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34:
오늘날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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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페미니즘의 세계적 부흥 속에 한국에서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불법촬영 항의 운동, 낙태죄 폐지 운동 등 인상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페미니즘 동아리와 커뮤니티들이 활성화됐다.
이 부양력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나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청년 여성들의 능동성이 돋보였다.
성차별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이에 맞서 싸우려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크게 늘면서 여성의 자의식과 평등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형식적으로 남녀는 평등하고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 넘친다.
하지만 성차별 개선은 매우 더디고, 디지털 성범죄 등 특정 영역에선 비하가 더 심해졌다. 체계적 불평등은 여전히 뿌리깊고, 여성들은 계속해서 굴욕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의 부흥은, 이런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해 수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깊은 불만과 변화의 염원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페미니즘을 혐오한다. 특히 윤석열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선언했다. 보수주의자는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을 무시하고, 차별 개선 노력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한다고 터무니없이 비난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보수 측의 공격에 반대해야 한다.
오늘날 성차별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여긴다. 페미니즘은 여성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운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넓은 의미로 보면 마르크스주의의 여성해방론도 페미니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페미니즘인가
그러나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 여성 차별의 원인과 해방 전략, 목표와 강조점의 차이를 둘러싸고 여러 갈래가 있고, 중도에서 좌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페미니즘은 등장할 때부터 언제나 첨예한 내부 논쟁과 경합을 벌여 왔다.
오늘날의 여성운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류는 급진 페미니즘이다.
급진 페미니즘은 사회의 근본 분열이 계급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있다고 보고, 기존 사회를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가부장제’ 또는 ‘여성 혐오 사회’)로 보며 성 평등을 추구한다. 또, 남성 일반이 여성 차별로부터 득을 얻는다고 보고, 남성(성)을 문제로 본다.
물론 급진 페미니즘이 다 똑같지는 않다. 대규모 여성단체 지도자들은 민주당과의 협치를 통해 개혁 입법을 이뤄 내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급진 페미니즘의 기층 지지자들은 이보다 폭이 훨씬 넓다. 그 가운데는 남성 배격을 확실히 추구하는 분리적 페미니즘도 있다.
급진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원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하지만 남성의 본성 등을 차별의 원인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관념론적이고 초역사적이다. 그래서 급진 페미니즘은 여성 차별의 기원과 물질적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와는 달리,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여성 차별이 인류 역사의 특정 시기, 즉 계급 사회의 등장과 함께 생겨났다고 본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에서 선구적으로 밝힌 이 점은, 이후 더 발전된 인류학적 연구들로 뒷받침됐다.
오늘날의 여성 차별도 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 방식과 깊숙이 얽혀 있다. 특히, 자본주의가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현 시스템에서 양육과 돌봄은 사회가 아니라 개별 가족, 주로 그 안의 여성에게 무보수로 떠맡겨져 있다. 이로부터 자본가 계급은 큰 득을 본다.
따라서 여성 차별을 끝내려면 자본주의 시스템을 끝장내야 한다. 이 문제를 회피한다면 여성 해방의 전망 자체를 회피하는 셈이 된다.
여성 해방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인 노동계급에 주목한다.(관련 기사: 노동계급은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
오늘날 여성은 노동계급의 중요한 일부다. 이는 여성이 단지 성차별의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차별과 착취에 맞서 싸울 잠재력이 있음을 뜻한다. 또, 노동계급 여성이 노동계급 남성과 연대할 객관적 이해관계가 있음을 뜻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 대상 폭력 문제뿐 아니라, 동일 임금, 보육, 임신중지권, 그 밖의 노동자·서민층 여성들의 요구를 중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아래로부터 투쟁에 강조점을 두고, 남녀 노동계급의 단결을 실현하고자 분투한다.
여성 해방은 물론이고,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실질적 개혁조차 만만찮은 투쟁과 연대가 있어야만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좌파의 일부는 성차별 반대와 자본주의 비판을 연결하며 사회주의(맥락상 ‘좌파적’이라는 뜻이다) 페미니즘을 표방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 급진 페미니즘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대체로 가부장제 이론을 수용·절충해(예컨대 ‘가부장적 자본주의’), 결국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을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과 별개로 상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곤 했다. 또, 급진 페미니즘의 남녀 대립적 정치를 종종 추수했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20세기 초 여성 운동에서 유력한 경향이었다. ‘세계 여성의 날’은 투쟁하는 날로서 독일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클라라 체트킨이 제안했다. 1917년 혁명 러시아는 이혼의 자유, 낙태 합법화, 공공 탁아소 설치 등 역사상 가장 선구적인 조처들을 실행했다.
그 이래로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언제나 능동적 일부였다.
우리는 이 전통을 잇고자 한다. 우리는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싸울 것이다. 그 속에서 여성 해방의 혁명적 전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