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31: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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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거의 모든 부를 창출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창출한 부는 극소수인 자본가들이 차지한다. 자본가들은 자신이 가져가는 몫을 늘리기 위해 되도록 적은 임금을 주고 되도록 더 많은 노동을 노동자들한테서 뽑아내려고 발버둥친다.
자본주의의 이런 상시적이고 근본적인 이해관계 충돌 때문에 노동자들과 사용자들 사이에는 계급투쟁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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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론상으로는, 노동자들도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는 사용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용자와 노동자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노동자가 혼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사용자의 보복으로 실업자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사용자에 맞서 자신들의 요구를 공동으로 성취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일자리·임금·노동조건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들에 맞서 단결해 투쟁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한다.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초창기부터 발전시켜 온 가장 초보적이고 가장 광범한 조직 형태이다.
더구나 노동조합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파업을 사용한다면 사용자를 효과적으로 위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의식을 급속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단결을 배운다. 또, 사용자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다른지, 언론과 정부의 구실이 무엇인지 등도 생각할 기회를 얻는다. 노동자들은 또한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오래된 편견들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조합 조직과 노동조합 투쟁을 능동적으로 지지한다.
19세기에 일부 사회주의 종파들(예컨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과 파업이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지 못한다며 무시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들에 맞서 노동조합과 파업의 의의를 적극 주장했다. “파업은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훈련장이며, 불가피하게 다가오고 있는 대전투를 그들에게 준비시킨다. 파업은 일단의 노동자가 노동계급의 대의를 고수하겠다는 선언이다.”(《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한계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분명한 한계가 있음도 인정한다.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한계는 그것이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들의 노동력 판매 조건을 둘러싸고 협상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에 맞서 일자리 보호,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지만,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그렇게 한다. 즉, 사용자들의 “권리”를 인정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사용자에 맞서 아무리 격렬히 싸우더라도 노동조합 투쟁은 결국 사용자와의 협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사용자들과 효과적으로 협상하려면 관련 산업·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최대한 많이 포괄하도록 애써야 한다. 노동조합에는 국민의힘 후보를 찍는 사람부터 혁명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바로 이런 장점 때문에 노동조합의 정치는 모호해지기 십상이고, 따라서 첨예한 계급 충돌의 시기에 노동계급에 지도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더구나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노동력 판매 조건을 두고 협상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포괄적으로 조직하더라도 특정 산업이나 특정 업종, 특정 직종의 노동자들만 조직한다. 산업별로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같은 산업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지만 다른 산업의 노동자와는 분리시킨다. 그래서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보다 일부의 이익을 내세우기 쉽다.(이를 두고 부문주의라고 한다.) 심지어 다른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과 경쟁하면서 자기 부문의 이익만 지키려 하기도 한다.
게다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나라의 노동조합은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분리시킨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임금, 노동조건과 같은 부문적·경제적 이익을 지키려는 데에서는 노동조합이 나설 수 있지만, 더 넓은 사회 변화에 관련된 정치 투쟁은 자신의 몫이 아니고 의회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당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도 계급을 뛰어넘는 더 광범한 ‘국익’에 종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을 협소한 부문적·경제적 투쟁으로 제한하고, 더 넓은 사회 변화를 지배자들과의 의회 협상에 맡기는 것은 개혁마저도 일관되게 성취하지 못하게 만든다.
요컨대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중요한 무기인 동시에 투쟁을 제한하는 기구이기도 하다.
게다가 많은 나라에서의 경험들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자기 조합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경제 투쟁조차 배신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 줬다. 이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협상하는 기구이고, 노동조합이 안착된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용자와의 협상을 전문으로 하는 관료층이 등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음에는 노동조합 상근간부층(관료)과 현장 조합원 운동에 대해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