날보다 결혼에서 더 중요한 구실을 했다.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에 관한 온갖 규칙이 생겨났다. 심지어 성관계를 할 때 어떤 체위가 용인되는지까지 정해졌다. 지배계급은 특히 경제 위기가 올 때 그런 규칙들을 이용한 억압을 강화했다.
당시의 관념은 성관계가 생식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체계적인 성소수자 차별은 여전히 없었다.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상황은 19세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변화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고전이 된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조건》에서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과 도시로의 대규모 이주로 노동계급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 도시화로 노동계급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자유롭고 다양한 성적 관계와 젠더 정체성이 부상할 조건이 형성됐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과 도시화는 다음 세대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가족의 구실을 약화시키는 결과도 낳았다. 그러자 일부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가족의 해체를 막고자 했다.
그들은 아동 노동을 규제하고, 낙태를 금지하고, “가족 임금”을 도입했다. 이는 여성을 산업 일자리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전히 많은 노동계급 여성이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들의 목표는 노동계급 ‘핵가족’을 장려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을 개별 가정의 책임으로 계속 떠맡기는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적 행동과 성별 역할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각종 이데올로기와 법이 동원됐다.
영국의 1885년 개정 형법은 남성 간 “중대한 외설 행위”를 금지했다. 이는 동성애자 남성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낳았고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무기로 널리 쓰였다. 1895년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이 가장 유명한 사례다. 이제 동성애는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특정한 정체성, 인간 유형을 가리키는 개념이 됐다.
영국 제국은 동성애 혐오를 식민지로 수출했다. 그리고 그 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핵가족은 이전만큼 경직돼 있지 않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물질적 변화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일어난 성소수자·여성 해방을 위한 대중 운동 때문에 서구의 지배계급은 변화한 상황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했다.
일부 지배계급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자본주의적 한계 내에서 인정하려 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군대 내에서 동성 관계를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고, 성소수자 권리 대부분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디든 자본주의하에서 여전히 가족은 개별 가정에 노동력 재생산을 떠맡긴다는 중요한 경제적 구실을 한다. 또한 가족은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보루 구실도 한다.(특히 우파가 중시하는 쟁점이다.)
성소수자 공격에 맞선 우리의 반격은 더 커져야 한다. 그러나 항구적인 해방을 쟁취하려면 차별의 근원이 있는 자본주의를 제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