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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22:
1956년 헝가리 혁명 지지는 우리 전통의 자랑스러운 역사

1950년대 사회주의자들에게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소련을 모델로 한 동유럽 정권들에 맞선 노동자 투쟁이 정당하냐는 것이었다.

본지가 속한 전통은 동구권 노동자들이 정권에 맞서 저항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가장 중요한 시험대이자 영국 등 서방 공산당의 분열로 이어졌던 사건은 1956년 헝가리 혁명이었다. 당시 헝가리 노동자들은 정권에 맞서 들고일어났고, 국가 관료에 대항해 노동자 평의회를 건설했다.

이 혁명은, 관료가 지배하는 동유럽 국가들이 노동자 국가라는 중대한 거짓말을 폭로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의회 건물 앞에서 빼앗은 소련군 탱크 위에 올라선 노동자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스탈린은 헝가리에 공산당 정권을 수립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자신의 참여는 없었다. 신생 정부는 소련 군대에 의해 수립됐다.

헝가리에서 산업이 국유화됐지만, 그 산업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통제를 받지 않았다.

민주적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들이 통치하는 일당 국가가 산업을 통제했다. 공산당 지도부는 노동자·농민을 착취해서 신속한 산업 발전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여겼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싸워 보지도 않고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중반 헝가리는 점차 경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는 정치적 격동으로 이어졌다.

1956년 7월 헝가리 정부 수반이 몇 년 사이에 세 번째로 교체됐다. 소련의 스탈린주의 지도부는 헝가리 정부 수반을 싸구려 전구 갈아 끼우듯 갈아치웠다.

1956년 가을 폴란드에서 자국 스탈린주의 정권에 맞선 시위가 분출했다. 폴란드 시위대가 국가 탄압을 받자, 10월 23일 헝가리 학생들이 연대 시위를 호소했다.

10만 명이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행진했다. 이 행진의 핵심 구호는 전임 개혁파 수반을 다시 지도자로 앉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며 시위의 구호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소련은 간섭 말라” 같은 구호가 등장했다. 이때 헝가리의 스탈린주의 지도자는 국영 라디오 방송에 나와 시위대의 요구가 “민족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시위대 일부가 그에 대한 민중의 응답을 방송에 내보내려고 국영 라디오 방송국을 향해 행진했다.

비밀 경찰이 군중에 발포했다. 대규모 시위는 혁명적 봉기로 변모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소련 탱크에 맞서 싸웠다.

노동자들은 혁명 과정을 지도하고 기존 국가기구의 활동을 대체하기 위해 공장과 지역 사회에 평의회를 세웠다. 이 평의회는 헝가리 주요 도시 모두로 확산됐다. 평의회는 대중 집회를 통해 향후 행동을 논의하는 등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11월 4일 소련이 혁명을 중단시키려고 헝가리를 침공했다.

소련군은 노동계급의 근거지에 포격과 폭격을 가했고, 뒤이어 탱크를 진주시켰다.

당시 영국 공산당(CPGB)의 일간지 〈데일리 워커〉의 기자였던 피터 프라이어가 헝가리에 특파원으로 파견됐다. 프라이어는 이렇게 썼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헝가리는 ‘우리’가 권력을 장악한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고 노동자들이 통제하는 나라라고 말이다.”

프라이어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파시스트들의 반란에 맞서 헝가리 정부를 열정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을 보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이렇게 썼다. “이 항쟁은 파시스트·반동분자들이 조직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직접 목격했다. … 이것은 민중 혁명, 즉 독재와 빈곤에 맞선 대중 항쟁이었다.”

혁명은 이듬해 1월 분쇄됐다. 그러나 헝가리 혁명은 사회주의가 노동자 권력,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뚜렷이 보여 준 사건이었다. 본지가 속한 전통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앞장서 반대했고, 같은 시기 서방 제국주의의 이집트 수에즈 운하 침공에도 반대했다.

우리 전통의 구호는 바로 이것이었다. “미국도 소련도 아닌 국제사회주의.”

이 글은 본지의 기본 입장을 해설하는 기획 연재의 스물두 번째 글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1980년 폴란드 노동자 투쟁에 관해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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