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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24:
여성 해방은 성평등 그 이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하고 싶은 거 다 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기본적인 성평등을 누리기까지도 갈 길이 먼 처지다.

여성이 공식적으로는 남성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성들의 투쟁 덕에 법 규정이 바뀌고 사회 규범이 변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의 요구가 더 나은 세상을 쟁취하기 위한 광범한 투쟁의 일부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은 여성이 어려움 없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양육 지원을 강화하는 것, 학대를 멈추는 것, 성별 동일임금 등이 중요한 쟁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변화를 쟁취하는 것은 성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체계적 불평등은 아직 버젓이 온존한다.

법 규정은 바뀌었지만 체계적인 여성 차별은 버젓이 온존한다 ⓒ이미진

성별 임금 격차는 이를 계량하기에 가장 용이한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과 투쟁으로 기업주와 정부는 동일 임금 요구를 의식해야 했다.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렇게 규정했다.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이런 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다.

기업주들은 돌봄·접대·서비스 등 여성이 하는 일의 가치를 폄훼함으로써 법을 피해 가곤 한다. 여성은 그런 일들을 하도록 사회화되고, 그런 일에 종사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폄훼당한다.

여성은 자녀 출산·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자녀 양육 때문에 노동 시간이 줄거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거나, 아예 일자리를 포기하게 되면서 남성보다 임금이 적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유독 심하다.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31.2퍼센트 임금을 덜 받는다(2021년 기준). 이 수치는 OECD 회원국의 성별 임금 격차 평균의 3배가량 된다. 한국 여성은 3시 이후부터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국은 2010년 평등법을 개정해 대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로써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는 지난 50년 동안 영국의 동일임금법이 이룬 성취가 얼마나 적은지를 드러낼 뿐이다.

한국은 기업주들의 반발로 성별 임금공시제도 시행조차 못 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9년 153개국의 실태를 분석한 뒤 남녀 경제 격차를 해소하려면 257년이 걸린다고 밝혔다.

임신중지권

임신중지권 같은 쟁점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구에서는 1960~1970년대 대중 운동이 벌어져 노동계급 여성이 원한다면 언제든 합법적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영국에서는 1967년에 임신중지법이 제정돼, 여성이 재생산 문제에 관해 의료 서비스를 누릴 얼마간의 권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임신중지 접근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그런 권리가 있을 때에도 임신중지가 범죄시되는 일이 점차 늘고 있다.

이는 여성의 권리가 법조문에 명시돼 있다 해도 진정한 평등을 누리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한 사례일 따름이다.

미국에는 반세기 만에 임신중단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폐기됐다. 그리고 몇몇 주에서는 임신중지 시술자나 시술을 받은 여성을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법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한 이후 아직까지도 대체입법이 되지 않아 여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정부는(민주당 정부든, 우파 정부든) 임신중지 반대 세력 눈치를 보며 임신중지권을 방치해 왔다.

그러나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은 한 다발의 단일 쟁점 운동들로 환원될 수 없다. 그 쟁점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든 간에 말이다.

이는 사회의 실질적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으로 쟁취할 수 있고, 또 제도적 평등이란 보기보다 한계가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 체제하의 더 광범한 착취·억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 논리는, 자본주의하의 평등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당신이 여성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를 억압하는 체제다.

진정한 해방은 총체적 사회 변혁의 맥락 속에서만 가능하다. 다음 연재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쟁취할 수 있을지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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