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21: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⑷: 북한 사회의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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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계급은 억압과 착취에 맞서 떨쳐 일어날 수 있을까?
스탈린주의자들은 북한을 계급 분열과 계급 갈등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로 보므로 북한 노동계급이 체제에 맞서 저항할 리 없다고 믿는다. 만약 북한에서 대중 반란이 일어난다면 필시 그들은 그것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조종한 ‘색깔 혁명’으로 치부할 것이다.
북한을 전체주의 사회로 보는 견해는 스탈린주의 북한관의 거울 이미지다. 전체주의론은 국가의 폭력과 감시를 특별히 강조한다. 북한 사회 곳곳에 침투한 억압과 감시의 그물망 때문에 개인의 자율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원자화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대중은 체제에 맞서 저항하는 데 필요한 조직화를 해낼 수 없다고 본다.
이렇게 전체주의론은 북한 사회의 동인을 포착하지 못하고, 자체 변화 가능성도 보지 못하게 한다. 그 정치적 함의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이 이토록 억압적인 전체주의 사회이니, 남한에서 사회주의 같은 근본적 사회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 사회와 (현상 형태는 달라도) 본질이 다르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다. 그리고 중공업 중심으로 상당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는 북한에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형성돼 있음을, 그리고 북한 사회도 계급 모순과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뜻한다.
물론 오늘날 북한에서 노동자들이 자체의 조직을 만들거나 반란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제국주의간 갈등을 배경으로 한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안정도 북한 노동자들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착취와 축적의 현실 때문에 북한에서도 계급 갈등은 불가피하고, 마르크스가 썼듯이 북한 노동계급은 지배자들을 상대로 “때로는 공공연한 또 때로는 은밀한” 충돌을 벌일 수 있다.
북한 형법에는, “집단적으로 소동을 일으킨 자”(249조 집단적소동죄)나 “출판 질서를 어겨 엄중한 결과를 일으킨 자”(254조 출판질서위반죄) 등을 노동단련형으로 엄히 처벌하는 법령이 있다.
이렇게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령의 존재는 북한 관료가 대중 저항의 가능성을 의식하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지배 체제를 유지해 온 북한 관료도 근본적 모순을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위해 생산수단을 끊임없이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다. 이것이 바로 체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내부로부터의 근본 동력이다. 이런 위기가 일어날 때 아래로부터 반란이 터져나올 빈틈이 열릴 수 있다.
또한 북한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만약 북한과 지리적으로 밀접하고 여러모로 긴밀한 중국에서 노동자 반란이 대규모로 분출한다면 북한 사회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북한의 노동계급이 더 나은 삶을 누리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필요하다. 노동계급이 기존 국가를 분쇄하고 자기 자신의 민주적 국가를 세우는 노동자 혁명 말이다.
과거 동구권에서 노동자들이 그렇게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할 잠재력을 잠깐 보여 준 바 있다. 1956년 헝가리 노동자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에 맞서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평의회를 곳곳에 세웠다.
비록 소련군에 의해 결국 패배했지만, 당시 헝가리 노동자들은 사회의 중요한 결정들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해방은 대북 전단 살포 같은 외부 개입이 아니라 북한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그럴 잠재력을 갖고 있다.
북한에서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선다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구현하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
이 글은 본지의 기본 입장을 해설하는 기획 연재의 스물한 번째 글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냉전기 반(反)스탈린 투쟁과 1956년 헝가리 혁명에 관해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