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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19: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⑵: 발전과 위기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18: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⑴: 형성”을 읽으시오.

1950~1953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북한에서 경제 재건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김일성은 전후 복구 노선으로 중공업 우선 발전을 제시했다. 가능한 모든 자원을 중공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일성과 북한 관료가 그런 선택을 한 까닭은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압력을 받고 있어서였다.

북한 관료들은 남한과의 군사적 경쟁을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야 했다

특히, 남한과의 경쟁이 북한 경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한으로 들어오는 미국제 무기들의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북한 관료는 중공업 기반 확보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국내에 시장 경쟁이 없었어도 군사적 경쟁의 압력 때문에 북한 관료는 외부와 노동생산성 수준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본 축적에 열을 올려야만 했던 것이다.

높은 수준의 자본 축적을 위해 북한 관료는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야 했다.

게다가 1960년대 들어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며 소련의 원조 없이 산업 성장을 이뤄야 했다. 그래서 더더욱 대중의 노력을 동원하려고 천리마 운동 같은 “군중 노선”에 기대어야 했다.

북한은 휴전 후 거의 즉시 집단농장화를 강제적으로 추진했다. 농업 부문에서 전보다 더 많은 잉여를 신속히 추출하기 위해서였다.

집단농장화를 계기로 수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어 임금 노동자가 됐다.

노동자도 자본 축적의 희생자들이었다. 관료는 저임금 정책을 고수하며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몰아붙이는 한편, 노동자들이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강제수용소나 공안기관 등을 통해 억압을 강화했다.

북한 관료가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을 금지했다는 것은 그들의 이해관계가 노동자들과 상충한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경제는 1950~60년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래서 1960년대 초에 일부 서구 경제학자들은 북한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가는 공업국으로 봤고, 1970년대 중후반까지 북한은 거의 모든 경제 부문에서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북한 관료는 독자적인 자본 축적의 중심을 자국에 세운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북한 경제의 성장률은 조금씩 둔화했고, 제2차 7개년계획 기간(1978~1984년)에는 3~4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1980년대 내내 북한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많은 학자들이 북한 경제가 침체에 빠진 이유를 국가자본주의적 방식(이른바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비효율과 낭비에서 찾는다.

물론 북한 경제에는 비효율과 낭비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 방식 자체에서 경제 침체의 원인을 찾으면 그 전의 급성장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북한 경제의 동향은 북한의 폐쇄적 국가자본주의도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의 경쟁 압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북한 경제도 세계적 경기 동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 관료가 국제적 경쟁 압력에 대응해 성장 목표를 과도하게 높이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즉, 북한 경제도 이윤율 저하 경향을 낳는 세계 경제의 메커니즘의 영향을 받으며, 그래서 축적이 계속될수록 동일한 잉여를 얻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해졌다.

더구나 1970년대에 들어서 세계 자본주의의 세계화 추세가 발전하면서, 북한처럼 한 나라 안에 제한된 자원과 기술 수준을 바탕으로 한 생산은 갈수록 투자 부족과 기술적 낙후, 효율성 저하 등의 문제에 직면했다.

결국 북한 국가자본주의는 이러한 모순을 이겨 내지 못하고 1980년대에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1989/91년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1990년대 북한은 최악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1990~1998년 북한 경제는 잇달아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국내총생산이 30퍼센트나 감소했다.

수십 년 동안 심각한 대내외적 문제들에 부딪힐 때마다 북한 관료들은 수령제나 권력 세습, 핵 개발 같은 선택에 이끌렸다. 그러나 북한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로 묘사될 때 거론되는 현상들은 이처럼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받는 압력과 함께 설명돼야 한다.

다음에는 2000년대와 그 이후 북한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20: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⑶: 오늘의 북한”을 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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