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는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살고 있다. 탈북하면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친구들을 다시 보기 힘들고, 북한에서 쌓은 학력과 경력도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럼에도 탈북민은 빈곤이나 압제, 또는 둘 다를 피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국경을 넘는다.
우익은 탈북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려 할 뿐, 탈북민이 남한에서 겪는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다. “지옥 같은 북한”에서 “천국 같은 남한”으로 왔다고 할 뿐이다.
그러나 탈북민에게 남한은 또 다른 지옥이면 모를까, 결코 천국이 아니다. 임금, 고용, 교육, 건강 등 대다수 탈북민의 생활 수준은 남한 일반인에 견줘도 턱없이 열악하다. 탈북민의 자살률은 남한 사람들의 3배에 이른다.
또, 탈북민은 차별과 편견에 부딪혀 사회적으로 고립되곤 한다. ‘나쁘고 이상한 나라’에서 넘어와 기생하는 ‘이등 국민’으로 취급받거나, 어쩌면 간첩일 수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남북 관계가 악화될 때면 괜히 북한 정권과 동일시될까 봐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이런 편견 때문에 차별받아, 취업·승진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탈북민의 취약한 처지를 이용한 부당한 처우가 벌어지기도 한다.
탈북민이 겪는 이런 천대와 차별은 남한 국가가 체계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소수 북한 고위급 인사가 아닌, 서민층의 대량 탈북이 (흔히 가족 단위로) 시작됐다. 남한 정부는 서민층 탈북민을 환영하는 게 아니라 국경 통제 강화와 복지 삭감으로 대응했다. 탈북민은 제대로 된 정착 지원을 받지도 못한 채 복지 재정을 축내는 집단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받게 됐다.
또, 탈북민은 입국하자마자 (‘교육 기관’이라는 명분으로) 철조망이 칭칭 둘러진 사실상의 감옥에 갇혀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채 강도 높은 신문을 당해야 한다. 그곳을 나와서도 끊임없는 감시를 받는다. 그렇게 취약한 처지에 내몬 뒤, 공안몰이가 필요한 시점이면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이 탈북민을 간첩으로 조작해 애먼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사건이 숱하게 벌어져 왔다. 박근혜 정부 때 서울시 공무원으로 취업했다가 공안몰이용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된 탈북민 유우성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우익이 탈북민 일부를 반공 스피커로 포섭하며 위선을 떨어도, 탈북민 모두가 우파가 된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일 뿐, 결코 참말이 아니다. 물론 우파인 탈북민도 있지만,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경우도 많고, 소수이지만 진보적 정치 사상이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남한 좌파 다수는 탈북민이 우파라는 편견을 공유하거나, 탈북민 문제가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남북 관계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긴다. 특히 친북 좌파는 탈북민이 남한 정보기관의 ‘기획 탈북’ 공작에 이용당했을 뿐, 자의로 탈북한 것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게 좌파가 탈북민과의 연대를 외면할수록, 소외되고 고립된 처지의 탈북민은 우파의 영향을 더 크게 받게 된다.
국제 노동계급이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오가며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유왕래의 원칙을 분명한 출발점으로 세우는 것이 탈북민 문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했듯이, 마르크스주의자는 탈북민 문제도 국제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 국가 간 관계나, 북한 관료의 이익이 아니라 말이다.
탈북민은 차별적인(정치적·경제적 차별) 북한 체제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의 개입으로 인한 한반도 분단과 전쟁, 이후 수십 년간 남북 지배자들이 벌여 온 체제 대결의 희생자이다.
북한으로부터의 목숨 건 탈출이 끊이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북한 사회가 (특권 관료와 일반 인민 사이의) 극심한 차별과 착취, 억압이 존재하는 계급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도기술 무기를 축적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빈곤이 축적되는 북한의 모습은 우리가 남한에서 경험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노동계급의 일원인 대다수 탈북민은 남한 노동계급이 함께 손잡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동료이다.
우리는 탈북민을 환영한다. 더 많은 탈북민이 빈곤과 고립, 국가의 감시를 뚫고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연대와 용기를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