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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23:
1980년 폴란드 노동계급, 국가자본주의 소련 블록에 균열을 내다

1980년 8월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은 구소련 블록 사회의 계급 적대를 드러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지난 연재에서는 스탈린주의 통치에 맞선 1956년 헝가리 노동자들의 저항을 다뤘다. 또 하나의 위대한 저항이 1980년 폴란드에서 분출했다.

폴란드의 솔리다르노시치(독립 자치 노동조합 ‘연대’, 이하 연대노조) 운동은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 동구권 블록과 그 “공산당” 지배계급의 가짜 사회주의에 맞선 사회 운동이었다.

폴란드는 국가가 생산과 착취를 감독해 1970년대에 세계 10위 제조업 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1979년이 되자 폴란드는 어마어마한 경기 후퇴를 겪기 시작해, 1979~1981년에 생산량이 거의 20퍼센트 줄었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노동조합이 혹독한 제재를 받고 있었는데도 1976~1980년 동안 파업이 약 1000건이나 벌어졌다.

연대노조 운동을 촉발한 투쟁은 폴란드 북해안 항구 도시 그단스크에서 벌어졌다.

1980년 8월에 그단스크의 조선소 관리자들은 “불법 노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안나 발렌티노비치를 해고했다.

파업이 폴란드 북해안을 뒤흔들었고, 그단스크 파업 노동자들은 며칠 만에 요구를 쟁취했다. 발렌티노비치와 또 다른 해고 노동자 레흐 바웬사가 복직했다. 노동자들은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고, 가족수당도 인상됐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아직 만족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발렌티노비치와 바웬사는 파업을 끝내려는 그단스크 노동자들에게 투쟁을 지속하자고 선동했다.

그단스크 파업 노동자들은 기업연계파업위원회(MKS)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MKS는 “21개 조항”이라는 정치 문건을 작성해, 독립 노동조합 결성, 검열 완화, 정치수 석방, 의료 서비스 개선 등을 요구했다.

MKS는 연대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1980년 가을 연대노조 조합원 수는 1000만 명이었는데, 이 수치는 폴란드 전체 노동인구의 약 80퍼센트에 해당했다.

친정부 노동자위원회 이름에 X 자를 크게 칠한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원 권력

연대노조에 혁명적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저술가 콜린 바커는 “폴란드에서는 사실상 ‘이원 권력’ 상황이 시작됐다”고 썼다. 이원 권력이란, 기존 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통치 권력이 나란히 부상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 혁명가이자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원 권력의 특징을 계급적 본질이 다른 두 세력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원 권력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국가 권력 기구를 갖고 있지 않지만 명백하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인민 다수의 지지에 직접적으로 기반해” 자본가 계급의 부르주아 국가에 대항한다.

이원 권력 상황에는 기존 국가를 전복할 잠재력이 있고, 그 점에서 연대노조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커가 지적했듯, “폴란드 사회는 자치에 기초한 참여의 열기가 넘쳐 났다.”

또, 연대노조는 동구권 블록에 존재하던 계급 적대를 밝히 드러내 보였다. 연대노조가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도 심해졌고, 1981년 3월이 되면 그 팽팽한 상황이 더는 유지되기 어려움을 보여 주는 사건이 터졌다.

비드고슈치시(市)에서 [연대노조 산하] 농민조합이 관공서 건물을 점거했다. 이 노동자들은 요구를 달성하지 못하자 점거를 지속했다. 그러자 경찰 200여 명이 농성장을 습격해 노동자들을 구타했다. 이에 항의하며 연대노조가 3월 31일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포하자, 폴란드 지배자들은 파업이 벌어지면 소련의 개입을 요청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총파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도부는 연대노조의 혁명적 잠재력을 모아 내지 못했고, 혁명적 경향은 조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교회와 폴란드 지식인들은 연대노조 내부에서 개혁주의적 주장을 밀어붙였다.

1981년 12월에 폴란드 국가가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연대노조는 이에 결코 맞서지 않았다.

연대노조는 폴란드에서 다른 형태의 사회가 가능했음을 보여 줬다. 그런 사회는 끝내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1989년 동구권 블록이 붕괴하자, 연대노조의 전 전국위원장 레흐 바웬사는 폴란드 초대 대통령이 돼 자유시장 정책과 민영화를 추진했다.

연대노조는 동구권 블록의 계급 분단선과, 노동계급이 이를 극복할 잠재력을 보여 줬다. 본지가 속한 전통이, 폴란드 연대노조 운동을 비롯해 옛 소련 스탈린주의 정권들에 맞선 여러 투쟁을 지지한 것은 옳은 입장이었다.

이 글은 본지의 기본 입장을 해설하는 기획 연재의 스물세 번째 글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여성 해방에는 성 평등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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