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제90차 서울 집회:
“매주 계속되는 연대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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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Gaza Live(가자지구 사람들 죽이지 마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보다 뜨거운 팔레스타인 연대의 외침이 서울 도심 거리에 울려 퍼졌다.
6월 29일(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 집회는, 2023년 10월 7일 직후 시작된 이래 어느덧 아흔 번째다. 숨이 막힐 듯한 더위에도 300여 명이 모였다.
팔연사 주최 집회는 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참가하지만, 오늘은 특히 그 다양함이 두드러졌다. 재한 팔레스타인인들뿐 아니라 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집트·아프가니스탄·이란·파키스탄·모로코·우즈베키스탄·루마니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온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다. 고려대학교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쿠피야’ 회원들이 깃발을 들고 참가하는 등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이란을 폭격하며 중동 전체를 전쟁의 불길로 밀어 넣는 한편 가자지구에서의 인종 학살도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에 참가자들은 강한 분노를 표했다. 또 이스라엘이 굶주림마저도 무기로 이용해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려던 팔레스타인인 549명을 살해하고, 트럼프 정부가 이스라엘의 살해를 지원하는 ‘구호’ 단체에 3,00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한 것을 강하게 성토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절망하지 않고, 굳건한 저항과 연대의 희망을 내보였다. 사회자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항만 노동자들이 이스라엘로 향하던 탄약 14톤의 수송을 성공적으로 저지했다”고 전하자 환호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발언자들도 한국을 포함한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강력한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한 팔레스타인인 나심 씨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레바논, 예멘, 시리아, 심지어 이란까지 중동 전역에 파괴와 고통을 주고 있다”고 규탄하며 발언을 이어 갔다.
“시온주의자들은 피와 고통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무조건적 지원, 그리고 아랍·이슬람 정부들의 배신이 없었다면 시온주의자들이 그 모든 일을 저지를 수도, [이스라엘] 국가가 존재할 수도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굳건한 저항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고향을 지킬 것입니다.
“그들에게 희망은 여러분뿐입니다. 우리가 매주 이곳에 모여 벌이는 연대 시위가, 그리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계속 투쟁합시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고 있는 인종 학살과 인종청소를 멈추기 위해. 팔레스타인 만세!”
힘찬 발언에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만세를 연호했다.

뒤이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우석균 정책자문위원장이 발언했다.
우석균 위원장은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등이 이란의 이스라엘 병원 공격을 “가장 심각한 전쟁 범죄”라고 규탄한 것을 비판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자지구에 하고 있는 것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유니세프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병원 공격만 500회가 넘는다고 합니다. 네타냐후에게 이렇게 말합시다. ‘내가 너의 죗값을 꼭 받겠다.’” 참가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균 위원장의 발언은 이어졌다. “세계보건기구는 가자지구에 부분적으로라도 기능하는 병원이 16개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장 먹고 살 식량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자지구 인구 190만 명 중 90퍼센트가 이재민이고 이 중에 100만 명 이상이 어린이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이 중 35만 명이 당장 오늘 밤 먹을 식량이 없습니다!
“지금 가자지구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입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미국도, 서방 정부도 아닙니다.
“가자지구 민중에 연대하는 전 세계적 투쟁과 운동만이 이 참상을 끝낼 수 있습니다. 가자 민중에게 해방을!”
평생을 생명과 진보, 정의를 위해 활동한 그의 발언은 남다른 무게로 참가자들에게, 또 행인들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을 멈추고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행인들이 집회 장소 옆과 뒤로 늘어섰다. 행인들은 “그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야” 하고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우 위원장의 발언을 휴대전화에 담는 행인도 눈에 띄었다.(발언 전체 영상 보기)
집회 참가자들은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에 규탄의 의미로 신발 자국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거리 행진에 나섰다.


남다른 호응
이전에도 팔연사 행진 대열은 행인들의 호응을 많이 받아 왔지만, 이날 종로를 행진하는 대열에 대한 호응은 특히 남달랐다. 길가 식당에서 일하는 어느 노동자는 앞치마를 두른 채 인도로 나와 대열을 영상에 담았다. 어느 노신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대열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쉬지 않고 박수를 보냈다.
대열이 인사동길에 접어들 무렵에 이미 출발 때보다 대열이 불어 있었다.
인사동길에서도 대열이 지나는 양옆으로 외국인 관광객들과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앞다퉈 행진을 촬영하고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연호했다. 인사동길 어느 매장에서는 계산대에 줄 서서 계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과 계산원이 모두 행진 대열을 지켜보고 촬영하느라 가게 운영이 잠시 멈출 지경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대열을 촬영하려 하는 통에, 길가에 자리를 못 잡고 돌벤치에 올라서서 휴대전화에 대열을 담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행진 중 합류해 끝까지 함께한 두 명의 모로코계 벨기에인 여성들은 본지 김종환 기자에게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어제 한국에 도착해 시위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북소리가 들리고 팔레스타인 깃발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건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벨기에에서도 크고 작은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매일같이 열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이번 집회가 팔연사가 서울에서 주최한 아흔 번째 집회라는 데에 크게 감탄했다.
뜨거운 호응에 참가자들은 무더위도 잊고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No arms to Israel(이스라엘에 무기 보내지 마라)!”
참가자들은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 트럼프 정부의 인종 학살 지원을 강하게 규탄하고 이스라엘 대사관 앞까지 행진한 후 집회와 행진을 모두 마무리했다.
팔연사는 다음 주인 7월 6일(일)에는 오후 2시에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집회를 열고, 그다음 주부터는 토요일로 요일을 옮겨 7월 12일 오후 4시에 집회를 열 것이라고 알렸다.
오늘 집회의 메시지처럼, 이스라엘과 서방의 인종 학살과 전쟁 몰이가 계속되는 만큼 우리의 저항과 연대도 더 강해져야 한다.






