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윤석열 쿠데타를 재촉한 국제적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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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국회에서 부결된 1차 윤석열 탄핵소추안에는 윤석열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 포함돼 있었다. “소위 가치외교라는 미명하에 …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했다.]”
12월 14일 〈한국일보〉는 이 문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물밑 외교전을 보도했다. 미국 측이 민주당에 “가치외교,” 즉 한미일 협력을 탄핵 사유로 언급할 만큼 반대하느냐고 여러 채널로 물었다는 것이다.
위성락 등 민주당 인사들은 그 문구가 조국혁신당이 쓴 것이라고 미국과 일본에 서둘러 해명했고, 2차 탄핵소추안에는 해당 문구가 빠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국 측이 비공식 채널로 문구 삭제 이유를 파악하려고 했다.(〈한국일보〉 12월 14일 자)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둘러싼 이 일화는 윤석열의 쿠데타와 탄핵 정국에 국내적 요인뿐 아니라 제국주의간 경쟁이라는 국제적 역학도 배경의 일부임을 보여 준다.
냉전 시기에 한국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에 밀착해 경제 성장의 기회를 붙잡았다. 이것은 한국을 대소련 전초기지로 삼아 온 미국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도 했다.
오늘날 상황은 변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중국과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으며 경제 성장을 구가했다. 한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냉전 시절과 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201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져 왔다. 경쟁하는 두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난감했던 것이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은 대중국 적대를 본격화했고 한국 같은 동맹국들에게 동참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중국은 한국 기업들에게 광활한 수출 시장이자 생산 파트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 같은 한국의 주력 수출 분야들에서 한국 기업들을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는 미국 쪽으로 확고히 기우는 선택을 했다. 이를 통해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얻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에 대응해 미국의 안보 공약 강화를 얻고자 했고, 중국 첨단 기술 기업들을 견제하는 미국에 편승해 중국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윤석열은 “가치외교”라는 이름으로 한미일 군사 동맹 구축 등 미국이 추진하는 대중국 포위에 협력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동맹을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자 미국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어서 윤석열은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서 일본의 책임을 면제해 줬고, 일본의 핵 폐수 방류도 묵인했다.
윤석열 정부는 무기 우회 지원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서방의 전쟁 노력을 지원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 전쟁을 지원하는 서방 정부들의 입장과 보조를 맞췄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주요한 지정학적 전선들(우크라이나, 중동, 동아시아)에서 모두 미국을 도왔다. 당연하게도 “2022년 5월 취임 이후, 윤석열은 미국 외교가의 사랑을 받아 왔다.”(《포린 폴리시》 12월 10일 자 기사)
그렇지만 지금 미국은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된 도전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 윤석열의 베팅이 한국 자본주의에 확실한 이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윤석열의 베팅은 오히려 중국과 북한 등의 반발을 부르며 지정학적 위험 증대에 일조했다.
가령 지난 6월 러시아는 북한과 새로운 군사 조약을 맺었다. 러시아 측은 한미일 삼각 협력 때문에 북·러 조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의 친미·친일 외교가 북·러 밀착이라는 역풍을 맞은 셈이다.
그래서 친미·친일 외교로 요약되는 윤석열의 서방 제국주의 지원 노선은 국내에서 커다란 반발을 불렀다.
공식 정치에서는 주로 민주당이 그런 불만을 나름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지난해 민주당은 다른 야당들과 함께 핵 폐수 방류 반대 대규모 집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중국·러시아 등과 척을 져서는 곤란하다며 윤석열의 ‘편향 외교’를 계속 비판했다.
물론 제국주의와의 관계 문제에서 민주당은 미덥지 못한 정당이다. 민주당도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러시아·북한과의 사이가 너무 틀어지지 않게 중용을 취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윤석열 외교에 대한 비판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윤석열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대학가에서 쏟아져 나온 퇴진 시국선언 중 상당수가 남북 긴장 고조, 대일 ‘굴욕’ 외교,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시도 등 윤석열의 “외교 참사”를 비판했다.
이를 알기에 윤석열 정부도 점점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왔다. “종북 반국가세력”과의 일전을 수시로 언급하면서 말이다. 지정학적 불안정 심화를 배경으로 국내에서는 정치적 양극화가 커져 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둘러싼 갈등
지난 10월부터 윤석열 정부와 매스 미디어는 북한군 전투 병력이 러시아 쿠르스크에 파견됐다는 설을 퍼뜨려 왔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우크라이나 무기 직접 지원을 추진했다. 북·러 밀착을 견제하고 서방 제국주의 지원 노선을 더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추진은 커다란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10월 25일 한국 갤럽은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반대가 82퍼센트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0월 30일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국회 동의 없이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참관단을 보내면 국방장관 김용현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11월 18일에는 김민석 민주당 의원도 대북 전단을 방치해 남북 긴장을 증폭시킨 점 등을 들어 김용현 탄핵을 검토한다고 했다.
김용현은 “대통령 오른팔인 내가 탄핵되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비역 장성 출신 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SBS 12월 15일 자 보도).
바로 그 무렵에 방첩사령관 여인형은 “11월에 계엄을 선포하자”는 윤석열의 의지를 김용현에게서 들었다.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심화된 것과 함께, 주요 외교 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윤석열이 쿠데타를 서두르게 만든 요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